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스물세 살부터 25년을 바카라해 온 남자가 나의 딸의 상주가 되어 빨간 눈으로 딸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우리 네 식구, 가족 명단에서 딸이 스스로를 삭제했다.
내 인생은 네가 떠남으로 끝났다고 이 슬픔만큼 어두운 장례식장에 앉아 되뇌인다. 조문을 안 받는다고 해도 올 수 있는 관계가 있다. 위로받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 우리 부부의 시작을 알고 바카라가 커가는 과정을 함께 해준 대학동창들이 눈물을 쏟으며 나를 안는다. 그래서인지 모두가 스물셋이던 그때, 우리의 시작이 떠오른다. 타임슬립하는 영화처럼 인생이 박살 난 시점에, 가장 꿈 많고 두려움 없었던 우리의 기원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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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을 적당히 알콩달콩 보내고 4녀 1남을 둔 아들바라기 시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는 득남 미션까지 한방에 해냈다. 둘째를 딸까지 낳으며 거 참 살맛 나는 인생이다 했다. 남편은 결혼 전 몇 가지 약속을 하였는데, 그중 하나는 해외에 나가 넓은 세상에서 바카라를 키우는 것이었다. 약속대로 남편은 주재원으로 두 번 나가게 되어, 바카라들은 인생의 반을 해외에서 보내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중간중간 투닥거리기도 하고 어려움이 있기도 했지만 삶을 뒤흔들 만큼의 위기는 아니었고 잘 극복해 왔다. 이만하면 잘 살았다 하는 인생이었다. 그러나 이제껏 차곡차곡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쌓아 왔던 가정이란 성은 막내의 죽음이라는 파도 한방에 모래성처럼 부서졌다.
사랑으로 키운 바카라는 결국 다 잘된다는 말은 거짓이다. 사랑으로 키워도 바카라는 죽을 수 있다. 결국 다 잘 된다는 바카라 속에 들어가길 바랐던 우리 바카라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 딸은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에 힘들었고 삶이 두려웠다고 했다. 늘 곁에 있었지만 바카라가 의지할 부모가 되지 못했다. 열심히 온 맘으로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바카라에게 닿지 않았다. 병을 알게 되었지만 낫게 하지는 못했다.
‘나의 세상이었던 가족, 바카라해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내 바카라이 떠났다. 내 세상도 사라졌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딸을 잃은 상주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품고 너의 엄마로 산그 시간이 내 생애 최고의 행복이었다는 사실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는 없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