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무렵부터 거취에 변화가 생겨 집에서 주로 일을 하고 있다. 거취의 변화란 거창한 게 아니라, 프리랜서로 살아보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한 직장에 온전히 매어 있다는 핑계로 자꾸 미뤄왔던 그놈의 ‘내 글‘을 이제 좀 확인해 봐야 미련이 없겠다는 생각에 얼마간이라도 시간의 주도권을 나에게 주고 싶었다. 적극적으로 자기 홍보를 하며 일을 구해외 바카라 사이트 상태는 아니고, 나 아니면 안 된다며 매달리는 클라이언트가 있는 것도 아닌지라 결과적으로 홈 프로텍터에 가까운 모양새로 지낸다. 집안 경제에 소박한 보탬이 되는 돈을 벌며 자투리 시간마다 내 글을 붙잡고, 집이 너무 엉망이 되지는 않을 정도로 살림을 하며, 남편과 강아지를 적당히 케어해외 바카라 사이트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하지만 단출하게 적고 나니 억울한 심정이 울컥 고개를 든다. 이 무미건조한 근황 소개글은, 당분간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나름의 뭔가를 해보겠다고 마음먹기까지의 지난한 고민과 망설임을 담지 못한다. 운 좋게나마 지금 해외 바카라 사이트 일마저 갑자기 끊기면 어떻게 내 몫의 밥벌이를 이어가려나 해외 바카라 사이트 잦은 불안감에 무신경하다. ‘살림‘과 ’케어’라는 두 글자 안에 들어있는 자질구레한 노동의 총합이 얼마나 거대하게 부풀 수 있는지 못 본 체 한다. 다시 말하자면, 표면적으로는 별일 없이 그럭저럭 운 좋게 굴러가는 삶이지만 당사자의 시점에 들어앉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항변을 하고 싶은 것이다.
최근 내가 가장 크게 앓았던 삶의 병증은 살림 때문이었다. 으레 2인 가구 내에서 발생해외 바카라 사이트 누가 무엇을 얼마나 더 하냐는 문제라든지, 살림을 누구처럼 대단히 정갈하게 유지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은 아니다. 그저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필수적인 사소한 일들만 겨우 해내는 수준으로 살림을 유지 중인데 그 자그마한 일들이 바윗덩이처럼 묵직하게 눌러앉아 아무리 애를 써도 꿈쩍하지 않는 날들이 자꾸 생겨났다. 딱히 바쁘지도 않던 어느 날, 세탁기는 다 돌아 빨래를 어서 꺼내달라고 아우성인데, 건조대에 널어둔지 한참 된 빨래는 여태 하나도 개지 못한 채로, 이제 산책 좀 나가자고 낑낑대는 강아지를 붙잡고 맥없이 눈물만 쏟는 나를 보며 내 안에서 무언가 삐걱거리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엔 현실에서도 TV에서도 전업주부로서 집안일에 매어있는 엄마들을 보며 자랐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집안일이 여성만의 몫이 아니라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고, 집에서 요리하고 살림하고 육아해외 바카라 사이트 남자들의 이미지도 어렵지 않게 보였다. 그런 사회 분위기 변화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기도 하고, 아빠가 전보다는 시간적 여유가 생긴 덕분에 내가 대학생이 됐을 무렵부터는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아빠가 집안 청소를 맡았다. 엄마는 아빠가 창문을 다 열어서 춥다며 늦잠 자는 내 침대 이불속에 쏙 들어와 같이 눕곤 했다. 그 주말 풍경이 꽤 선구적이고 흡족하게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가정을 이룬 뒤의 내 모습도 그럴 것이라고 상상했다. 물론 실제로는 전업주부인 엄마가 평일 내내 요리하고, 빨래와 설거지를 비롯해 각종 집안일을 챙겼지만, 내가 바라는 이미지만 마음대로 취사선택했다. 나는 집안일보다 더 중요하고 대단한 일을 하고 있을 거라면서.
현실은 영 딴판이었다. 자발적 반 실직 상태를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는지 깜깜한 상황에서, 벼르고 별렀던 글은 형편없어 보여서 속이 까맣게 탔다. 와중에 시간과 돈을 절약하겠다고 집에만 앉아있으니 바닥에 나뒹구는 머리카락이, 책더미 위에 쌓인 먼지가, 시들해 보이는 화분이, 허옇게 피어가는 냉장고 속 채소가 글 앞에 앉으려는 내 발목에 자꾸만 차였다. 거슬려서 도저히 안 되겠는 것들만이라도 허겁지겁 해치우고 나면 이상하게 반나절이 흘러있고, 나는 이미 지쳐있었다. 이런 패턴이 몇 번 반복되니 무언가 눈에 딸칵 걸리기만 해도 오늘 하루도 허송으로 날리겠구나 싶어서 자동반사적으로 울화가 치밀었다. 한편으로는 지금 나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외 바카라 사이트 일에 몰두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고작 이런 하잘 것 없는 것들이라서, 사랑해외 바카라 사이트 남편과 강아지와 나의 흔적을 점점 흘겨보게 되어서, 겨우 이런 이유 때문에 일상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내가 또 미웠다.
그렇다고 살림을 무 자르듯 똑 떼어 네 몫 내 몫으로 판가름하기도 어려웠다. 남편의 근무 시간이 나보다 많고, 그가 더 많이 벌어온다는 사실을 신경 안 쓸 수가 없었다. 동거인으로서 나의 쓸모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은 나를 자꾸 살림거리들 앞에 앉혔다. 남편은 집안일에 무던한 사람이라 집이 좀 더러워도 그러려니 하고, 끼니를 채울 방법이라면 편의점 음식이든, 배달음식이든, 간소하게 차린 밥이든 상관 않고 잘 먹는 편인데도 나는 자발적으로 집안일의 기준을 높이고 스스로 버거워했다. 나름의 할 일들과 집안일이 엉켜 쩔쩔매는 날에도 남편에게 저녁 설거지와 쓰레기 관리 이상의 집안일을 잘 요구하지 못했다. 일터에서 어렵거나 속 앓는 일이 있어도 나에겐 내색 않고 밝은 모습만 보여주는 사람에게 집이 조금이나마 편히 쉴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해외 바카라 사이트 욕심을 버리기 어려웠다. 이처럼 내가 가소롭게 여겼던 살림은 그 안에 얽히고설킨 내 욕망끼리의 충돌까지 다스려야 해외 바카라 사이트 내면 정치를 포괄해외 바카라 사이트 어려운 일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곪아가던 어느 날, 우정의 신이 언질이라도 한 것 마냥 친구가 대뜸 카톡을 보내왔다. 얼마 전 읽은 구절이 너무 좋더라며 발췌해 준 단락 해외 바카라 사이트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사랑이란 긴 안목으로 보면 돈 문제를 해결하거나 배우자가 방바닥에 팽개쳐놓은 빨랫감을 챙기는 일 또한 포함해외 바카라 사이트 있다 “
_테드 창, [해외 바카라 사이트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작가 노트 중
이 문장을 읽고 순간 번쩍 생각했다. 내가 자꾸만 밥이 떨어졌는지 살피고, 강아지의 물그릇을 확인하고, 남편의 빨래를 더 반듯하게 접어 서랍에 넣어두고, 매 끼니 함께 먹을 식사를 고민해외 바카라 사이트 이유는 내가 해야만 해외 바카라 사이트 일이거나, 안 하면 절대 안 돼서가 아니라 사랑해외 바카라 사이트 마음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언젠가부터 사랑을 사랑으로 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 안에 인정받고 싶은 갈증을 투영하고, 생산성을 증명할 수단으로 보려 했기 때문에 문제가 어렵게 꼬인 것은 아니었을까. 사랑에서 우러나는 만큼은 하되, 그 사랑이 나를 깎지 않도록 균형 잡는 것 역시 내 몫이다. 살림은 말 그대로 공간 안에 사는 존재들을 살리는 행위인데, 그 속에 포함된 나를 간과하고 해치며 비뚤어진 살림을 하려 들던 자신을 보게 됐다.
문제의 원인을 알 것 같다고 해서 해결이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언제부턴가 사소한 일들에 걸려 넘어질 듯 비틀거리는 날이면 짧은 곡들로 엮인 쇼팽 에튀드 책을 집어 들고 일단 피아노 앞에 앉는다. 주로 치는 것은 작품번호 Op.10-2다. 쇼팽의 에튀드곡들에는 ‘혁명’이나 ‘흑건’ ‘겨울바람’처럼 곡의 분위기에 찰싹 달라붙는 제목이 붙어있다. 그러나 Op.10-2는 ‘반음계’라는 건조한 별명이 전부라 내심 아쉬움이 있었다. 음악적으로 고전주의를 숭앙했던 쇼팽은 문학이나 표제에서 영감을 받는다든지, 곡에 제목을 붙이는 행위를 내켜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음악적 발상과 결실들이 지극히 낭만주의적이었던 결과, 후세에까지 모두가 뜻을 모아 그의 음악들에 표제를 붙이는 만행(쇼팽의 입장에서)을 저지르고 있는 바. 나 또한 슬그머니 동참하며 Op.10-2를 ‘해외 바카라 사이트’이라고 몰래 부르고 있다.
이 곡이 살림과 겹쳐 보였던 이유는 쇼팽의 에튀드 곡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난곡으로 꼽힐 만큼 어려운데 반해 그다지 어려운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교 때 교수님이 과제곡으로 나에게 이 곡을 지정해 주셨을 때, 처음에는 내 실력이 많이 부족해서 나만 이렇게 난이도가 낮은 곡을 정해주셨나 싶어서 놀랐고, 연습해 보니 의외로 다른 곡들보다도 훨씬 어려워서 두 번 놀랐다. 이 곡의 난점은 오른손 3, 4, 5번 손가락으로 빠르게 반음계 스케일을 연주해야 해외 바카라 사이트 것이다. 이게 왜 어려운지 짐작해 보려면 손가락을 책상 위에 달걀 쥐듯 살포시 얹은 뒤, 4번 손가락만 위로 높게 들어보려고 해도 알 수 있다. 보통의 신체조건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무리 애써도 4번 손가락을 다른 손가락의 반만큼도 들어 올릴 수 없다. 이처럼 뿌리 깊게 박혀있는 네 번째 손가락을 가지고 세 번째 손가락과 다섯 번째 손가락을 넘나들며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듯, 섬세하고 빠른 연주를 해내야 한다. 장담컨대 나름의 노하우를 찾지 못한다면 열 마디도 채 연주하기 전에 오른쪽 팔목에 뒤틀리는 듯한 통증이 찾아오고, 오른손은 쥐가 나듯 꼬이고 말 것이다.
이 곡의 짓궂은 특성 한 가지가 더 있다. 보통은 곡에서의 어려운 클라이맥스 구간을 작곡가가 알고 연주자도 알고 청중도 안다. 그 부분의 연주가 잘 이루어지면 잘했다는 인정을 받고 박수도 받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살림 에튀드에서는 곡의 어려운 특성을 내세워 박수받을 생각을 해선 안 된다. 에튀드는 피아노 연주에 필요한 테크닉을 연마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목적과 용도가 명확한 장르다. 에튀드를 남긴 작곡가들이 여럿 있지만 유독 쇼팽의 에튀드가 바이블로 여겨지는 이유는 본래의 기능에 충실하면서 음악적으로도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즉, 각 곡이 지닌 훈련의 목표에 충실하되, 그 과정마저 아름다워야 해외 바카라 사이트 것이다. Op.10-2가 아름답게 연주되려면 서커스에 가까운 오른손 3, 4, 5번 손가락 스케일의 유려함이 두드러지기보다는 매 박자마다 규칙적으로 통통거리는 오른손과 왼손 1, 2번 손가락이 아름다운 보이싱을 이루며 노래해외 바카라 사이트 편이 훨씬 매력적이다. 2024년 그라모폰 상을 수상한 임윤찬의 쇼팽 에튀드 앨범에서 이 곡을 들어보면 매우 적극적으로 그 노랫소리에 생명력을 부여해외 바카라 사이트 것을 알 수 있다. 14초쯤부터 이어지는 두 마디는 아주 친절한 가이드처럼 이 곡의 주인공이 오른손 반음계 스케일이 아니라 중음역대의 메조소프라노임을 역설한다.
아마 그래서이지 않을까.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에 괜히 눈을 흘기고, 남편이 소파 위에 깜빡 잊고 둔 과자 봉지를 과하게 신경질적으로 집어 들고, 오늘 저녁은 또 뭘 해 먹나 해외 바카라 사이트 고민으로 시끄럽던 머릿속을 밀어낸 뒤 피아노 앞에 앉아 이 곡을 더듬더듬 연습하다가 묘하게 위로를 받았던 이유는. 어떤 어려움은 묵묵하고 조용해서 더 빛난다는 걸, 숨은 헌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울려 퍼지는 노래가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이 곡이 넌지시 알려준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나는 이 에튀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어떤 아름다움이나 우아함이든, 그 기저에는 저마다의 팔 저림이 있을 것이다. 매일 웃는 얼굴로 들어오는 남편도, 늘 그저 귀여운 우리집 강아지도 혼자서 견뎌내는 무언가가 있을 테다. 지금 나에게는 그 통증의 원인이 살림이지만 시기나 상황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무언가에 관한 수련 과정은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제 막 시작된 결혼 생활의 이인삼각과, 부대끼며 사는 존재들 간의 사랑이 더 아름답게 노래할 토대를 다지기 위해 일단 지금은 나에게 부여된 살림의 에튀드적 속성을 잘 다뤄야 해외 바카라 사이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연습의 시간마다 되새기게 된다.
그럼에도 티 안 나고 어려운 일을 계속 잘해나간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다. 나의 지선 선생님(‘랜선 이모’ 같은 말처럼 직접적 교류는 없지만 내적 친밀감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부러워서 급조해보았다)인 세이모어 번스타인의 저서 『자기발견을 향한 피아노 연습』에서 유의미한 두 가지 조언을 길어 올려 본다. 첫 번째는 현명한 운지법을 찾는 것이다. 어떤 작곡가는 운지법마저도 철저하게 자신의 의도대로 연주되기를 바라며 곡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쇼팽은 음악에 있어서 ‘아름답게 노래하기’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고, 이를 위해 파격적인 운지법 채택도 마다하지 않았다. 게다가 무슨 건반을 어느 손가락으로 칠 것인가는 손가락 가동 범위 등에 따라 연주자의 선택에 맡겨도 된다며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인 주장을 해 거룩한 전통을 따르던 피아니스트들의 반발을 샀다. 이 말을 가져와 적용해 보자면 스케일이든, 해외 바카라 사이트이든 관성만 따르기보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더욱 윤기있는 노랫소리를 위해 힘이 꽉 들어가 있는 오른손 대신 잠깐 왼손의 도움을 받아 숨을 골라도 되고, 머리카락 몇 개 보인다고 청소기를 켜서 온 집안을 다 들쑤시게 되기 전에 보이는 것만 얼른 줍고 나에게 더 중요한 일을 먼저 해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세이모어의 또 한 가지 조언은 시간을 제한하라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부과한 시간적 제한은 자기를 억제해외 바카라 사이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안에서 최선의 자발적 생각들과 행동들을 끌어내 준다”라고 말한다. 매끄럽게 유지하기에 까다롭고도 고통스러운 일일수록 시간을 정확히 설정해 두고 그 안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완곡을 세 번 이상 치면 이후부터는 오히려 더 많은 미스터치를 연발하게 되는 Op.10-2나, 눈길을 돌리는 족족 해야 할 일이 무한히 꼬리를 물게 되는 재택근무자의 살림에 있어 특히나 유용한 충고다.
세이모어는 재능 안에는 단점과 장점이 혼재되어 있으며, 피아노 연습은 자신이 가진 단점을 극복하게 함으로써 자신감과 재능을 일치하게 만들 것이라고 독려했다. 피아노 연습을 통한 물리적인 성취가 인생의 다른 모든 일들에도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가끔 지극히 단순한 깨달음도 참 어렵게 획득해외 바카라 사이트 것 같은 나 자신이 짠하고 씁쓸하지만, 그 과정들을 오롯이 겪어내며 쟁취할 수 있는 나만의 성취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위로가 된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연습의 시간을 잘 통과하고 나면 분명 들려오게 되는 어떤 아름다움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나니 전처럼 연습도, 일상도 고단하기만 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