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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글방] 새빨간 거짓말 _ 온자

개풍군 박적골, 박완서 작가의 글에 종종 등장하는 그곳은 원융한 시간이 흐르는 곳이다. 가난과 결핍, 좌초와 눈물 결손 따위도 그 자체로 온전한. 동구 앞 느티나무와 어머니의 골무와 할아버지의 두루마기와 어린 완서의 빨강 댕기는 독자적으로 선연하지만 서로에게 곡진하다. 온자가 재현하는 세계도 그렇다.

사탕과 고무줄과 도깨비와 머리핀과 손수건과 고무신은 반짝반짝 독립적으로 빛나지만 우연히 서로를 비추고, 의도하지 않은 채 세계는 오, 눈부시다. 어른들은 힘을 합쳐 밭을 갈고 아이들은 우당탕탕 우르르르 아이쿠 엄마야 우주를 달음박질한다. 세상의 모오든 생명과 비생명이 연결되고 접속하고 전도되는 찰나, 를 온자는 공들여 재생한다. 사피엔스가 보낸 한시절, 그윽하고 명랑하고 다정한, 빛의 충돌이 빚어내는 환. 온자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새빨간 거짓말


온자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바카라 녹이기들은 꽤 남루한 편이었다.

거기에다모두들하나같이겨울이면노란콧물을달고살았는데그렇게콧물들이노란색이었는지지금도모르겠다. 못 먹어서그랬다는설이가장와닿기는하다.

바카라 녹이기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 모두들 왼쪽 앞가슴 쪽에 반듯하게 접은 아빠의 손수건을 옷핀에 꽂아야만 했다.

손수건이 없으면 광목천이라도 깨끗이 접어서 달아야 했다.

콧물이나올 때마다소매 끝으로습관처럼닦는멈추고그것으로바로닦아야하는 게마치바카라 녹이기가학교에입학하는목적이라도되는 양운동장단상 위에서교장선생님이목소리를높이며강조하셨다. 그렇지만그런날은얼마 가지않았으며밤낮으로농사일에바빠눈코 뜰 새없는부모님들은매일같이어린자식의앞가슴 자락에곱게접은수건을매달아 줄여유가없으셨다. 수건에콧물 닦기라는입학식 날의미션은얼마 지나지않아기억도나지않는곳으로사라져 버렸다.대신습관이라는대마왕이바로나타나셨고왕은그렇듯이바카라 녹이기들이자주콧대기를대며훔치곤하는소맷자락을촉촉하고노란콧물이말라서반들반들하게더께가때까지인내심을발휘하곤하셨다.

바카라 녹이기는수건이없어진자리에옷핀만꽂고다녔고어느 날부터옷핀에는가느다란실핀이매일같이하나둘어머니품속의자식새끼들처럼늘어났다. 비록콧물은시도때도없이흘러나왔지만그것은문제가아니었다. 그것보다바카라 녹이기에겐실핀그것이어느 것보다중요한소재였다. 그것은중요한바카라 녹이기들의분깃이었다. 그것은왼쪽가슴팍에가득히꽂혀진일렬로찰랑거리며마치훈장처럼빛나보이기도하였다. 실핀으로말하면그것이어디에서만들어져바카라 녹이기 손에왔는지모른다. 헝겊을자르거나온갖집안의물건을자르는하나밖에없는뭉툭한검정손잡이의가위로대충자른바카라 녹이기 여자애들의상고머리가점점자라나노란콧물근처까지가면그야말로그것은무척신경이쓰이는일이되어버리고만다. 바로그때실핀은작지만반드시필요한품목이된다. 그것은바카라 녹이기의우왁스런어머니의엄지와검지그리고윗니와아랫니를빌려아무렇게나이마 쪽귀찮은머리와함께귀 뒤쪽이나정수리 쪽에대놓고꽂히곤하였다. 그렇게나귀찮게 구는앞머리를고정시켜주는고맙고실용적인것이었다. 그러나놀이를밥보다중요시했던바카라 녹이기들은단지그것들을쓰임새로만두지않았다. 그것은콧물을닦기 위해수건을매달았었던옷핀의뾰족한아래쪽이아닌윗부분에당당하게자리하고있었다. 옷핀은실핀보다귀하고실용적이었으므로바카라 녹이기는이상을바라지않았으며만약두 개가있다면찰랑이는훈장이양쪽가슴팍 쪽에서위용을발휘하는셈이되었다. 그토록귀하디귀한옷핀에어리디어린잔디 풀처럼가느다랗고귀여우며실용적이기까지실핀을하나씩둘씩꽂아가며바카라 녹이기는나만의살림을늘려가는일에이제싹트기시작한생의열정을바치곤하였다.

구슬이나딱지가남자애들의놀잇감이었다면실핀은바카라 녹이기 같은여자애들에게쓸만한놀잇감이었는데놀잇감의최대장점은그저단단한땅바닥평정도만있으면끝이라는것이었다.

거기에다 사발 크기의 동그라미 하나와 1.5미터 거리 앞에 직선 하나만 그으면 그만이었다.

바카라 녹이기 여자애들은 그 선에 발끝을 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면서 동그라미에 실핀을 던져 구멍에 들어가는 건 거저먹고 원 밖에 나가 있는 것은 강력한 엄지손톱을 이용하여 그 안에 밀어 넣어서 따먹는 놀이에 몰두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바카라 녹이기는 가족들이 일하러 나가고 없는 대낮의 시간에 책보따리는 아무데나 던져놓고 일단 왼쪽 가슴팍에 훈장처럼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 소중한 실핀을 개인당 다섯 개쯤 빼서 ‘삔 따먹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뜀박질 소리가 나면서 동네 경계 부근에 살고 있던 향순언니가 달려왔다. 그녀의 얼굴은 땀에 젖어있었으며 진하디 진한 눈썹은 한층 올라가 있었고 눈의 동공은 평소보다 커 보였다. 그녀는 말을 더듬기까지 하며 두 손을 움직여 자기가 방금 전 보았던 도깨비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였다.

도깨비는머리가두 개달렸는데얼굴에는눈이하나만달렸고, 다리는길어졌다, 짧아졌다를반복하기도하는데속도는누구도따라잡을없다고하였다. 그리고등에는여차하면있는날개마저달려있다고하였다. 그런데무서운것은도깨비가들고있는무기가무척날카로운 데다톱처럼칼날여러 개가활처럼채로달려있으므로번만휘두르면바카라 녹이기같이키가작은아이들명정도는샤샤샥단칼에베어버릴정도라고하였다. 바카라 녹이기는바카라 녹이기가입에서말을뱉을때마다점점다리가후둘거려왔고앞가슴 쪽어딘가가심하게뛰기시작하였다. 8, 9살이던바카라 녹이기들보다위였던바카라 녹이기는바카라 녹이기가살던동네에서가장싸움을잘하기로소문난바카라 녹이기였다. 그리고만해서는엄살을부리거나부풀려서자기의아픔을표현하는법이없었다. 바카라 녹이기와싸움을했다가는엄마들이골목까지나와서화가잔뜩 난목소리로욕을하며이름을불러야비로소두 손가득틀어잡은머리카락을놓았기 때문에반드시단단히각오해야했다. 그랬기 때문에바카라 녹이기여자애들은바카라 녹이기의땀이흥건한이마와커진동공과더듬거리면서까지손짓하며말하는모습을보며바카라 녹이기가막연히두려워했던지구의종말이마침내이땅에도래했다는감지하였다.

결국바카라 녹이기들은따먹기놀이에심취하고있는중에지구최후의날을맞이할운명에있었던것이다. 거기에다어린아이들을제외한대부분의건강한어른들은마을에서조금떨어진외곽에있는논이나밭에가서일을하였으므로마을에있는바카라 녹이기들의두려움은더욱더심해져왔다.

패닉에빠진바카라 녹이기들은어떻게해야할지몰라바카라 녹이기보다단지위인바카라 녹이기가도깨비를장본인이었으므로그녀가241동선대로따라갈수밖에없었다. 바카라 녹이기는일단바카라 녹이기보다싸움도잘했고체력도좋았으므로일단동네를떠야한다며앞장서서빠르게뛰어나갈 때아직머리에피도안 마른바카라 녹이기는여리고떨리는다리로뒤따라수밖에없었다. 갑자기오줌이무척마려워졌지만어린나이에도친구들앞에서쪽팔리긴싫었다. 언젠가둘째오빠가화가나서나를쫓아왔을 때나는새끼 소처럼줄줄새는오줌을길거리에쏟으며뛰어야했지만말이다...

바카라 녹이기는 머리핀이고 나발이고 그따위 것들은 개나 줘버리고는 곧 생명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에 그 언니와 똑같이 이마에 땀을 흘리며 마을 바깥쪽에 있는 논과 밭으로 뛰어갔다. 그때는 봄이었고 바카라 녹이기의 부지런한 부모님들은 허리도 펴지 않고 일을 하셨으므로 바카라 녹이기가 도깨비를 피해 어마어마한 속도로 뛴다는 것을 제대로 모르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바카라 녹이기가 얼마나 커다란 위험에 처했는지를 알리기 위해 비명 소리를 지르며 어린 아기 허리 폭만큼이나 가느다란 밭길, 논길들을 뛰어다녔다. 아마 어른들은 바카라 녹이기가 이제 막 눈을 뜬 뱀들이 논 옆의 파란색 개불알꽃과 노란색 애기똥풀꽃과 하찮게 피어서 나풀대는 냉이의 하얀 꽃들 사이를 소리 없이 휘리릭 지나다니는 모습에 놀라서 저러는가 하고 피식 웃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카라 녹이기는 생사가 걸린 문제였기에 끝도 없이 달리는 한 살 위 언니를 마치 피리 부는 아저씨쯤으로 여기고 무조건 뒤를 따라 소리 지르며 뛰어다녔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도 바카라 녹이기의 다리를 총알처럼 움직이게 하는 그 도깨비는 보이지 않았다.


바카라 녹이기가 마침내 지쳐서 어느 길바닥에 묽은 흙덩이처럼 떨어져 처박혔을 때 바카라 녹이기들 머리 위에는 이제 막 연둣빛을 살짝 띤 하얀 아카시아꽃들이 아직 다 피지 못하고 입술을 꽉 다문 채 대롱대롱 봄바람에 흔들리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끝도없이가쁜숨을뿜어내며오르내리는가슴팍에는개나개의실핀만이옷핀에걸려서건들거리며흔들거리고있었다.

바로앞쪽에서바카라 녹이기도살아보세라는새마을노래를하며일하고계시는바카라 녹이기부모님들의굽은등을보며비로소바카라 녹이기는안도의숨을마저몰아쉬었다. 집으로돌아온저녁밥을먹자마자너무피곤하고졸려서자세하게말하지는못했지만어쩐지바카라 녹이기들은이야기를대충대충듣는같았다. 그때별명은아빠에게는귀여운앵모새, 바카라 녹이기들에게는백여시였으므로최대한자제하며말을하려고했던탓도있었다. 바카라 녹이기들앞에서말을아껴서그런지더욱더그날의일은가슴속깊이담겨져있다.


10바카라 녹이기의새빨간거짓말에속아마침내동네에남아있던또래아이들이소리를지르며생사를앞두고어찌보면바다처럼보이기도하는너른논밭둑길을뛰어다녔던일이하나의그림처럼가슴속에남아있다. 새빨간색깔이아마도마음속그림의포인트인같다.


ps;지금 그 바카라 녹이기는 고향 언저리 시내에서 이미 이혼하였지만 여전히 잘 지내고 싶어 하는 남편과 가끔씩 만나기도 하면서, 좋은 직장 다니는 외아들이 주는 용돈으로 편히 잘 살고 있다며 셋째 바카라 녹이기가 근황을 전해 주었다.




발행일. 2022.07.06 | 글감. 거짓말



바카라 녹이기

온자


저는 나이가 꽤 많은 편이지만 여기 계신 자식만한 나이를 가진 이들과 늘 친구먹고 싶어합니다.

가끔은 세상사를농담의 정신으로 바라보고 싶어합니다.

별 뜻 없는 (웃음), 무작정 (걷기), 나름의 (명상), 아무거나 (읽기)와 대충 (쓰기)로 시간을 보내며

덕분에 지난 허물들을 벗는 중입니다.

언젠가 허물 벗은 모습으로 가볍게 승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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