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갑자기 인터넷 바카라을 다시 한번 더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아파트에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장에 인터넷 바카라, 와플 트럭이 들어왔다. 종이봉투에 넣은 인터넷 바카라 두 개를 받아 들었다.
1999년 1월 9일... 이 날도 인터넷 바카라을 먹었었다. 어떤 분이 표를 주셔서 남편과 함께 예술의 전당에 공연을 보려 갔었다. 바리 이야기로 오페라를 만들었던 것 같은데... 공연 끝나고 나오니 눈도 내리고, 춥기도 참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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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서로 시합하듯이 코트 주머니를 뒤져서 100원 인터넷 바카라라도 찾기 시작했다. 토큰이라도 나와도 그거 돈으로 바꾸자, 그 심산이었다. 그러다가 내 주머니에서 500원짜리가 튀어나왔다! 남편이랑 나는 와아!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ㅋㅋㅋㅋ (가여운 것들... ㅋㅋㅋ)
그때 우리는 정릉에 '복지 아파트'라는 이름의 군인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파트 꼭대기에 달린 간판에서 갑자기 ㄱ자가 떨어지는 바람에 북악터널 가기 전 그 큰길을 지나가는 모든 시민들이 웁스! 를 외쳤다던 전설의 아파트! 아파트 들어가기 전 버스 종점이 있는데, 그 근처에 밤늦게까지 인터넷 바카라을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우리는 주저 없이 그 500원으로 인터넷 바카라 한 개를 샀다. 그리고 나누어 먹었다. 지금도 왜 그 인터넷 바카라이 기억이 나냐면... 돈이 없이 가난한 시절도 시절이지만, 남편이, 지금 생각하면 그 스물다섯, 스물여섯살 겨우 닿은어린 친구가 임신한 아내에게 계란 있는 데를 싸악 손으로 도려서 나를 줬었다. 그래서 기억을 지울 수가 없다. 불쌍하고 고마워서... 그리고 자기는 밀가루빵 덮은 것을 반을 똑 떼어서 한 입에 쏙 먹었다.
지금 같으면 가정 경제가 이 지경이면 불안해서 견디지 못했을 것 같은데, 이때는 이렇게 인터넷 바카라 하나로 잘 견뎌서 살았다. 아마 지금보다 세상을 잘 모르고 패기 넘치는 젊음이 있었기에 그럴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는 다음 날 10일이 군인들 월급날이어서, 어디서 뭐 나올 구석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내 생각에 인생의 최고 승자는 역시 회사 구내식당에서, 혹은 우연히 들어간 자그마한 밥집에서 진심이 담긴 정갈한 음식을 내주셨을 때 큰 행복감, 감사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다. 만 원짜리 밥상 하나로 유명한 호텔 뷔페나 한 끼에 수십만 원 하는 오마카세 이상의 행복감을 느낄 줄 아는 이들(물론 뷔페나 오마카세 또한 너무나 행복한 미식 경험이다!), 정말 작은 것에 충만한 마음으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이들이 제일 부럽다. 그렇게 되고 싶다. 생각해 보니 1999년 어느 겨울밤, 인터넷 바카라 하나로 그렇게 행복할 수 있었던 내가 그립기도 하다. 이렇게 이날 하루, 지금은 멀리멀리 있는 전남편이 인터넷 바카라에서 계란 쪽 잘 떼어서 나 준 것이 생각나다니... 그냥 이 순간 한 토막만 생각하면 참 행복한데, 드론 올리듯 인생을 쭈욱 위로 올려서 길게 보면 너무나 처참하게 곪았고, 견디는 것조차 괴로워서 전체를 숭덩 잘라내야 할 때가 있다.
오늘은 인터넷 바카라 한 개를 먹으며 몇 입 베어 먹다가 나도 빵 안의 계란을 한 번 떼보았다. 잘 떼어졌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전. 간이 되지 않은 빵 안의 밍밍한 계란보다 노오란 밀가루 빵이 더 맛있다는 것. 게다가 2024년의 인터넷 바카라은 한 개에 1500원. 25년 동안 세 배가 올랐다. 나는 스물여섯 살에서 쉰한 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