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북스테이 이틀 전부터 눈이 왔다. 첫눈에 폭설이었다. 몇 달간 식음을 전폐, 아니 전념하며 고친 소설 꾸러미를 품에 안고 눈밭에 푹푹 발을 빠뜨리며 우체국 가는 길에 바카라 체험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이게 뭔 일이래니. 바카라 체험머니 갈 수 있을까?”
“하...그니까.”
자매들과 북스테이를 하기로 계획한 건 지난 추석이었다. 도무지 가시지 않는 늦더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을 와작와작 깨물어 먹으며 공원 산책을 하던 중 문득 말이 나왔다. 내가 딸아이와 함께 한 출판단지 북스테이가 좋았다고 시간 나면 딸들 데리고 같이 한번 가자, 하다가 내친김에 숙소 예약을 해버린 것이다. “몰라, 일단 질렀으니까 무조건 가야 돼.” 하면서 단톡방까지 만들고 뿔뿔이 흩어져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날짜가 닥쳤다. 그동안 나는 매년 떨어지기만 하는 신춘문예에 소설을 내겠다고 이미 닳도록 고친 소설들을 붙잡고 골머리를 앓았고, 셋째는 혼자서 가게 월매출 500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바카라 체험머니는 학원생 유치를 둘러싼 동네 학원장들과의 기싸움에서 승기를 거머쥐었다. 그런데 뭘까...두어 달 빡시게 일한 뒤 조용한 데서 재충전 하자는 애초의 의도에 먹구름이 드리우는 것 같은 이 기분은...
일단 바카라 체험머니와는 하루 더 상황을 지켜보고 결정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이틀 전이나 하루 전이나 취소 환불금은 없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나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눈이 많이 오면 북스테이는 포기하고 딸과 바카라 체험머니네 학원 행사나 돕고 와야겠다 생각했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특강반 수강생을 모집 중인 바카라 체험머니는 여행 당일 학원에서 ‘어묵파티’를 하고 서너 시쯤 출발하겠다고 했던 터였다. 그래, 편히 쉬기는 틀린 이놈의 팔자 일이나 하자며 하루를 보냈는데, 눈 온 뒤 기온이 급강하하겠다던 날씨는 다음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시침을 뚝 떼고 온화하기만 했다. 따스한 햇볕에 정강이까지 쌓였던 눈이 속속 녹아내렸다. 이대로라면 다음날 무리 없이 숙소까지 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뒤늦게 추워지면 위험할 것 같기도 하고...아니 어쩌라는 거여, 가라는 거여 말라는 거여, 하면서 갈팡질팡하다 결국 저녁이 돼서야 가기로 결정이 났다. 애초 인원은 바카라 체험머니와 나, 셋째, 그리고 나와 셋째의 동갑내기 딸 둘이었는데 엄마의 은근한 압박으로 올케가 합류하기로 했다. 남편 없이 시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 부담스러울 텐데 올케는 흔쾌히 함께 가겠노라 참여 의사를 밝혔다. 게다가 어차피 가는 길이라며 차 없이 이동하는 나와 딸을 픽업하러 오겠다고까지 했다. 눈길에 새색시를 운전시키는 게 영 미안하고 불편했지만 한 달 전부터 같이 가겠다고 한 사람을 이제 와 쏙 빼기도 마뜩잖아 일단 그대로 GO, 하기로 했다. (뺄 걸 그랬나? 막상 쓰다 보니 너무 진상짓인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니나 다를까 밤 열한 시가 넘어 셋째에게 전화가 왔다. 그냥 우리끼리 다녀오면 될 걸 왜 올케를 불러들여 불편하게 만드느냐는 것이었다. 세상에 시댁 식구 편한 사람이 어딨느냐며 올케도 우리도 불편할 일을 왜 하는 거냐 따지는데 잠이 홀딱 깼다. 그래도 이제 막 식구가 되었으니 불편할지 아닐지 시도를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따질 거면 한 달 전에 미리 따지지 이제와서 난리냐 한마디 했드만 그때도 이미 바카라 체험머니들끼리 결정하고 말한 거였는데 어쩌란 거냐고 또 지랄지랄. 생각해 보니 셋째가 워낙 바빠 일단 제쳐 놓고 일을 진행한다는 게 그렇게 된 모양이었다. 오밤중에 침대에 앉아 셋째에게 이왕 이리 됐으니 한번 가보자고 다시는 안 그러마 다짐까지 하고서야 겨우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나니 겨우 하룻밤 쉬고 오는 게 이렇게 힘들 일인가? 에라 모르겠다 그냥 파토 내 버릴까 싶은 마음이 불뚝 솟았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보기로 했다.
여행 당일 다행히 날은 따뜻했고 도로가 혼잡하긴 했지만 우리는 순조롭게 일정을 시작했다. 올케와 나와 두 딸은 이천의 바카라 체험머니 학원에 모여 어묵 파티를 돕고 함께 출발하기로 했고 회사 일이 늦게 끝나는 셋째는 저녁에 숙소로 오기로 했다. 장소를 옮겨 새로 개원한 학원은 큰 길가에 있어 환하고 넓었다. 우리는 바카라 체험머니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젊은 두 딸은 아이들이 그동안 모은 포인트로 물건 사는 것과 게임을 진행하고 올케와 나는 어묵을 맡았다. 학원생들이 친구들까지 데리고 와 교실이 아이들로 터져나갈 듯 북적였다. 두 딸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긴장하던 올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야무지게 아이들과 소통했다. 그러면서 “큰바카라 체험머니는 어떻게 이렇게 많은 애들을 다 감당하시는 걸까요. 너무 대단하세요.” 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그 모습이 참 고맙고 예뻤다.
29
다 같이 우르르 아침 산책을 나간 길에 사진 찍는다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 하다가 카드 키를 떨어뜨린 나는 느긋바카라 체험머니 브런치를 먹고 방문 앞에 다 와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체크 아웃 시간을 삼십 분 남겨 놓고 똥줄 타게 왔던 길을 되짚으며 헤맨 끝에 다행히 겨우 산책로 한 가운데 떨어진 키를 찾았다. 아...분명히 쉬러 왔는데, 즐거운데, 힘든 이유는 뭘까.
아슬아슬하게 체크아웃 시간을 맞추고 서점에 들러 책과 다이어리, 달력을 사고 점심까지 후닥닥 먹고 올케를 놓아준 후, 바카라 체험머니 세 자매는 딸들을 데리고 헤이리 마을을 한바퀴 돌았다. 나온 김에 근처 아울렛에서 왜인지 늘 춥게 입는 이십 대 딸들에게 두툼한 외투를 사 입혔다. 그리고 또 만난 김에 셋째의 저녁 장사를 돕기 위해 망원동까지 가기로 의기투합했다.
“우리 이거 여행 맞는 거지, 바카라 체험머니?”
“그럼, 지치면 안 돼! 할 수 바카라 체험머니!!”
“할 수 바카라 체험머니! 아싸!!!”
편안한 북스테이로 계획된 여행은 차츰 극기훈련이 되어갔고 우리는 어느새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처럼 구호를 외치며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으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사나, 우리만 그런 건가? 왜 항상 우리네 삶은 이렇게 극한으로 치닫는 걸까. 바카라 체험머니도 나도, 셋째도 영문을 모른 채 저녁 장사를 마치고 우리의 재간둥이 박상무의 신메뉴를 시식하고, 새벽까지 여는 치킨집에서 짧은 뒤풀이까지 하고 장렬히 전사했다.
그래 아직은 아닌갑다. 아직은 우리 좀 더 달려야 하나보다. 까짓것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뭐. 바카라 체험머니야, 셋째야 지치지 말자! 할 수 있다. 아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