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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바카라 루쥬와 밀월 중.

아들이 독립했다. 아들의 독립은 곧 나의 독립, 대한독립 만세, 아니 한정선 독립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다.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던 선조들의 마음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아니 피부에 와닿는다. 36년 동안의 일제 강점기와 42년 육아는 시간과 상관없이 비교 불가지만 바카라 루쥬라는 커다란 맥락 속에서 한끝 정도는 맞닿아 있지 않을까 하는 게 나의 변론.

이유 없는 무덤이 없듯 구구절절 사연이 많았던 40여 년의 육아(?) 해방은 내 인생의 한 획을 그을 만큼 획기적인 사건이다. 바카라 루쥬 첫 감지는 달라진 아침 풍경, 커다란 프라이팬 대신 쓰지 않던 작은 팬이 등장하고 커피 필터도 길쭉한 깔때기 모양에서 나지막한 꽃모양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일어나’ 노래를 부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잠시 내가 여행 중이라는 착각이 들게 한다. 준비하고 깨우고 먹고 싸고(도시락) 한담하고, 정오가 가까워야 끝났던 아침 시간은 말 그대로의 아침 시간이 되었다. 그다음은 저녁 시간, 두 번 차리던 저녁상이 한 번이 되고 카톡방을 도배하던 ‘언제 오니’ 문구가 사라졌다. 나만 시간을 덤으로 받은 듯 몸 둘 바를 모르고 허둥대는 내게 친구는 빈둥지증후군을 들이대지만 천만의 말씀, 내 사전에 찬둥지 증후군은 있어도 빈둥지증후군은 없다. 나는 지금 갑작스러운 바카라 루쥬 쓰나미에 휘청거릴 뿐이다. 그런데 독립 만세를 부른 또 다른 공범자(공유자?)가 있었으니 아들도 바카라 루쥬 무차별 애정 공세에 정신이 혼미한 상태, 바카라 루쥬 소감을 묻는 내게 아들의 답은 ‘영혼까지 자유로워요’.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이 한마디가 계속 내 마음속을 웽웽거리며 파문을 일으켰다.내가 그토록 원하던 ‘바카라 루쥬로운 영혼’을 만끽하고 있는 아들에게 ‘다행이네’ 했지만 마음 한편 드는 서운함(배신감의 완곡 표현).


나는 언제 바카라 루쥬로운 영혼이 될까. 물리적 독립은 했지만 심리적바카라 루쥬은요원한, 나와 아들은 바카라 루쥬 수준이 다르다는 현타가 왔다. 이유는 자식과 부모라는 신분 차이다. ‘신분 차이’라는 망령은 조선시대의 독점물이 아니라 21세기, 아니 대대손손 이어질 것이니 나의 자유는 쭈욱 미완성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도 절반의 성공이니 감지덕지다. 한 가지 애로사항은 반찬 배달이 한집(작은 아들)에서 두 집(두 아들)으로 늘었다는 것. 가끔씩 반찬가게 놀이를 해야 한다. 그 정도는 ‘마이 플레즐’, 덕분에우리도얻어먹는다는 전제하에.

바카라 루쥬 치마폭에 싸여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고 두 달을 보내고 이제 슬슬 시동을 걸려고 하니 느닷없이 다산 정약용이 떠오른다. (아마 작년 강진 여행의 영향일 수도).

다산은 유배기간을 기회로 삼아 수많은 저서를 집필했는데 바카라 루쥬 몸이 된 나는 거꾸로 뭔가에 구속된 듯 갈피를 못 잡고 아직도 허둥대고 있다. 바카라 루쥬 사용법을 숙지하지 못해 도리어바카라 루쥬반격을 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

존재와 부재로 인해 바뀐 환경을 알아차리는 데 걸리는 적당한 시간은 없다. 개별적인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는 자위로 나는 아직 바카라 루쥬와 밀월 중이다.

헐렁한 마음으로 헐렁해진 집안을 거닐다 창밖으로 보이는 빈 가지에 시선이 멈춘다.

비어있어 가볍고 아름다운 빈 가지에 한 조각 바카라 루쥬 상념이 걸려있다.

바카라 루쥬를 닮은 겨울에 마침맞은 아들의 독립, 그에 따른 나의 바카라 루쥬를 기념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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