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원전 4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만족과 보수를 받는 자리는 구조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으며, 이런 태도는 그 이후 2천 년 이상 지속되었다.이 그리스 철학자에게 경제적 요구는 사람을 노예나 동물과 같은 수준에 놓는 것이었다. 육체노동은 정신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심리적 기형을 낳는다고 보았다. 시민은 노동하지 않고 소득을 얻어 여가를 즐기는 생활을 할 때만 음악과 철학이 주는 높은 수준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이레)
2. ‘노동자다움’이 무엇인지는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어떤 사회가 주어진 시점에서 요구하는 ‘노동자다움’이 무엇인가에 따라 그것을 잘 만족시키는 사람은 취업을 할 수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취업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 류동민, 웅진지식하우스)
3. 돈은 언어나 국법, 문화코드, 종교 신앙, 사회적 관습보다 더욱 마음이 열려 있다. 인간이 창조한 신뢰 시스템 중 유일하게 거의 모든 문화적 간극을 메울 수 있다. 종교나 사회적 성별, 인종, 연령, 성적 지향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유일한 신뢰 시스템이기도 하다.돈 덕분에 서로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해서 돈을 벌기까지, 그러니까 아마추어로 살 때까지는 상대적으로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고등학생 → 대학생이 될 때 나름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대학생 → 직장인이 될 때의 변화만큼 크지는 않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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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회사에 들어가면 저 개인은 지워지고, 돈의 요구, 사회의 요구, 직장의 요구에 따라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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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거대한 것들의 요구에 맞춰 지내다 보면 '나 자신'을 잃기 쉬워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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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임시완 분)가 웃음을 잃어버린 한석율(변요한 분)을 보고 이렇게 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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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을 견디는 방식, 부당과 허위의 가혹한 시간들을 견디는 방식으로 한석율은 입을 닫았다. (중략) 그는 웃음을 잃었고 우리는 그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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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를 잃었다'는 부분이 '나 자신'이 지워진 모습을 이야기하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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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의 시간, 주말이 있지만 그때도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에는 회사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 점점 더 쉬기 바빠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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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차피 힘든 거면, 나 자신을 잃을 거면 (누구나 인정하는 가치인) '돈이라도 많이 벌자'가 되는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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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나 자신으로 대할 수 있는, 내 편이 되어줄 것 같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싶은 마음도 그래서 생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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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이상의 실현'과 직장 생활이 일치하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 이상적인 말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