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2학년 때로 기억한다. 새벽에 바카라 나락가 휘청거리는 다리를 끌고 집에 들어와 쓰러지듯 소파에 몸을 구겼다. 정신이 여기 있지 않은 표정, 어떤 질문도 귀를 통과할 것 같지 않은 얼굴, 바카라 나락의 그런 모습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니, 속 시원하게 말 좀 해봐. 그놈 지금 어디 있데?”
바카라 나락의 표정을 보고 마음이 쿵 내려앉았는데, 엄마의 울부짖는 듯한 질문을 듣고, ‘어떤 나쁜 놈을 찾고 있는데, 그놈을 아직 못 찾아서 바카라 나락가 저렇게 혼이 나갔구나’하고 납득했다. 도대체 어떤 놈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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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부터 사업을 했던 바카라 나락는, IMF 때 사업이 한 번 휘청했지만 단단하게 일어섰다. 그 후로 주식으로 수억을 날렸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척했다. 적어도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본 적은 없었다.
“온갖 똥물은 내가 혼자 뒤집어쓸 테니까, 우리 집 여자들은 가만히 나를 믿기만 하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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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지 사업가 시절의 바카라 나락는 전보다 더 과묵하고 표정이 없었다. 항상 날이 서 있었고, 위기가 와도 함께 나누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고, 사업이란 것이 맘처럼 풀리지 않는 것이 정상이니, 신경 쓰지 말라는 표정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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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어른이라고 했던 바카라 나락들이 다 세상에 없고, 어떤 고민도 털어놓을 곳이 없다는 게, 그게 진짜 외로운 거 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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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비싼 수업이었지만, 귀한 수업이다. 돈 주고도 못 듣는 수업인데, 내는 돈 주고 들었거든. 실패라고 생각하면 안 돼. 내 아직 안 죽었거든?”
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혼잣말 하던 바카라 나락를 보며, 바카라 나락와 둘이 술 한잔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었다.
캄캄해도 눈을 감지 않는 바카라 나락,
맨 앞에서 맨 뒤에서 걸어가는 바카라 나락,
더 좋은 어른이 되려고 애쓰는 바카라 나락
김소영 <어떤 바카라 나락에서
바카라 나락가 사업에 실패하고, 어떤 심정으로 그 긴긴 동굴을 빠져나왔는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그저 언제부턴가 빠져나와서, 우리 곁에 다시 ‘어른’으로 있어 주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나도 이제 누군가의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나도 바카라 나락처럼 단단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한다.실패해도 포기하지 않는 바카라 나락, 꾸준하고 열정적으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바카라 나락, 세상엔 돈보다 가치 있는 일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바카라 나락, 말없이 삶으로 멋진 인생을 보여주는 바카라 나락, 고민이 있을 때 문득 떠오르는 바카라 나락,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아마 나와 같은 생각으로 바카라 나락가 그 잔인하고 외로운 동굴을 빠져나오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