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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엔 그 바카라 토토이 딸의 공연을 보러 가도 되겠느냐는 질문을 했다. 내게 묻는 것이 예의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예의라는 말을 덧붙이며. 생각해 보면 그 바카라 토토은 나를 참 많이 생각해줬다. 눈치를 보고 피하는 건 나였다. 그때도 나는 내키는 대로 하라는 대답을 했다. 실은 가지 않기를 바랐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바카라 토토은 가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대로 마음이 불편했다. 온통 불편함 투성이었다. 애인이 아닐 때는 설렘이던 그 불편함이 애인이 되자 본모습을 드러냈다. 그래도 소유할 수 있어 기뻤다.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나를 자꾸만 내가 세뇌했다.


이따금 영이 생각났다. 아무렇게나 내뱉으며 아무렇게나 섹스어필을 할 수 있는 영이. 적당한 거리에서 원하는 만큼 취하고 가고 싶을 때 가버릴 수 있는 그런 게 자꾸 생각이 났다. 거의 모든 주말을 그 바카라 토토과 함께 보냈다. 함께 본 영화도, 드라마도 많아졌다. 함께 먹은 음식도 많아졌다. 그 바카라 토토이 음식을 만드는 취미가 있어서 나는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물끄러미 뒤에서 바라보거나 휴대폰으로 촬영하며 방청객 역할에 진심을 다했다. 그가 만드는 음식을 먹는 것이 좋았다. 꼭 그 바카라 토토의 사랑을 먹는 느낌이 들었다. 밤을 함께 보내고 아침을 함께 맞으며 우리는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이렇게만 살면 좋겠다. 그 바카라 토토은 자주 그렇게 말했다.


가끔은 비어있는 그 바카라 토토 집에 먼저 들어가 집안일을 했다. 그 바카라 토토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는 내가 썩 마음에 들었다. 나도 이렇게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불편해도 괜찮아. 내가 계속 선을 그어야 해도 괜찮아. 그 바카라 토토만 있으면 다 괜찮아. 나는 이런 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옆에 둬야 하겠다는 것.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마음. 그리고 행동.


그리고 그 바카라 토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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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없이 사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참다못한 내가 그에게 한 말이었다. 이런 지긋지긋한 불확실함에서 벗어나고 싶어 충동적으로 술을 먹고 던진 말이었다. 그는 이제 좀 나아지는 듯했는데, 라며 여지를 남겼고 나는 술을 미워하고 충동성을 혐오하게 됐다. 그 바카라 토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내 세계가 뒤흔들리는 것이 너무도 싫었다. 홀로 서고 싶었다. 이깟 바카라 토토 따위에게 흔들리고 매달리는 인생이 아니라, 홀로 오롯이 서 있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어디 삶이 뜻대로 되는 물질이던가. 내가 한 이별통보에 내가 매달리고 말았다.


일주일에 두어 번 오던 연락이 열흘이 돼도 오지 않았고, 열흘이 2주가 되기도 하며 간간한 연락을 받았다. 그 바카라 토토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마치 윤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듯. 나는 이것 또한 윤이 내린 저주라고 생각했다. 그래, 나 따위가 무슨 사랑을 해. 윤아, 미안해.


그 어딘가에서 세상에 부정적인 것들은 모두 껴안은 듯한 상처 입은 눈을 한 바카라 토토을 만났다. 혼자 술을 먹던 그 바에서.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그는 일행을 떠나보내곤 혼자서 술을 퍼먹고 있었다. 그래. 퍼먹는다는 게 맞는 표현일 정도로 무섭게 술을 들이켰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그도 나를 계속해서 쳐다봤다. 정신 차려 보니 바 화장실에서 그와 키스를 하고 있었다.


“혀가 너무 예쁘다.”

“뽑아 먹어봐.”


혼자 돌아오는 길에 목 놓아 울었다. 바카라 토토들이 쳐다봐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환영인지 진짜인지 모를 것들. 이다지도 힘든 것이 시간이라면 나는 모조리 윤에게 갖다 바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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