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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며 잠드는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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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라 두바이;그리고는 어쩐지 아주 이상해지네. (모자를 벗고 안을 들여다본다. 흔들어본다. 그리고 다시 모자를 쓴다.) 무어라고 할까? 마음이 놓이면 또 동시에...(적당한 말을 찾아내려 한다)... 소름이 끼치네. (강조하며) 소름이 끼치네. 이상해...바카라 두바이;


바카라 두바이에 대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을까. 남들 듣기에 무슨 소리인가 할 수 있어도 그는 애써본다. 마음이 놓이는 한편으로 소름이 끼치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 감정을.


바카라 두바이에 대해서 말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바카라 두바이은 항상 옳은가?

'희망 고문'은 어떤가. 희망이 간절한데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고통은 배가 된다. 빅터 프랭클 박사가 설명했던 '집행유예 망상'도 있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는 집행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집행유예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의지한다. 영화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에서 멸망해 가는 지구에 희망을 품는 퓨리오사에게 맥스는 말한다. 바카라 두바이;희망을 품는 건 실수야. 망가진 것부터 고치지 않으면 결국 미쳐버릴 거야.바카라 두바이;

바카라 두바이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절망도 없으니까 차라리 고통이 덜한 것일까.


한편, 단테의 신곡은 지옥의 첫 관문에 쓰인 문장을 소개한다. '여기에 온 자, 바카라 두바이을 버려라'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바카라 두바이이 없다면 바로 거기가 바로 지옥이다.

언제 봐도 채널이 멈추어지는 그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앤디를 이끌어온 동력은 그것이었다.

'바카라 두바이은 좋은 것입니다. 좋은 것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아요.'

죽을 고비를 넘기고 교도소를 탈출하여 평화로운 해변의 도로를 따라 스포츠카를 타고 드라이브하면서 그는 바카라 두바이의 가치를 다시 한번 떠올린다.


암흑이 사라지고 무대에 불이 켜진다. 무대는 단출하다. 서늘한 파란 하늘 아래 앙상한 가지가 있는 나무 한 그루. 반대편이 묵직한 바위 덩어리에 앉아서 남루한 옷차임의 두 친구가 떠들어댄다. 때때로 권태로운 침묵도 찾아온다. 말없음의 무게는 더욱 깊다.

어디를 가보려고도 하고 무언가를 계속한다고 믿고 있지만 언제나 제 자리이다.

같이 있다고 딱히 즐겁지도 않지만 어느 순간 보면 늘 함께 있는 사람도 있다.

바카라 두바이;자네는 내가 같이 있으면 더 기분이 나쁜 모양인데, 나도 혼자 있으면 더 기분이 좋다네.바카라 두바이;

바카라 두바이;그럼, 자네는 왜 돌아오나?바카라 두바이;

바카라 두바이;모르겠네.바카라 두바이;

정말 모르겠는데 모르겠다는 말이 이렇게 다가올 수가 있나. 어느 순간엔 옆에 그가 있다.


정말 하는 일이 없을까? 분명히 그들은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본 적도 없는 존재지만 기다려야만 한다. 어쩐 일인지 떠날 수도 없다.

바카라 두바이;이제 무얼 할까?바카라 두바이;

바카라 두바이;모르겠네.바카라 두바이;

바카라 두바이;우리 갈 수 없네.바카라 두바이;

바카라 두바이;왜?바카라 두바이;

바카라 두바이;우리는 고도를 기다리고 있네.바카라 두바이;

바카라 두바이;(절망적으로)아!바카라 두바이;


건망증처럼 다가오는 생애의 깊은 우물. 잊고 싶은 것일까. 하지만 그마저도 어렵다.

선문답 같은 대화가 오가고 이따금씩 터지는 블랙 유머, 그리고 랩의 라임과도 같은 반복되는 질문과 대답. 하지만 그 많은 수다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질문은 더해간다.


바카라 두바이;언제나 우린 무엇을 찾아내는데 우리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서일까?바카라 두바이;

어쩌면 그 많은 권태를 버텨가며 언제 올지 모르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서인가.


때때로 환멸이 찾아온다. 이렇게 무엇도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을까.

바카라 두바이;나는 이런 짓을 할 수 없네.바카라 두바이;

바카라 두바이;그 것은 자네 생각이지.바카라 두바이;

바카라 두바이;우리가 작별한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좋을 지도 몰라.바카라 두바이;

바카라 두바이;우리는 내일 목매달아 죽을 걸. (잠깐 있다가) 고도가 오지 않는다면 말이야바카라 두바이;


이상한 일이었다. 연극이 막바지로 치달을 즈음, 코가 시큰해진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혹시 소리가 날까 숨을 고른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삶이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은유가 꼼짝달싹 하지 못한 채 버티고 있다. 그 감정이 혼자만이 아니라 객석 전체에서 밀려온다. 누구도 환호하거나 탄식하지 않았지만 우리 삶의 어떤 맥락이 그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두 사람은 가까이 있는 나무에 목을 매어보려 하지만 그 마저도 실패해 버린다.

습관처럼 떠나보자고 말한다. 하지만 몸을 틀어도 언제나 그 자리이다. 인간은 평생을 뭔가 해보려고 벗어나보려고 발버둥쳐보지만 얼마나 많이 왔을까.

멀리서 바라본 한 사람의 일생의 풍경인지 모른다.


1915년 1월 18일, 버니지아 울프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미래는 어두운데, 이것이 미래가 띌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이다.' 울프는 미래가 바카라 두바이이라고 말하는 대신, 어두운 것이 자연스럽다고 적었다. 미래도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가 어두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바카라 두바이이 필요하다.


레베카 솔닛은 바카라 두바이을 조금 더 손에 잡히게 표현했다.

'바카라 두바이은 문이 아니라, 어느 지점엔가 문이 있으리라는 감각. 길을 발견하거나 그 길을 따라가 보기 전이지만, 지금 이 순간의 문제에서 벗어나는 길이 어딘가에 있으리라는 감각이다. '

문이 있다는 확증이 있기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 문이 있으리라는 감각에 의지하는 것. 길이 지도에 있어서가 아니라 길이 있다는 감각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바카라 두바이이다.


때때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러 가는 아일랜드 어느 작은 마을 사람들을 떠올린다. 별다를 것 없는 일과를 마치고 흔한 장식도 화려함도 없는 소박한 무대에서 허름한 차림새로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보러 간다. 우리의 모습처럼 드라마틱한 사건도 엄청난 반전도 없다. 거울 같은 그 기다림을, 바카라 두바이을 바라보다가 극이 끝날 무렵에는 뭉클해진 심정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불을 끄고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또 기다린다.

바카라 두바이이 그렇게 쉬운 것이었다면 평생을 기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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