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무슨 데이요? 급히 입학 전 안내 사항을 더듬더듬 기억해 본다. 그런 말을 들은 것도 같은데, 애를 보내는데 들떠서 내 머릿속 지우개가 또 작동을 한 모양이다. 그렇게 매주눈물 젖은 도바카라 루쥬 전쟁이 시작되었다.
딩동댕! 마침종이 울리면 눈빛 교환이 이루어진다. 오케이? 오케이! 그 짧은 쉬는 시간 동안 책상 뒤에 숨어 선생님이 혹시나 복도라도 지나갈 새라, 허겁지겁 도바카라 루쥬을 깐다. 오늘은 햄이라도 싸주셨나 서로 확인만 하기로 했는데, 분명. 너도 나도 '하나 씩만 집어먹자!' 하던 게 그 시작. 반찬 하나가 둘이 되고, 반찬만으로는 안되니 밥통까지 열고, 그러다 보니 숟가락을 꺼내고, 나중엔 본격적으로 '식사'를 하고 있던 우리. 그 시절엔 그게 얼마나 스릴 있고, 몰래 먹는 도바카라 루쥬은 얼마나 맛있던지. 창문을 열어 냄새를 뺄 틈도 없이 다음 시간 종이 야속하게 울린다. 담임 선생님께 걸려서 혼쭐이 나고도 제 버릇 개 못준다고, 다음 날 또 눈빛 교환이 이루어진다.
추억이라는 조미료가 솔솔 버무려진 그 시절의 도바카라 루쥬.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침이 꼴깍 넘어간다. 그 도바카라 루쥬을 싸주시려 오빠와 나, 도합 10년을 새벽부터 부엌에 서서 지지고 볶던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급식 제도가 도입되면서 (엄마 말로는) '지긋지긋'한 도바카라 루쥬에서 해방되었다.
지금은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 할 것 없이 '도바카라 루쥬'은 사라졌다.초등학교에 입학한 큰딸은소풍 가는 날조차 학교에서 '급식'을 먹고 돌아오니 나는 정말 우리 바카라 루쥬에 비하면 호시절을 살고 있는 셈이다. 발도르프를 시작하고, 적응 기간을 거쳐 아이가 드디어 점심을 먹고 하원하던 날, 점심밥 한 끼 걱정 안 하는 게 이렇게 감사하고, 이렇게 홀가분한 것인 줄 처음 알았다. 그래, 식사라는 건 입으로 음식을 꼭꼭 씹어 맛을 음미하며 즐기는 거였지! 애랑 같이 안 먹으니 혼밥을 하면서도 실실 웃음이 나왔다. 하원하는 문 앞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기 전까진.
목요일은 장 보는 날. 도바카라 루쥬을 싸야 할 의무가 있으니. 하원과 동시에 엄마들은 가까운 마트로 향한다.아무도 내 아이 도바카라 루쥬 반찬이 지난주와 같은지 다른지 신경 쓰지 않을 테지만,내가 알고 딸이 아는데, 어떻게 같은 반찬을 2회 연속 넣어줄 수 있겠는가.장 보는 동안 슬쩍슬쩍 다른 집은 뭘 사나, 염탐하는 눈길이 오고 간다. 똥손인 나는 그때부터 요리 유튜브 구독자가 되었다. 친정에서 반찬을 얻어먹을 줄이나 알았지, 계란말이도 제대로 못하던 내가 어느새 나물무침을 하고, 불고기를 볶고 있다. 발도르프가 바카라 루쥬들 요리 실력을 향상시켜 준다는 얘긴 못 들은 거 같은데.
복직해서도 도바카라 루쥬 싸는 건 멈출 수 없다.출근 시간이 이른 직업의 특성상 도바카라 루쥬을 싸려면 새벽 5시에는 일어나 바지런히 불 앞에서 지지고 볶아야 한다. 전날 미리 준비라도 좀 해두지, 피곤한 몸뚱어리는 한 번 이불 속에 들어가면 당최 빠져나오질 못했다. 당일 아침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서야 후회의 한숨을 연거푸 내쉬며 바쁘게 손을 놀린다. (가끔은 그것조차 못해서 친정엄마에게 SOS를 보내기도 했다.) 투덜대면서도 우리 딸 먹일 도바카라 루쥬은 꼭꼭 손에 쥐어 보내야만 했다.정말눈물겨운모정이아닐수 없다.
야외에서 둘러앉아 먹는 도바카라 루쥬은 더 맛있다고.
가끔은 김밥으로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잔잔한 촛불, 따뜻한 차. 등원 첫 날 보았던 책상과 작은 의자에 둘러앉았다. 오늘은 엄마들이 발도르프를 체험하는 월례회 날. 노래도 명상도 우리 아이들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느 하나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도바카라 루쥬에 관한 설명도 빠지지 않았다.도바카라 루쥬 싸기에 슬슬 지쳐가던 시점이라 더욱 솔깃했다.도대체 왜 여기는 도바카라 루쥬을 싸보내라는 거야?
매주 금요일, 아이들은 짧은 감사의 노래를 부른 후, 도바카라 루쥬을 먹는다.그냥먹는 게 아니다. 내 것을 하나 주고, 네 반찬도 하나 가져온다. 교환할 반찬이 마땅치 않아 침만 삼키고 있는 친구에게는 그냥 주기도 한다.맛있는반찬을가지고오면나누어주기싫을때도있지않을까?천만의말씀.오히려나누고싶어안달이라고.소시지는단연제일먼저팔리는반찬.친구들에게 다 나누어 주고 본인은 못 먹어도 괜찮으니소시지를 제발 넣어달라고 조르던 딸의 모습이 떠오른다.작은도바카라 루쥬하나를통해아이들은'나누는기쁨'을 배운다. 엄마들의 사랑은 이렇게 아이들에게 기쁨이 되어 몸속 깊이깊이 영양소처럼 스며들고 있었다.
디저트는 과일을 주로 챙겨 보내주는 편!
월례회이후 나는 아이의 도바카라 루쥬에 가끔 편지를 넣어 둔다. 아주 짧은 쪽지이지만, 도바카라 루쥬 뚜껑을 열었을 때 딸의 기억 속에바카라 루쥬의 사랑이 삶의 양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엄마가 싸준 도바카라 루쥬은 아이를 크게 만든다.단순히 밥을 '먹고' 몸만 커지는 것은 아니다.바카라 루쥬의 사랑을 매주 마주하고,불어난사랑을나누며더 너르게 마음을 키워나가고 있는 중이다.친구들과 오순도순 둘러앉아즐겁게나누던도바카라 루쥬의 기억은비타민 같은 영양분이되어우리아이들의몸에흡수된다.'도바카라 루쥬 몰래 먹다 걸린 에피소드'같은나의 유년 시절의 추억은 지금도 내혈관속을 흘러 흘러 다니다,삶에 어두운 구름이 드리워 볕이 들지 않을 때에 불쑥 심장께로 돌아와피식 웃음을 짓고심장을 더 힘차게 펌프질 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내 아이의 몸에 흡수된 금요 도바카라 루쥬데이의 추억들도 그러할 것이다.
이번 주에는 어떤 반찬을 싸줄까, 벌써 고민이다. 도바카라 루쥬 뚜껑을 열었을 때,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온전히 느끼고, 마음 따뜻한 하루를 보낼 수 있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