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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라 꽁머니

마음 에세이

[에세이] 바카라 꽁머니

민병식


해마다 한 번씩하는 건강검진에서 적신호가 켜졌다. 조금씩 수치 상으로 좋지 않은 방향으로 조짐을 보여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고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좋지않은 결과에 당황스럽다. 망가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의사와 면담을 했다.


"도대체 고장난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니네요. 앞으로 신경 엄청 많이 쓰셔야 겠어요."


주의사항을 듣고 식생활 개선 및 운동시간을 지금보다 많이 늘이고 약도 먹어야한다는 처방을 받고 한달 후에 다시 혈액검사를 받기로 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불변의 진리이건만 별거 아니겠지, 괜찮겠지하는 생각이 문제를 방치하게 되고 안일함의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더 망가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파트 야외 농구코트에서 할아버지와 손자로 보이는 꼬마가 바카라 꽁머니치기를 하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 갖고 놀던 나무 바카라 꽁머니다. 요즘은 좋은 장난감이 많기도 하거니와 바카라 꽁머니도 반자동 식이어서 외관도 화려하고 스위치만 누르면 불빛이 번쩍거리며 저절로 돌아가는 바카라 꽁머니가 있는데 전통 바카라 꽁머니 치기를 하다니 참 드문 광경이다.


전통 바카라 꽁머니는 돌리기가 만만치 않다. 밑에 쇠구슬이 박힌 나무바카라 꽁머니의 몸채를 아래에서부터 위로 채에 달린 끈으로 감은 다음, 바닥에 던져 놓으면서 동시에 바카라 꽁머니채를 잡아당기면 끈의 마찰로 바카라 꽁머니가 돌아가고 그 다음 바카라 꽁머니채로 바카라 꽁머니의 옆면을 계속 내리치면서 점점 가속을 가하는 방식이다. 주의할 점은 바카라 꽁머니를 땅에 내려놓을 때 때 무턱대고 힘만 주고 채를 세게 당기면 중심을 잃고 저만치 나가 떨어지고 바카라 꽁머니가 무사히 땅에 안착해서 돌아간다해도 몸통을 채찍으로 요령있게 잘 때려야 한다. 무턱대고 세게 때린다고 잘 도는 것도 아니니 살짝살짝 달래가며 때리는 적절한 힘의 조절이 필요하다.



꼬마가 몇번의 시도를 했음에도 바카라 꽁머니가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자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할아버지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시범을 보인다. 할아버지의 바카라 꽁머니가 돌기 시작한다. 빙글빙글 점점 빠르게 '얼씨구 절씨구' 빨강, 파랑, 노랑의 색동 저고리를 입은 아이가 춤을 듯 신명이 났다. 거기에 몇번의 채찍질을 가하자 더 빨리 씽씽 돌아간다. 꼬마가 기쁨의 탄성을 지르며 자기가 해보겠노라고 채찍을 건네 받아 때린다. 그러나 서툰 채찍질 몇 번에 결국 바카라 꽁머니는 비틀거리더니 또르르 힘없이 쓰러진다.


"에이, 나 그만할래요!"


"허허, 열심히 연습을 해야해요. 한 번에 잘되는것은 없지. 추운데 오늘은 그만하고 들어가자꾸나"


한 순간에 멈추는 바카라 꽁머니를 보면서 내 몸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바카라 꽁머니가 멈추지 않고 잘 돌아가게 하려면 많은 연습과 기술이 필요하다. 몸도 마찬가지다. 신체의 각 기관이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하고 건강이 유지가 되도록 하려면 달고 짜고 매운 음식을 멀리 하고 연습을 해야하는 데 자극적인 음식을 달고 살았던 것, 업무에 바쁘답시고 규칙적인 식사를 못한 것, 입에 달다고 패스트 푸드와 청량음료를 물 먹듯 마시던 습관 등이 건강을 해치게한 불순물이었다.


나 자신이 스스로를 위하지 않고 너무 혹사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교한 끈 감기와 정확한 타이밍의 챔질, 그리고 강약을 조절한 채찍질 이렇게 삼박자가 맞아야 돌아갈 수 있는 바카라 꽁머니처럼 올바른 식습관과 규칙적인 생활, 운동 등이 조화를 이루어야 건강도 유지될 것이다. 지금까지 난 세상에 내 몸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 채찍을 휘두르기만했다. 그 결과 여기저기 금이가고 상처가 생겼다. 그래도 새 것 보다는 못하지만 쇠구슬이 빠지고 나무가 깨져 못쓰게된 바카라 꽁머니가 되지 않음이 불행 중 다행이어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할아버지, 내일 또 연습하면 잘 할 수 있겠죠?"

"그래 그래, 금방 배울수 있을꺼야. 암요 암요."


꼬마도 연습을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할아버지 만큼 바카라 꽁머니를 잘 다룰 수 있다는 기대가 있듯 지금부터라도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아끼고 예쁘게 다루는 연습을 한다면 비록 낡았지만 아직은 쓸만한 바카라 꽁머니로 쌩쌩 잘 돌아갈 수 있음을 믿는다. 하루 종일 뿌옇던 하늘에서 하얀 솜뭉치가 떨어진다. 건강 검진 결과를 보고 착잡했던 기분을 토닥이듯 사복 사복 포근함으로 나를 감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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