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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라 꽁머니, 내 남편은 걱정 말아요.

나에게는 이 여름이 끝나기 전,꼭 써야 할이야기가 남아있다.

얼마 전 바카라 꽁머니'나이 오십에 소나기 주인공이 될줄이야'라는글에 대한 지분을 요구했다. 본인이글감도 주고 주인공으로등장했다는 이유이다.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고맙다'는 말을 한두세 번쯤했더니, 재미가 들린 모양이다.마치 본인이 백일장 주최자인양, 내게 브런치에 쓸 시제 하나를 툭, 던져준다.


이번시제는 '바카라 꽁머니'다.




때는 여름 초저녁 8시.

삐비비비 삑~퇴근한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 텀블러를건네고거실 쪽으로 걸어간다.


구깃해진남편의등짝을 보는 순간

악!

나는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남편의 흰 와이셔츠에 엄지손가락만 한 바카라 꽁머니가 껌딱지처럼 달라붙어있는 것이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도, 바카라 꽁머니는 날아가기는커녕6개의 다리를 더 움켜쥔다.

울지도 않는다. 떨어지지도 않는다.

차마 나는 손으로 잡지 못하고, 급한 대로 A4 용지로 살짝떼어냈다.

매앰~ 하고 짧게 울더니 그냥 종이 위에 얌전히 앉아있다.

바카라 꽁머니조심조심거실창쪽으로 걸어가밖으로내보냈다.

오래 이곳에 살았으나,바카라 꽁머니를 업고 들어오기는 처음이었다.


"신기하네.바카라 꽁머니가당신 등판에 왜붙었지?"

"현관 들어서는데 뭔가 탁 부딪히는 느낌은 났어"

"정말?"

"희한하네....내 전생에 애인이었나?"

뭐? 애인? 전생?

나도 모르게남편을 흘겨봤다.

"당신, 지금 바카라 꽁머니한테 질투하는 거야?"

질투?

어이없다는 내 표정이 질투로 보이는 건가?질투를바라는 것인가?

나는 남편이 바라는 대로 질투라고 해줬다.


늦은밤이 되었다.둘째 딸학원 픽업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이상하게남편이 들어오지않았다.

"여보, 뭐 해? 안 들어오고"

"바카라 꽁머니가아직 창문에 붙어있네"

바카라 꽁머니를 보고 있던 것이다.

"전생에 애인이 당신 못 잊나 보네"

"그런가? " 하하하

기분 좋은웃음소리는 뭘까?

한참을 쳐다보더니 급기야사진 한 장을남긴다.

바카라 꽁머니아직 남편 곁을 못떠나는 바카라 꽁머니. 남편 등짝에 붙은 사진은 안타깝게 찍지 못했다.

다음날아침이었다.

일어나자마자 현관문을 박차고 나간다.

바카라 꽁머니가사라졌단다.

아쉽다는 표정을 한남편의얼굴을 보았다.

장난이 아니었다.

감정에도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어이없음'이라는 맹물 같은 감정에

'경계심'이라는 노란색 감정이 한 방울똑 떨어진다.


급기야나는 그날 밤 급습을 시도했다.

나의 목적지는 남편의블로그였다.

아니나다를까 딱 걸렸다.

어느 틈에 썼는지,블로그에 '전생의연인바카라 꽁머니'라는 글이 떡 하니 올려져 있는 게 아닌가?


전생의 님~ㅇㅇㅇㅇㅇㅇㅇ

짧은 생이~ㅇㅇㅇㅇ ㅇㅇㅇ

날 찾아와~ㅇㅇㅇㅇㅇㅇㅇ

님 그리워 쓴 황진이의 시조도,

죽은 누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제망매가도

이보다 애틋하고도 애처롭지 않을 것이다.

남편의 시에서바카라 꽁머니는 애벌레 굼벵이 고된 시절을7년이나 견디고

단 며칠, 지상에 머무는 동안 전생의 애인을 찾아 헤매는

아주 숭고한 연인으로 그려져 있었다.


내 남편이 이상하다.

요즘바카라 꽁머니부쩍 감성적이되어버렸다.

소나기를 맞으며 소나기 같은 영화를 찍었다며 좋아하지를 않나.

등짝에 붙은 바카라 꽁머니가 전생의 애인이라고 하지 않나.

그걸 또 시로 쓰지 않나.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게 그 유명한 한남자의 갱년기라고 하는 건가?

와이프를 향해외롭다고 외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인가?


대화를 시도해 보기로했다.


"여보 당신블로그에바카라 꽁머니로 시 썼더라 "

"봤어? 어때? 괜찮지?

"아주 절절하던데. 진짜 전생 애인 그리운 거 아냐?"

"왜 이래~내가당신브런치에 글 쓰라고글감 만들어 준거지"

당황스러움이역력했다.

브런치 글감이라는 건 왠지 급조한 핑계 같았다.


어쨌거나 그렇게 '바카라 꽁머니'는 나의 시제가 되었다.


전생의 남편 애인이 되어버린 '바카라 꽁머니'로 글을 쓰려니

너무 유치하기도 하고, 어떻게 써야 하나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괜히 이런 말도 안 되는 글을 발행하여

공들여 모신 귀한구독자가하나 둘떨어져 나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걱정도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내가'바카라 꽁머니'로 글을쓰는것은

한창 무르익은 남편의몽글몽글한감정의 흥을 깨뜨리게 하고 싶지는않아서다.

또한전생의 애인이었다는 '바카라 꽁머니'에게

현생의 남편의 삶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지 보여줄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칠 수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생의 애인 바카라 꽁머니~

이제 내 남편 걱정은 그만해도 좋다.



여름이 끝나간다.

바카라 꽁머니 소리도,편의 전생애인 타령도 며칠 잠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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