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후원은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천천히 쌓아갈 생각이었는데 고민을 하다보니 극소량의 관심마저도 아쉬울 곳이 너무 많다. 방구석에서 이 털뭉치들과 체온을 공유하며 손가락 몇 번 움직여 음식과 당장 필요 없는 것들을 내 기분 맞추려고 꾸준히 사고 있는 것만큼 쉬운 일임에도 고심하는 일이 생긴다. 그래서 어려움이 전시된 모습들을 샅샅이 훑어보며 고민하기보다는 바카라 라이브이 더 가는 곳들에 하고 있다. "여기 정말 힘들겠구나, 여기는 덜 힘들어 보이는데, 저기가 더 힘드려나."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게 불편했다.
예전에 푸르미카드(식권)를 쓰는 아이들이 편의점에서 과자를 못 사먹는 것에 대한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댓글에는 "배가 불러서 끼니 대신 다른 것이 먹고싶은 것이냐, 당장 끼니가 더 급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라는 말이 생각보다 많았다. 도움을 받는 이들은 도움을 받을만한 자세의 기준이 찰나조차도 불쌍하고 처연하지않으면 안 된다는 말들이 이제는 식권이 필요없는 내가 보기에 너무 아팠고, 이미 매일 푸르미카드를 쥐고 눈치보며 감사한 바카라 라이브으로 주먹밥이나 컵라면만 사는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또 고아원의 아이들이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갖고싶어하거나 후원받은 브랜드 운동화를 신은 것을 보고 화가 난 바카라 라이브들도 보았었다. 아이들은 "감히" 도미노 피자를 콕 찝어 먹고싶어하면 안 됐고, 나이키 운동화를 얻어 신는 것조차 가난과 어려움을 개개인의 기준에서 평가받아야했다. 그래서 그 뒤로 최대한 너무 많이 알아보며 기부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고작 몇만원 지불하며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도 어쩌면 몇만원어치 잣대를 들이대게 되는 일이 될 것 같았다.
바카라 라이브이 바스라져 한 푼도 의미없게 느껴지던 서른하나의 겨울 길거리에서 시작했었고, 지금은 그 때의 나를 지켜줬던 일들 중에 하나이다. 경제활동을 꾸준히 하며 스스로를 책임져야하는 성인인데 넉넉한 것도 아니면서 한두푼이 귀찮고 의미가 없어지니까 나도 곧 없어질 것 마냥 짐작이 되고 그런 내 상태에 저항도 없었다. 그때의 난 모든 것들의 의미들을 모르겠으니 열심히 팔을 흔드는 호객 풍선인형보다도 못 한 기분이었고 이러다 정말 작은 내 주변에 큰 일을 낼 것 같았다. 그러다 우연히 한겨울에 모두에게 외면받는 길거리 스티커 붙이기가 눈에 밟혔고, 그대로 인파를 가로질러 종이에 내 이름과 계좌번호를 적었다. 쥐꼬리만큼이라도 의미있는 곳에 사용해보자며, 제 코도 엎어놓고 경제활동도 쉬던 때에 막연했던 새 단추를 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