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운동회 때 학부모들이 운동장 구석에 있던 놀이터에 구수를 하고 도시락 자리를 마련할 때 바카라 게임의 키 덕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바카라 게임나 아빠를 못 찾아 엉엉 울며 안절부절못하는 또래 친구들을 보며 콧웃음을 쳤다. 아이들은 천 원짜리를 열 장이나 받던 솜사탕 아저씨 앞에서 소매로 눈물과 콧물을 닦으며 고개를 빳빳이 들고 두리번거렸다. 바카라 게임에게 나도 만원 짜리 솜사탕을 먹고 싶다 하니 지갑에서 선뜻 천 원 뭉치를 쥐어 주셨었다. 솜사탕을 사러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리며 돈을 세어 보니, 여덟 장뿐이 없었지만, 아저씨는 아이들이 쥐어 주는 천 원 뭉치들을 세어 보지도 않으시고 주머니에 쑤셔 넣으셨다. 나는 돈을 내미는 아이들 중 하나인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 원짜리 솜사탕의 맛은 5월의 태양에 의한 것인지 너무 빨리 녹아 버려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바카라 게임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일을 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에 친언니는 어린이집으로 나를 픽업하러 왔다가 집에 데려다주면 바로 친구들과 놀러 나갔고, 집에서는 친할머니가 나를 챙겨 주셨다. 할머니와 숨바꼭질 중 피아노 밑에서 코딱지를 파며 기다린 것이 생각난다. 밤늦게 까지 바카라 게임와 아빠를 기다리며 할머니 품에 안겨 TV를 보곤 했다. 할머니의 품은 장롱 냄새가 났으며 쪼글쪼글하고 부드러웠다. 바카라 게임는 늘 아빠보다 더 늦게 들어왔다. 아빠가 먼저 오시면, 할머니는 주무시러 들어가시고, 아빠가 끓인 토마토나 콩나물을 넣은 라면을 한입씩 얻어먹으며 바카라 게임를 기다렸다. 바카라 게임와 아빠는 번갈아 가며 작은 선물을 사들고 오셨었는데, 내가 “다녀오셨어요~”라는 인사보다 “선물이다!! 선물!”이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런 일은 없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두 분의 맞벌이 덕인지, 어린 시절의 나는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안도했으며 자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