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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라보라에게 보내는 안부 (2부)

상실에 관한 이야기 2

경찰과 형사들이 들어와 그만 내려가라고 했던 것 같다. 한참을 그렇게 정신없이 울던 나와 엄마는 바로 아래층이었던 바카라보라 집으로 내려갔다. 소파에는 경직된 채 허공을 응시하며 할아버지가 앉아계셨다. 충혈된 할아버지의 눈에는 더는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허리를 곧게 펴고 머릿속에 무수한 생각을 펼쳐보는 듯 보였다. 조용히 할아버지 곁에 다가가 옅게 흔들리는 할아버지의 손을 꽉 잡았다. 그제야 할아버지는 두 눈으로 ‘왔구나’ 하며 인사하 듯 나를 바라봤다.


“안방에 가서 저 상자 좀 봐라. 여행 간다고 저렇게 이것저것 준비하던 사람이 자살이라니. 왜 그랬지? 왜 그랬지?”


안방에 있던 누런 상자 안에는 여행 가서 쓸 양산과 세면도구, 옷가지 그리고 봉지에 쌓인 신발 한 켤레가 들어있었다. 바카라보라와 할아버지는 일주일 후 해외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다. 본인 마음과는 다르게, 할아버지가 여행 가기 싫어하신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불만을 털어놓던 바카라보라의 목소리가 기억났다. 의견 충돌은 있겠지만, 늘 그랬듯 두 분은 여행을 떠나실 거고 돌아오는 길에는, 키는 작지만 당당한 발걸음으로 할아버지와 함께 공항 게이트에서 나오실 거라고 상상했었다.


“왜 그랬지?”


할아버지의 의문에 답해줄 바카라보라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에 갑자기 몸에 한기가 들었다.


‘왜 그랬지?’


그 방에 있는 모든 가족, 나, 삼촌, 엄마, 할아버지는 ‘바카라보라를 죽음에 이르게 한 시커멓고 교활한 상상이 도대체 뭘까. 어떤 것이길래 바카라보라를 집어삼켰을까.’ 그 생각에 빠져들어 멍하게 초점 없는 눈빛이 되었다. 각자 다른 추측으로 바카라보라의 마지막까지 걸어가겠지만 어떤 추측에 머물러있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문득, 설령 그 이유 비슷한 것을 찾는다고 해도 바카라보라가 옥탑방에서 걸어 내려올 수 없다는 사실에 구역질이 났다. 삼촌의 전화를 받기 전 먹은 달콤한 요플레가 썩은 내를 풍기며 신물과 함께 올라오는 듯했다.


‘다 토해낸다 해도 상황은 변하지 않겠지. 아무리 울고 떼써도 소용없는 거야.’


바카라보라의 물건으로 가득한 화장실에서 눈물과 요플레 같은 것들이견디지 못하고 쏟아져 나왔다.




바카라보라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바카라보라가 그런 선택을 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을까. 왜 나에겐 그 외로움에 대해 말하지 않았을까. 나에게 말했더라면, 말했더라면….’


나누지 못한 마음과 묻지 못한 질문은 매일 밤 엄마를 날카롭게 공격하는 듯했다.나 또한 갑작스럽게 떠난 바카라보라의 영혼이 쉽게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나의 주변 혹은 엄마의 주변에 서성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상상, 나를 포함한 누군가가 엄마를 많이 힘들게 하면, 엄마도 ‘자살’을 선택할 수 있다는 공포로 불안하고 초조한 시간을 건너왔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을 것 같은 질문과 의문, 마지막으로 바카라보라를 만났던 옥탑방의 장면, 바카라보라를 보내던 우리 시간의 기억들도 결국은 긴 세월 속에서 무뎌지고 흐려졌다. 그날 이후로 꺼져버린 듯한 삶의 에너지도, 일상의 소란함과 인연의 부딪힘 속에서 조금씩 채워지고 되살아났다. 지울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은 마음속에 상흔이 되어 평생 남아있겠지만, 그 ‘상실’이 때로는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내 마음을 다시 새울 ‘고집’이 되기도,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다정함’이 되기도 하니까.




이제는 바카라보라의 죽음을 글로 남겨도 된다던 엄마의 말에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야 나만의 투박한 안부를 전하고 싶다.


“엄마, 이제는 마음 편히 바카라보라 이야기할 수 있지? 바카라보라 돌아가시고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바카라보라에게 꼭 한번 묻고 싶었던 질문의 답을 이제 우리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 말하지 못했지만 전해졌다고 생각했어. 그래도 다시 써볼게. 충분히 아팠고 또 용서했고, 충분히 사랑했으니 이제 마음에서 바카라보라를 떠나보내고 더 많이 웃으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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