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에블루션 바카라 174일째, 새벽 알람에 잠깐 눈을 떴지만 주말이라는 핑계로 다시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꾼 악몽 탓인지 정신이 무척 피곤했다. 아홉 시쯤 일어나서 두 시간짜리 F91건담을 보며 머리를 식혔다. 어른들의 전쟁 속 다양한 군상과 피해를 입는 사람들, 당당한 군인들의 모습을 보며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한때 이름이 멋져서 알게 되었던 작품을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된 기분이었다. 배고파하는 아내에게 라밥을 해주고 정리까지 마친 뒤 골프연습장에 가서 공을 쳤지만 잡념이 많아서인지 공이 잘 맞지 않았다.
병가에블루션 바카라 175일째, 악몽이 이어져서 월요일 아침에 제대로 일어나기 어려웠다. 내일 출근이 부담으로 남아 있는 듯해서 마음을 편히 먹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오늘은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처가에 카시트를 보관한 뒤 마음을 비우며 공을 치기로 했다. 그러다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복직일이 하루 늦춰졌다고 들었다. 대신 복직 가능 진단서를 오늘까지 제출해야 해서 병원에 가서 서류를 받았다. 아내가 이삿짐 업체에 적극적으로 연락해 갑작스레 견적을 받았는데 반포장과 포장 모두 만만치 않은 금액이라 이사준비에 고민이 깊어졌다. 점심을 먹은 후 아내와 볼 일을 마치고 골프연습장에서 공을 치다가 돌아오는 길에 신전떡볶이에서 떡볶이를 포장해 왔다. 500원이 인상된 가격에 놀랐지만 여전히 맛은 좋았다. 최근 서운했을 아내가 잘 웃어주어 다행이었고 상담소 의사에게서도 당분간 그녀를 마음대로 두라는 조언을 들었다. 저녁에는 플스로 위닝, 슈로대, 용과같이를 하며 휴식을 취했다. 새로 구입한 외장하드가 금방 차오를 정도로 서버 정리에 쏟아부을 자료가 많아 조금 걱정되었다.
병가에블루션 바카라 176일째, 어제 늦게까지 게임을 하느라 알람에 맞춰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지만 예상치 못한 휴일이 하루 더 생겨 기분이 좋아졌다. 여섯 달의 병가에블루션 바카라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려 허망했으나, 오늘 하루를 소중히 보내리라 마음먹었다. 인스타에 지대넓얕 명작 세 권을 올려놓고 책을 다시 훑어본 뒤 새로 빌려둔 책도 펼쳐봤다. 점심 식사 후, 다른 이삿짐 업체에서 견적을 받았는데 사장님들이 골격도 크고 꽤나 친절해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고민이 깊어졌지만 천천히 결정하기로 했다. 마지막 휴가에 서버와 외장하드 정리를 시작했다. 귀찮은 일이지만 결국 나중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오후엔 눈이 갑자기 많이 내리기 시작해 폭설 수준이 됐다. 내일 출근이 걱정된 아내가 차에 쌓인 눈을 치우고 앞유리를 덮자고 해서 함께 밖에 나가 차를 챙겼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집을 보러 온다는 연락이 들어와 가볍게 보여주었다. 상태가 괜찮았는지 모두 만족해 보였다. 저녁에는 독서하다 깜빡 졸았다. 잠이 깨서 늦은 시간에 양념치킨을 시켜 먹었다. 배달이 늦어 치킨이 식었지만 아내와 둘이 맛있게 나눠 먹었다. 이제 출근을 앞둔 마지막 에블루션 바카라의 밤이다.
병가에블루션 바카라의 날들이 길어질수록 처음에는 막막함과 두려움이 동시에 찾아왔다. 악몽에 시달려 늦은 아침에 일어나는 날도 있었고, 갑작스럽게 미뤄진 복직 날짜에 앞이 보이지 않는 듯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하루하루를 보내는 법을 조금씩 배웠다. 오래간만에 다시 꺼내 본 건담 작품에서 ‘운명은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발견했을 땐 어렴풋이 용기가 생겼다. 여유가 생긴 오전에는 책을 읽었고, 오후엔 골프연습장에 가서 마음을 비우려고 애썼다. 공이 잘 맞든 안 맞든, 그 순간만큼은 잡념이 조금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어느 날엔 이삿짐 견적을 의논하다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마음이 무거웠고, 눈보라 속에서 내일 출근길을 걱정하며 차를 챙기다가도 묘하게 안도감을 느꼈다. 에블루션 바카라 함께 하는 사소한 일들이 일상을 다시 살아가게 해주는 작은 동력이었다. 밤엔 플스를 켜고 이런저런 게임을 하며 잡생각을 잊으려 했고, 새로 구입한 외장하드에 데이터 정리를 하며 언젠가 다시 꺼내 볼 추억들을 묵묵히 쌓아두었다. 돌아보면 그 시간들 안에도 분명히 무언가 소중한 것이 있었다. 이젠 다시 출근을 준비하는 마지막 밤이 되어버렸지만, 그렇게 부대끼고 흔들렸던 날들 덕분에 오히려 한결 단단해진 내가 된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