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그러나 결국 또바카라버렸음을깨닫는다. 바카라감의 기록.

그 해 무망하게 떠나보낸 바카라를 생각했다. 금빛 윤슬로 흐르던 나의 바카라, 날 두고 떠나가겠다고 속삭이던 삶이라는 꿈. 바카라는 끝내 나를 미치게 하지 못했다. 그건 순전히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생활 세계에서는 나를까마득한외계에잠겨 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몽상과 광기와시경(詩境)과……그리움.

다시 한번 그 바카라를 보고 싶었다.'보고 싶다'는 점차 '봐야만 한다'로 바뀌었다. 나는나로부터 버림받은 그 시간을사실은,무척 아끼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나조차 나를 거들떠보지 않던, 고독을벗어버리고 떠나려던 나와, 나 없이깊게익어가던 고독을.그때와 같은 시월이었고, 숲은 만조였고,벼 이삭들은곧 이지러질 예정이었다.작별 인사를 하리라.세상의허락은 필요 없었다.도망이라는 상책이 있지 않았던가. 나는 기어이 도시로부터 도망쳐 나왔다. 도둑질한 두어시간을 자루에 쓸어 담아.

바카라의 입구. 문은 열려 있었다. 세상이 추워질수록헐벗은 채스르륵열리는 문. 열린 문틈으로 눈부신 금빛이 반짝였다.저기야.목질의문을 두드린다.살아 움직이는 여닫이문.두 그루의삼색버들 사이를통과한다. 온종일 홀로 앉아 희망을 폐기하고 절망을 꿈꾸던, 내 생에 가장 캄캄하고도 환한세계로.

문을 통과하자바람이 불었다.나는 마치연주회에 지각한관객처럼, 계절의 한가운데를맞닥뜨린다.솨솨솨솨…… 휩쓸리고…… 휘이이이……흔들리고…… 쓰르르르…… 스러지고…… 차르르르…… 바카라고……

바카라네, 바카라.그토록 오랫동안우두커니바라봤던, 산다는 일에 대한 아무런 사명도 없이 계절의 물결에 몸을 던지고 싶었던, 여전히 내 마음 시어지게 하는, 안녕, 나의 금빛 바카라.너에게 인사를 하러왔어.넘어지고추락하며여기까지왔어. 응, 혼자서 자꾸만 대답하면서 왔어. 응,정말로 힘들었어.네가 흐르는 건 어떻게 하는 건지 가르쳐 주지 않았잖아.네가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날 떠나갔잖아.

바카라;난 널 떠날 예정이야.바카라;

바카라갔다가 바카라 돌아온바카라의 대답.또 바카라 갈……또 바카라돌아올…….

바람결에 잠시 영혼을 내려놓는다. 대답인 질문도, 질문인대답도, 바람 한 자락에 살포시.그냥맡기는 거야.대답하기를 쉬어 보는 거야.유유해지는 거야.연습해 보는 거야.흐르는 대로 살아간다는 건, 가르쳐줄 수가 없는 거야.

삼색버들 밖에서는 아주 짧은시간이 바카라갔을 것이다.도시에서 훔쳐낸 건 고작 두어 시간. 그러나풀결 위로는 무진장한 시간이 바카라고 있었다.여기가 내 고독의 방이라면, 나는 다시 세상으로 외출해야 하는 거네.

피식.

마지막으로 내면의 풍경을뒤돌아보는 순간,풀결이 그윽하게흔들렸다.한순간의 흔들림.스쳐가는작별 인사. 바카라버림.바카라간 것들을 끄적거리면서멈칫거리면서뒤돌아보면서중얼거리면서셔터를 누르면서…… 나는 또 살아가겠지.뒤돌아보는마음으로되돌아왔으니나도잠시간그 바카라에 잠시 몸 실었을 거나.

응, 일 년을 더 살아내었어.

응.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