이 와중에도 잠시 고민했었다. 돼지국밥을 시켜야 돼지고기랑 순대랑 같이 들어가던가? 순대국밥을 시켜야 둘이 같이 들어갔던가? 집집마다 달랐나?나는 돼지고기와 순대가 같이있는 국밥을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고,무엇을 시켜야 둘을 함께 먹을 수 있는 건지를 늘 헛갈려했었다. 어떨 땐 사장님께 물어봤고, 어떨 땐 함께한 일행에게 물어봤고, 또 어떨 땐 아무거나 시킨 후 에라 몰라, 하고 먹어버리는 편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런 걸 일일이 따지며 기억하지도 않고, 대충대충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살아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하아얗게 김이 오르는 순대국밥이 앞에 놓였다. 얼른 배를 채워야 했지만 목구멍이 꽉 막혀 도무지 음식이 넘어가질 않았다. 입술을 깨물며 눈앞의 순대국밥을 숟가락으로 하릴없이 저었다.천천히 하나씩 떠오르는 오늘 하루. 미리 예약해 뒀던 건강검진 센터에 도착했던 게 오전 8시 반쯤이었던 가. 벌써 몇 년째 검진을 거르고 있었다. 마지막 시점이 코로나 시작 시기였던 건 확실히 떠올랐다. 그해 2월, 건강검진을 받아야지 생각했던 나는 미리 검진날을 예약했었고, 그날 즈음에 생리가 터졌고, 예약을 했으니 검진을 갔고, 생리 중이라 검진할 수 없는 자궁 쪽을 다음에 보기로 예약을 잡고 돌아왔던 기억이 선명했다. 그리고다음 검진날을 기다리는 중에 코로나가 터졌다. 대구 지역의 코로나는 정말 엄청난 강도로 단 하루 만에 모든 일상을 마비시키는 형태로 퍼져갔고, 이런때에 검진쯤은 당연히 미뤘었다. 그리곤 어떻게 됐더라. 이혼 소송을 시작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검진따윌 챙길 여력은 없었다. '사는 게 바빠서', '정신이 없어서' 등 가장 설득력 없는 핑계를 대며 몇 년째 검진을 미뤘고,몇 년 만에 검진을 예약한 날이 오늘이었다. 어제저녁부터 금식을 했고 대장내시경을 위해 대장 안의 모든 것을 내보내며 잠을 설쳤고, 아마도깨끗한 대장을 가진 인간이 된 채로아침을 맞았더랬다. 바꿔 말하면,아침부터 허기에 지배 당한 상태였다. '검진 끝나고 뭐 먹지' 그 생각만 하며 검진을 받았다. 검진 내내 나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제품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의 나는 완제품. 여기저기 과를 옮겨 다니며, 이 완제품이 바깥으로 나가도 별 문제가 없는지를검사받는 기분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큰 하자는 없었지만, 내부에 어떤 문제가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초음파, CT로 구석구석 훑으며 '하자 없음' 결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공정의 끝자락. 세상으로 다시 나가기 위해 결제를 하려 앉았을 때 직원은 바카라 오토프로그램;저어...바카라 오토프로그램;하고 말을 건네왔다.
바카라 오토프로그램;목에서 의심스러운 모양이 발견 됐는데, 가까운 갑상선 전문 병원을 '지금 바로' 가보셔야 할 것 같대요.바카라 오토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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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든 생각은 '바카라 오토프로그램 전문 병원? 그런 게 있어?'였었다. 내가 아는 병원은 내과, 외과, 안과 등등일 뿐. 바카라 오토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목 어딘가에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 바카라 오토프로그램만 다루는 전문병원이 있다는 걸, 인식한 적이 없었다. 직원을 보다 멍하게 되물었다.
바카라 오토프로그램;갑상선 병원이 어디 있는데요?바카라 오토프로그램;
직원 역시 몰랐다. 그가 안내해 준 건, 지도앱에 검색해 보면 나온다는 정도. 멍-한 상태였기에 그 정도의 정보로도 큰 도움이 됐다. 지도앱을 열어 '바카라 오토프로그램'이라는 검색어를 넣으며 기이함을 느꼈다. 세상에. 지도에다 바카라 오토프로그램이 어디 있는지를 묻는 꼴이라니. 내 목 어디엔가 있을 바카라 오토프로그램의 위치를 지도가 알려줄 턱이 있나. 그럼에도 앱은 온갖 바카라 오토프로그램들을 찾아 지도 위에 보여줬다. 아아, 500m 내에도 바카라 오토프로그램이 있고, 반경 2km 내에는 바카라 오토프로그램이 이렇게나 많고. 확실히,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오전 반차만 내둔 상황이었기에 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건강검진을 한다고는 미리 말해둔 상황. 대기자가 많아 오전 반차로 해결이 안 되니 하루 연차로 연장하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지도에 나온 바카라 오토프로그램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고 얘기할 수는 없었으니까.
터덜터덜, 모험을 떠났다. 3월 말 초봄. 빗줄기가 흩날리고 있었다. 겨울은 물러나지 않으려 버티고 있었고 봄은 겨울을 밀어내려 애를 쓰던 무렵. 추웠다. 배가 고파 추운 건지, 날씨가 추운 건지, 그 마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 건강한 갑상선을 되찾고맛있는 걸 먹자.지도 위에 찍힌 숱한 갑상선들 중 한 군데를 목적지로 정했다. 바로 옆에 식당들이 많은 곳이었다. 바카라 오토프로그램;님의 갑상선엔 이상이 없습니다바카라 오토프로그램; 이 한마디를 듣고, 갑상선 찾기 대 여정이 마무리될 것이라 기대하며병원으로 들어섰다. 역시, 기대 같은 걸 함부로 품어선 안 되는 거였다.
바카라 오토프로그램;흠- 아, 어....바카라 오토프로그램;
나를 눕히고 목에 차가운 크림을 발라댄 후 초음파 기계로 목 곳곳을 훑어보던 의사는 묘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인간이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언어라 불릴 만한 단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지만, 의사가 내는소리를 들으며 그 의미를 왠지 알 것만 같았다. 영화<파묘의 대사가 절로 떠올랐달까.
'험한 것이 나왔다'
내 목에서, 바카라 오토프로그램이라는 그 부위에서,뭔가 험한 것이 나온 게 틀림없어 보였다.
검진을 마치신 의사님은 '다른 병원으로 가보길' 권하셨다. 목에서 '의심스러운' 조직이 보이는데, 더 잘 볼 수 있는 기기를 갖춘 병원으로 가도록 소견서를 써주시겠다는 거였다.검진센터에서도, 이 병원에서도,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의심스러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 의심의 대상이 무엇인 걸까. 알 수가 없었다. 뭘 의심하는 거지? 어떠한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의심되어, 정도의 문장이 익숙했기에 목적어가 없는 의심만 가득한 이 대화에 절로 의구심이 생겼다. 바카라 오토프로그램;의심이라고 하셨는데, 뭘 의심하시는 건가요?바카라 오토프로그램;
의사는 정치인 같은화법을 구사했다.
바카라 오토프로그램;어, 여기서 확실히 말씀드릴 수가 없어서 다른 병원으로 가보시길 권하는 겁니다.바카라 오토프로그램;
이쯤 되면 다른 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소견서를 가방에 넣고 이번엔 지도앱에 정확한 위치를 넣었다. 바카라 오토프로그램을 찾아 헤매던 나는 '*** 영상의학과'로 움직였다. 참 신기하긴 했다.출퇴근을 하며 매일 지나가는 길 위에 서 있었음에도 나는 이 길에 바카라 오토프로그램전문병원이 있다는 것도, 영상의학과만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 있다는 것도 정말 알지 못했었다. 숨은 병원 찾기 대모험인가. 새로운 병원을 향하며 검색앱을 열었다. 그리고 '바카라 오토프로그램 의심' 두 단어를 넣고 검색을 시작했다.검색창에 쏟아져 나온 결과들. 입맛이 싸악 사라지는 듯했다.
영상의학과 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었다. 적게 잡아도 내 부모님 세대 70대쯤되셨을 듯한 느낌. 아무튼 이 분 역시 초음파를 보며 바카라 오토프로그램 선생님과 비슷한 소리를 내셨다.
바카라 오토프로그램;흠- 아, 어....바카라 오토프로그램;
그리곤 누운 상태 그대로 나를 두고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바카라 오토프로그램;왼쪽에 굉장히 의심스러운 모양이 있어요. 이게 뭔지 정확히 알려면 세포 검사를 해야 하는데, 해볼래요?바카라 오토프로그램;
바카라 오토프로그램 선생님이 이 병원을 추천해 주시면서 했던 이야기였다. 바카라 오토프로그램 병원에는 세포검사를 할 수 있는 기기가 없으니 이쪽 병원으로 가보라는 이야기. 누운 그대로 물었다. 다들 뭘 의심하는 건지 이제 좀 짐작이 되는 상황이었다. 잠깐의 검색에서 나온 내용은 하나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바카라 오토프로그램;의심스러운 모양이라는 게, 암이라는 의미인가요?바카라 오토프로그램;
바카라 오토프로그램;네,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모양상으로는 굉장히 의심스럽고, 다른 조직과는 확연히 다릅니다.바카라 오토프로그램;
이런 이야기를 듣고 세포 검사를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목을 째서 입원해야 한다고 해도 가능한빠른 시일 내에 날짜를 잡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마취도 없이 몇 분 만에 세포를 채취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니 당연히 바카라 오토프로그램;해주세요바카라 오토프로그램;를 외쳤다.
............... 우와. 젠장. 돌아봐도 욕이 절로 나올 만큼의 고통스러운 검사였다. 세상에. 뾰족한 바늘 같은 것을 목에 찔러 넣어 의심 부위 세포를 채집하는 그런 험한 일을 마취도 없이 해버릴 줄이야. 이런 일을 당할 거였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었다. 바카라 오토프로그램;움직이시면 안돼요바카라 오토프로그램; 심드렁하게 선생님은 말씀하셨지만, 낸들 움직이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채집을 하면서 선생님은 몇 번이나 말씀하셨더랬다.
바카라 오토프로그램;와, 안 떨어지네. 엄청 엉겨 붙어있네. 정상 아니네. 하... 암인가.바카라 오토프로그램;
손을 깍지 낀 채 배 위에 올려둔 상태였다. 수년간의 치과 진료를 통해 터득한 나만의 비법. 깍지를 낀 채 엄지손톱을 바짝 세워 맞은편 손을 꾹꾹 누르면 입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통증을 조금은 참아낼 수 있었다. 그 경험을 떠올리며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목을 파고 들어올 때부터 손을 깍지 낀 채 꾹꾹 눌러대고 있었다.'암'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센 건인지. 그 단어가 귀를 파고 들어오는 순간부터는 손가락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참아볼 새도 없이 누운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세포 검사에는 통상적으로 일주일이 소요된다고 했기에, 일주일 후로 다시 방문 예약을 잡았다.근무시간에 움직이는 게 부담스러워 전화로 알려주시면 안 되냐 물었지만 선생님은단호하셨다.
바카라 오토프로그램;직접 오셔야 할 겁니다.바카라 오토프로그램;
허 참. 아직 결과가 안 나온 거 아니냐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의사의 태도는너무 단호했고, 나오지도 않은 결과를 이미 알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터덜터덜 바카라 오토프로그램을 나서길가 벤치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어쩌지. 앞으로 어떡해야 하지. 누구에게라도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기에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이런 무게. 이런 찝찝함. 역시나 혼자 버티는 게 옳았다. 누구에게 건넨다 한들 결국 내 몫의 무게이고 내 몫의 삶이리라.
집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그 길에서 들른 곳이 순대국밥집이었다.얼마나 휘저어 대고 있었을까. 조금은 식었을 국물을 조심스레 한 숟가락, 입안으로 흘려 넣었다. 바카라 오토프로그램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보다 더 명확한 건, 입안으로 흘러드는 온기. 고기냄새가 눅진하게 배어버린 뽀얀 국물. 한 숟가락 또 한 숟가락. 정성 들여 국물을 입안으로 날랐다. 그리고 밥. 한 숟가락 가득떠서 씹었다. 밥도 순대도 국물도 죄다 꼭꼭 씹어 삼켰다. 그렁그렁하던 눈물은 마르고 어느새콧물이 삐죽 흘러나왔다. 그래, 이럴 땐 눈물보다 콧물이 나았다. 콧물을 훌쩍이며뚝배기 하나를 깨끗이비워냈다. 일주일 후 어떤 일이 벌어진다 한들 그다음에 생각하면 될 일. 미리 염려해 봤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둥둥 떠오르던 걱정들이 순대국밥 국물에 눌려 차분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뜨끈한 국물과 밥이 주는 힘이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뭐가 벌어지든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단단한 마음. 마음을 단단하게 뭉치는 힘이, 국밥에는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암 진단을 받았다. 역시나,라고 말해도 되려나. 반짝이며 빛을 내던 혹시나 하던 기대를, 캄캄한 암흑 속으로 밀어넣어버리는 단어. 그게 바로 암이었다.이후 여러 번 나는 국밥집을 찾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순대국밥을 시켰다가,천천히 밥을 떠먹고 국물을 먹으면서 콧물을 흘렸다. 대학바카라 오토프로그램에서 수술을 받으려면 6개월쯤 대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날도, 종격동에 웬 혹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날도, 2차 바카라 오토프로그램에 가서 수술 전 검사를 받고 온 날도 나는 홀로 앉아 국밥을 먹었다. 뜨끈한 국물이 빈 속으로 흘러들고, 까끌하던 입안이 촉촉이 기름에 젖는 그 기분을 천천히 만끽했다. 뚝배기가 비어 가고, 콧물을 쓰윽 닦아낼 때쯤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다.
“괜찮아. 아직은 괜찮아.”
고깃국이란 정말 위대한 것이었다. 묵직한 국물을 입안으로 넣다 보면, 마구마구 시끄럽던 걱정들이 차분하게 바닥으로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걱정들이 가라앉고 나면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의 일들. 지금 해야 할 일들. 할 일들을 뽑아내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한걸음 한걸음 움직일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암을 알리고, 휴직계를 내고, 수술날짜를 잡았다.
요즘도 나는순대국밥집을 찾는다. 전이 되면 어쩌지, 재발하면 어쩌지. 암수술을 한 환자란 시시때때로 그런 두려움에 압도되고 마니까.그 모든 두려움에 짓눌려 아무것도 할 수 없을것 같은 때에는 국물을 떠 넣는다. 그리고 매번 새롭게 깨닫는다. 아아, 고기 국물이란 정말 위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느낀다. 때로는 백 마디 위로의 말보다 국물 한 숟가락이 더 살아갈 힘을 준다는 것을. 식당문을 나서며 생각한다. 그래. 내 발로 식당으로 와 뜨끈한 국물을 삼킬 수 있는 지금, 아직은 모든 것이 괜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