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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바카라 치열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어

JTBC 바카라 《옥씨부인전》


2024년 12월 27일 금요일. 올해의 마지막 글을 올린다. 해마다 연말이면 느끼는 감정들이 올해도 여지없이 찾아왔다. 한해를 잘 살아냈다는 기쁨과 그렇게 사느라 바카라 고단했을 내 자신에게 드는 안쓰러움이 교차된다. 아쉬웠던 순간도 있었고, 뿌듯했던 때도 있었다. 어쨌든 나와 내 가족, 내 친구들이 무탈하게 잘 살아왔으니 된 거다. 그럼 됐다.


되돌아보면 2024년은 내게 특별했다. 바카라를 시작하고 매주 내 생각과 감정을 영화나 문학작품을 빌려 '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난 감정표현에 서툰 사람이다. 감정표현은 나이가 든다해서 자연스럽게 좋아지지 않는다. 끝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한 걸음 내딛었으니 내년에는 좀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올해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학교 수업 외에 12주간 지방강의를 다녔고, 그 수업들을 준비하느라 애썼다. 강의실은 물론 연구실과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교재와 각종 보고서들을 썼다. 구십이 넘은 아버지와 구십이 다 된 어머니가 걱정되어 바쁜 시간을 쪼개 최대한 많이 본가에 가려 했다. 세 끼 밥과 영양제들을 다 챙겨먹으려고 바카라기도 했다.


05했다. 주변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다정한, 예쁜 말만 하려고 했다. 살아갈 시간이 바카라 인생에 비해 짧다는 걸 알기에 두루두루 사이좋게 지내려고다. 인생이 뭐 별건가.살.아.보.니, 긴. 하.루.들.이. 모.여. 짧.은. 인.생.이. 되.더.라.어차피 나도 남도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을 터, 굳이 싸우고 질투하고 큰소리내지 말자. 그렇게 바카라 한 해다.


사는 게 뭐, 대단할 거 있겠느냐


사는 게 뭐, 대단할 거 있겠느냐
보잘것없는 것 나눠먹고
형편없는 농에 웃어가면서
비가 오면은
네 머리에 손을 올려 비를 막아주고
네 얼굴에 그늘이 지면은
바카라 옆에서 웃게 해주마
너무 바카라 치열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어

- 《옥씨부인전》 5,6화


위의 인용은 현재 JTBC에서 방영하고 있는 주말바카라 《옥씨부인전》에 나왔던 대사 중 일부이다. 《옥씨부인전》은 "이름도 신분도 남편도 모든 것이 가짜였던 외지부 옥태영과 그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예인 천승휘의 바카라한 생존 사기극"이다. 이 작품은 1542년 프랑스에서 벌어진 '마르탱 게르의 귀환' 사건과 1607년 조선에서 일어난 '가짜 남편 사건'을 모티프로 하여 창작했다고 한다.


《옥씨부인전》은 양반과 노비, 남자와 여자, 적자와 서자, 충신과 간신, 성소수자 등 사회적 관심을 끌만한 많은 요소들을 한껏 차용한 바카라다. 뿐만 아니라 진짜와 가짜가 착종되어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는 혼란 속으로 시청자들을 끌고 들어간다. 총 16부작으로 기획되었고, 이제 6화를 마쳤으니 아직 작품에 대한 평가를 하기엔 이르다. 좀더 지켜봐야 한다. 다만 5화에서 천승휘(송서인)와 옥태영(구덕이) 간의 대화가 인상적이어서 여기 소개한 것이다.


난 지난주 어느 불면의 밤, OTT에 올라온 이 바카라(1~6화)를 이틀에 걸쳐 몰아봤다. 그러던 중 5화에 이어 6화에도 회상씬으로 반복된 이 대사가 내 눈과 귀에 꽂혔다.


너무 바카라 치열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어


나의 2024년을 되돌아보니 온통 바카라 치열한 기억뿐이다. 하긴 늘 그래왔던 것 같다. 내가 서있는 지층이 조금이라도 흔들릴 때, 위기라고 판단될 때, 불안하고 힘들 때, 난 절망하기보다는 온몸에 힘을 준다. 무섭고 두려운 감정을 감추고 어깨에 힘을 빡!, 주먹을 꼭 쥔 채 똑바로 세상을 본다.


덤벼! 다 덤벼!


내 방어기제가 바카라 과하게 작동되는 건지, 내가 스스로에게 유독 가혹한 사람이라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불행이나 비극이 닥쳤을 때 어둔 방에 주저앉아 오래도록 숨어 있어야 충전되는 사람도 있고, 불행을 모른척 외면하는 사람도 있고, 차근차근 해법을 모색하며 지혜롭게 자신을 추스리는 사람도 있다. 이중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난갑자기 전장에라도 나가는 듯 사방을 경계하고 무기와 전열을 정비한다. 주먹을 바카라 꼭 쥐어 손바닥에 손톱이 박힐 정도로 각성상태를 유지한다.


그런 내가, 우연히 본 드라마에, 그 상황은 분명 남주여주의 알콩달콩 달달한 애정씬인데, 나 혼자 주책맞게 눈물이 터져 한참을 울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그 대사가, 마치 누군가 긴장으로 딱딱해진 내 등을 가만가만 쓰다듬는 느낌, 꼭 쥔 주먹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따뜻하게 펴주는 느낌. 이제 주먹 풀어.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널 너무 벼랑 끝으로 내몰지 않아도 돼. 너무 바카라 치열하지 않아도 돼...


그래. 이 세상이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듯이, 내가 쌓아올린 성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만하면 난 참 잘 살아온 거다. 더이상 바카라지 말자, 치열해지지 말자. 그래도 괜찮다. 한껏 게을러지자. 타인에게 그러하듯 내게도 너그러워지자. 자신, 자긍, 자존, 자애를 넘어 자뻑이면 어떠랴! 2025년 푸른 뱀의 해에는 그 누구보다 날 가장 사랑하며 느긋하게 천천히 살아야겠다.




《매혹의 문장》바카라북을 아껴주시는 구독자님들, 오다가다 들러주시는 다정한독자님들, 당신들이 있어 올 한해 행복했습니다. 내년에도 지금처럼 한결같은모습으로 늘 이곳에 있겠습니다. 며칠 안 남은 2024년 잘 마무리하시고, 따뜻하고 벅찬 새해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꾸벅!- 바다와강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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