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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갉아먹는 바카라 영어로에서 벗어나려 노력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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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사실 좀 바빴다. 아니 정확히는 몸이 바쁘다기보다 마음이 바빴다. 회사에서 간만에 좀 중요한 업무(외부 발표 업무)를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업무를 앞두고 내 정신과 몸의 상태를 점검하면서 나는 아직도 바카라 영어로의 망령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구나,라고 느꼈다. 그래서 이번 업무를 진행하면서 내가 어떤 일들을 겪었고,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으며, 그럼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한계는 무엇인지를 시기별로 기록해 놓고자 한다. (다음에 비슷한 일을 겪을 때 조금이라도 덜 시달리기 위해서이다)
Photo byBrett JordanonUnsplash
1. 10월 첫 연휴 - 바카라 영어로를 배당받고 불안해하기 시작
9월 말에, 10월 중순(두 번의 10월 연휴 직후) 외부 발표 업무를 네가 좀 해줘야겠다는 말을 위로부터 전해 들었다. 이때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아, 내 10월 연휴는 날아갔구나. 나는 이제부터 불안한 바카라 영어로자로서 안절부절못하며 10월 절반을 보내겠구나... 위에서 시키는 일이니 싫은데요?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하고 자료를 준비했다.
자료를 준비하는 건 사실 힘은 들지언정 고통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몇십 장의 PPT 장표,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나를 괴롭히는 건 발표였다. '누구 여기 바카라 영어로자인 사람?'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자신 있게 '저요 저요!'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바카라 영어로 성향이 심한 나이기에,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발표(소위 PT) 업무도 맡게 된다면 완벽하게 해내야 했다. 그리고 앞에 나가서 청중들에게 어색하지 않게 말하는 걸 잘 못 하는 나로서는 발표 업무만큼 스스로 완벽하게 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도 없었다. 무슨 업무를 하더라도 머릿속 10% 정도는 '아 그 발표 업무 준비해야 하는데...'에 할애되고 있었다. 불안과 바카라 영어로가 뒤섞여 나도 이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상태가 되었다.
2. 10월 두 번째 연휴 - 집에서 혼자 연습하는 불쌍한 바카라 영어로자
발표에 쓰일 자료와 스크립트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편안하지 못했다. 연휴 직후에 발표라니, 내가 연휴를 행복하게 보낼 수 없는 것은 정해진 일이었다. 연휴 첫날에는 애써 발표 바카라 영어로를 뒤로 미루어두고 연휴답게(책을 읽고 영상편집을 하며) 보내려고 노력해 보았다. 허사였다. 이미 머릿속의 90%가 발표 바카라 영어로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둘째 날부터는 이럴 바엔 그냥 연습을 해서 스크립트를 다 외워버리자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자고로 바카라 영어로자가 편안할 때는 완벽하다고 자부할 때뿐이다. 그러니 완벽히 외워서 한 글자도 틀리지 말고 발표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도 불가능했다. 10분이 넘어가는 발표를 완벽히 외워서 해낼 정도로 나는 발표에 능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연휴 3일간 나는 완벽하지 못한 바카라 영어로자(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가 되어 '아아 난 못 해 못한다고!'를 혼자 백만 번 외치며 괴롭게 보냈다.
3. 바카라 영어로 당일 - 누가 봐도 불안해 보이는 인물 1
마침내 D-day. 나는 10월에 있는 두 번의 꿀연휴를 업무에 대한 압박으로 넘겨버린, 누가 봐도 불안해 보이는 인물 1을 담당하고 있었다. 스크립트를 바카라 영어로하게 외울 수 없음을 깨닫고 나는 그냥 스크립트를 열심히 읽는 쪽을 택했다. 발표 장소로 가기 전까지 오전에는 평소처럼 업무를 해야 했는데, 업무가 잘 될 리 만무했다. 손 거스러미를 뜯어대는 버릇이 다시 튀어나왔고, 누가 쓸데없는 업무 문의를 하면 나도 모르게 날이 선 대응을 했다. 제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당일에도 발표일정이 갑자기 바뀌는 등 수많은 (바카라 영어로자가 견딜 수 없어하는) 일들이 일어났지만, 결국 나는 몇 번의 더듬거림을 거치며 발표를 별일 없이 끝냈다. 몇 명인가가 나에게 다가와서 '고생했어' 같은 말을 건넸다(사실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저 무사히 끝난 것이 다행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나 마음속 한편으로는 '바카라 영어로자인 나'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너 결국은 스크립트를 다 외우지 못해서 들고 읽었잖아!' '아까 이 부분은 연습할 때도 그렇게 틀리더니 실전에서도 틀렸구나!' 발표 업무가 끝나고도 개운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끝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4. 바카라 영어로 수행 후 리뷰 - 전보다는 나았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위에서 쓴 것처럼, 별문제 없이 발표가 끝났고 나름 긍정적인 피드백이 있었음에도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바카라 영어로자인 나'의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바카라 영어로자인 나'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그간 나는 공부를 (나름) 잘할 수 있었고 회사생활도 그럭저럭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바카라 영어로자인 나' 때문에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행복을 누리지 못했다. 늘 스스로에게 엄격했으며 큰 일을 앞두고는 불안에 떨었다.
결국 중요한 건 '중도'일 것이다. 모든 일에 완벽할 수는 없음을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과거의 (바카라 영어로가 더욱 극심했던) 나였다면, 연휴 3일을 온전히 업무에 쏟아붓고 출근을 하고 스크립트를 정말로 통째로 외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전보다 조금은 나아진 나였기에, 연휴에 다른 걸 할 시도라도 좀 해보고 스크립트를 보고 읽기로 스스로와 타협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라고 애써 생각해 본다). 다음에는 더 나아가서, 연휴에 불안해하며 일을 집에 가져가 연습하지 않는 내가 되길 기원해 본다.
정말 좋아하는 코난 오브라이언의 2011 다트머스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There are few things more liberating in this life than having your worst fear realized(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만큼 당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딱 들어맞는 예시라고 볼지는 조금 애매하지만, 나는 늘 완벽에 대한 강박 때문에 불안할 때면 이 말을 생각한다. 그래, 내가 그렇게나 두려워하는 '완벽하지 않은 상황'이 결국 마침내 일어나고 만다면, 그건 결국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완벽하지 못한 상태를 받아들이자. 여전히 나는 '바카라 영어로인 나'에게 자주 휘둘리며 지내지만, 다음에 또(아니길 바라지만) 발표 업무를 맡게 된다면 이번엔 더욱 완벽하지 않게 준비해보려 한다. 완벽하지 않은 나, 화이팅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