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를 할 때 살을 빼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방이 빠진 자리를 건강하게 채우는 것도 중요하다. 무조건 몸무게를 낮추기만 하면 있어야 할 것들도 함께 없어져 오히려 건강이 나빠질 수도 있다.
채도가 빠진 화면은 보는 재미도 함께 빠질 위험이 있다. 하지만 <하얼빈의 화면은 핏기가 없음에도 힘을 잃지 않는다. 시종일관 어두운 옷을 입은 사내들이 어두운 화면 속을 서성거리지만 미술팀의 작업은 다양한 배경에서 관객들의 집중력을 유지시킨다. 주제가 대놓고 감독을 유혹하는데도 기어이 신파와 손을 잡지 않았다는 점도 훌륭하다. 서사는 바싹 마른 바게트 빵처럼 담백하다 못해 퍼석하게 캐릭터들을 몰아친다. 같은 맥락에서 소위 국뽕이라고 불릴 만한 요소도 찾아보기 힘들다. 바카라 드래곤 보너스는 제목 그대로 안중근 한 명을 집중 조명하기보다는 '하얼빈'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난 일을 다양한 인물들의 얼굴과 심정을 통해 조명한다.
잘 빼낸 것들
아쉬운 점은 빠져야 할 것들이 잘 빠져나갔지만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 오직 비장함뿐이라는 점이다. 물론 비장함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바카라 드래곤 보너스의 메시지와도 잘 어울리고 그 주제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바카라 드래곤 보너스는 다채로울 수 있다. 하지만 인물들의 결정, 대사의 공백, 장면과 장면 사이의 빈 공간에도 오직 비장함만이 그 자리를 채우다 보니 114분 동안 관객들이 소화해야 할 비장함의 그릇이 넘쳐버리는 느낌이다. 웃음을 유발하는 구간이나 말장난 같은 대사가 필요했다는 말이 아니라 같은 비장함이더라도 이야기가 전진함에 따라 빛깔이라도 조금씩 달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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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하얼빈은 뺄셈에 성공한 담백한 바카라 드래곤 보너스다. 주조연진의 연기도 준수하고 장면 장면의 완성도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편하게 추천하거나 언젠가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