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건축물과 조각상, 크고 작은 분수들, 그 무엇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나의 두 눈과 고개가 바쁘게 돌아간다.
이십 대 초반,
몸에 소름을 돋우며 처음 들었던 스페인의 기타리스트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기타 줄의 간드러진 떨림에 흐르는 애절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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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이가 멋있었던 드라마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간간이 보여준 에볼루션 바카라의 골목과 주황빛 성벽 알람브라 궁전의 신비로움을 풀기 위해 에볼루션 바카라에 왔다.
오른쪽에는 알람브라 궁전을 끼고 강이 흐르고, 왼쪽으로 레스토랑이 줄지어 서있는 좁은 길을 지나 숙소로 올라가는 언덕길이 나타났다.
숙소는 가난한 집시 마을 분위기처럼 허름하고 낡았지만 욕실이 딸린 방을 혼자 쓸 수 있었고, 바로 앞에는 커피맛이 좋은 작은 카페도 있었다. 무엇보다 알람브라 궁전과 가까웠으며, 멋진 일몰을 볼 수 있는 미라도 언덕 밑이었고, 플라멩코 쇼가 열리는 동굴은 걸어서 5분 거리였다. 숙소 안주인은 키 작은 나의 외할머니 모습과 비슷했다. 짐을 풀고 집 앞 카페에 들어가 간단하게 블루베리 크레페와 커피를 주문한다.
알람브라 궁전 관람은 내일로 예약되어 있고, 오늘은 에볼루션 바카라 성당과 시내 알카이세리아(Alcaiceria) 마켓을 구경할 것이다.
오래도록 생각만 해왔던 에볼루션 바카라에 실제로 왔다는 벅참과, 이제 그 여행을 시작할 거라는 두근거림, 상큼 달콤한 크레페맛이 입 안에 퍼지며 몸 전체에 행복감이 차올랐다.
에볼루션 바카라 집시마을 사크로몬테 언덕길
스페인의 길은 참 아름답다.
자갈과 블록, 돌멩이들이 섞여 때론 자연스럽게, 때론 기하학적인 패턴으로 문양을 낸 길은 계속 걸어도 지루하지 않다. 이어지는 골목과 골목, 언덕과 언덕사이를 걷고 있으면 길을 잃어도 괜찮을 듯한 편안함을 준다.
오래된 건물과 벽에 새겨진 조각을 보고, 마을의 작은 광장을 보고, 하얀 벽에 매달려있는 화분장식과, 마이크로 윈도 오피스에도 없는 그들의 휘어지는 활자체를 보고 있으면 마치 중세시대의 어느 마을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는다.
에볼루션 바카라의 골목길을 얼마나 걸었는지 발뒤꿈치가 까진 채로 운동화를 접어 신고, 미로처럼 이어지는 골목을 또 한없이 걸었다.
대성당에 도착해서 성당 내부의 화려함과 웅장함에 도취되어 몇 시간을 보내고 나니 배가 고팠다. 오늘은 시간에 맞춰 에볼루션 바카라 델 디아를 꼭 먹어볼 참이었다.
식당이 즐비한 람블라스 광장으로 가서 어느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입간판에 적혀있는 에볼루션 바카라 델 디아의 에볼루션 바카라가 좋았고, 식탁 위에 놓인 주황색 꽃이 예뻐서였다. 오늘의 에볼루션 바카라는,
시원한 토마토 가스파쵸 앙트레
닭가슴살과 감자 메인
블루베리 치즈케이크 디저트
토마토 가스파쵸
어떻게 먹느냐 물었더니, 올리브조각을 가스파쵸에 부어서 섞어 먹으란다. 사각사각 씹히는 생올리브의 식감이 오이처럼 시원하다. 이어지는 메인 요리와 디저트 케이크까지, 모든 것이 맛있고 가격마저 완벽하다.
사진을 이리 찍고 저리 찍고, 음식을 먹기 전에 찍고 다 먹고 난 후 찍고, 꽃병을 이리 놨다 저리 옮겼다... 나를 비롯해서 주변의 다른 사람들, 잔잔히 흐르는 음악, 날아드는 비둘기들, 찬란한 햇살, 나를 위한 이 시간 속의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에볼루션 바카라는 시내관광에 대한 안내가 제도적으로 잘 되어있었고 교통시설이 편리했으며, 그만큼 여행객도 많았다. 에볼루션 바카라 도심지역을 3개의 노선으로 나누어 독일 벤츠사의 미니버스가 하루 종일 마을을 순환한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관광안내소는 깨끗하고 조용했으며, 쉬어갈 수 있는 공간과 함께 영어가 가능한 안내원이 항시 근무하고 친절했다.
* 에볼루션 바카라 델 디아(menu del dia)는 '오늘의 에볼루션 바카라'라는 뜻으로,애피타이저-메인-디저트로 이어지는 코스 요리다.
평일 오후 2시-4시 점심으로 제공되며, 그날의 재료에 따라 에볼루션 바카라가 달라진다.
가격은 10-20유로이며, 보통 2-3가지 다른 종류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어서 선택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