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올 때부터 얼굴에 잔뜩 비구름이 낀 것 같은 70대 후반의 이옥분 할머니는 푸념처럼 말을 늘어놓았다.단순히 마른 정도를 넘어서 얼굴이고 목이고 피부가 오랫동안 시들어버린 채소처럼 늘어져 있었다.
바카라보라;최근에 살빠졌어요?바카라보라;
바카라보라;많이 빠졌지.바카라보라;
바카라보라;얼마나 빠졌어요?바카라보라;
바카라보라;5kg나 빠졌으려나.바카라보라;
바카라보라;얼마 만에요?바카라보라;
바카라보라;올해부터.바카라보라;
할머니의 몸무게는 채 40kg가 되지 않았다.
3~6개월 안에 체중의 5~10%가 줄면,병적 체중 감소이다. 가장 흔한 원인은
1. 암
2. 당뇨 등의 내분비 질환
3. 우울증 등의 정신 질환
부터 해서 무수히 많은 질환이 포함된다. 할머니의 나이와 퀭한얼굴을 보자, 내 머릿속에는 경고등이 켜졌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암이나 치매 등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바카라보라;잠시만요.바카라보라;
나는 병원 기록을 뒤졌다. 올해 초에 심한 폐렴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한 기록이 있었다.
바카라보라;폐렴을 심하게 앓으셨네요.바카라보라;
바카라보라;큰 병원까지 갔으니, 힘들었지.바카라보라;
바카라보라;지금은 어때요?바카라보라;
바카라보라;아직도 기침을 해서 약을 먹는데 괜찮아. 내가 힘이 없어서 대학병원에서 영양제를 놔달라고 했더니, 필요 없다고 안 놔주더라고.바카라보라;
바카라보라;대학병원이 뭐 그렇죠.바카라보라;
바카라보라;친구들이 영양제라도 맞으라고 하는데, 그럴까?바카라보라;
영양제. 좋다. 영양제를 맞는다고 해서, 진짜 힘이 나거나, 입맛이 돌아오지는 않지만 맞는 사람에게는 심리적 효과도 있을 뿐 아니라 병원 매출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5kg 이상의 체중이 감소했을 때 영양제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식욕을 올려주는 메게이스, 트레스탄 같은 약도 있으나 암환자 등에게 효과가 조금 있을 뿐, 단순히 식욕을 올려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체중 감소와 식욕 부진의 원인을 찾는 것이다.
바카라보라;숨이 차는 건 없어요?바카라보라; (심장이나 폐문제)
바카라보라;없어. 기침만 좀 한다니까.바카라보라;
바카라보라;밥은 잘 드세요.바카라보라;
바카라보라;영 밥 맛이 없다니까.바카라보라;
바카라보라;배가 아픈 건 아니고요?바카라보라;(소화기 문제)
바카라보라;배는 안 아파.바카라보라;
바카라보라;변은 잘 보세요?바카라보라;(변비 등)
바카라보라;먹는 게 있어야 변을 보지.바카라보라;
배를 진찰해 보았지만, 홀쭉 말랐을 뿐 눌렀을 때 통증이 있어가 배에 만져지는 건 없었다.
'각종 암 검사를 해야 하나?'
'혹시 우울증은 아닐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바카라보라;일단 잠은 잘 주무세요?바카라보라;
바카라보라;잠은 잘 자지.바카라보라;
우울증인 경우, 대게는 불면증을 호소하기에 물어보았지만 역시나 아닌 것 같았다. 대답도 정확하게 하고 최근에 일어난 일까지 잘 기억하는 것으로 봐서 치매 같은 것도 없었다.
바카라보라;그럼 영양제를 맞으면 좀 나을까?바카라보라;
대화 중에도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나의 머릿속과는 상관없이할머니는 계속 영양제 이야기를 꺼냈다.
바카라보라;삼키는 게 힘들지는 않아요?바카라보라;(식도 문제뿐 아니라, 뇌경색 등의 신경 이상에서도 연하 곤란이 생긴다)
바카라보라;영 밥 맛이 없어, 뉴케어만 마셔.바카라보라;
'뉴케어'는 삼키기 힘든 환자에게서 사용되는 액체 영양식이었다. 혹시?
바카라보라;씹는 데는 문제없어요?바카라보라;
바카라보라;오른쪽 임플란트 한 위 아랫니가 같이 흔들리고 아파서 아예 못 씹어. 그래서 매번 왼쪽으로만 씹으니까, 제대로 씹어 먹을 수가 없어. 그래서 뉴케어만 먹고 있지.바카라보라;
그랬다. 이옥분 할머니는 음식을 씹으면 이가 아팠고, 먹을 때마다 통증이 느껴지니 입맛을 없을 수밖에 없었다. 이옥불 할머니의 체중 감소의 원인은 암도 우울증도 치매도 아니었고, 단순히 이 그러니까 치아(齒牙)문제였다. 오른쪽 위아래 어금니가 모두 흔들리고 있을 뿐 아니라, 치주염도 같이 있었다.
바카라보라;할머니 임플란트 언제 하셨는데요?바카라보라;
바카라보라;2014년. 안 그래도 이가 아파서 임플란트 한데 가서 물어보니, 이 뽑고 새로 해야 한데.바카라보라;
바카라보라;할머니, 원래 임플란트 10년 전후로 밖에 못 써요.바카라보라;
바카라보라;아니, 그래도.바카라보라;
바카라보라;할머니 씹을 때마다 이가 아프니, 당연히 밥 맛이 없죠. 그래서 뉴케어만 드시는 거고요. 일단 치과부터 가세요. 이가 안 아프면, 입맛이 돋을 거예요. 대학병원에 입원했을 때 기본 검사는 했을 테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요. 이 괜찮아지고서도, 식욕 없으면 그때 정밀 검사 해보자고요.바카라보라;
나는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을 잡아주는 것으로 이옥분 할머니의식욕부진과 체중 감소에 대한 진료가 끝이 났다. 의사, 이 순간만은 누가 뭐래도 즐겁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