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동안 함께 살아온 두 사람은 헤어지기로 했다. 영화는 공백해진 두 사람의 마음 사이를 연신 내리는 소나기의 빗소리로 가득 채운다. 어질러져 있는 여자의 방과 자꾸만 무엇을 정리하려는 남자. 버리려는 여자와 버리지 못하는 남자. 이별을 선언한 쪽은 여자였다. 여자에게는 마음이 옮겨 간 다른 남자가 있고, 함께 산 남자는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바카라 드래곤 판다한다. 바카라 드래곤 판다하지 않는다. 남자는 바카라 드래곤 판다한다. 여자는 바카라 드래곤 판다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사건만으로 보자면 그렇다. 그러나 남자를 연기하는 현빈과 여자를 연기하는 임수정 배우의 표정 속에 깃든 마음을 살핀다면 그렇지 않다. 남자는 바카라 드래곤 판다하지 않고, 여자는 바카라 드래곤 판다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절반의 진실이다.
차갑게 식은 두 사람의 마음처럼 집 안을 채우는 창백한 어스름빛
여자는 남자가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다고 여긴다. 남자는 다른 이가 생겨서 떠나겠다는 여자를 위해 가지고 떠날 물건을 포장해주고, 멋진 레스토랑 에서의 저녁 식사를 예약하고, 화도 한 번 내지 않으며, 시종일관 친절하게 대하며 미소를 짓는다. 커피를 내려 달라는 여자에게 커피를 내려주고, 파스타를 먹고 싶다는 여자를 위해 파스타를 만든다.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이웃 남편의 등장 덕에 남자의 친절함은 더 극대화된다. 여자는 왜 남자를 떠나는 것일까. 금슬 좋은 부부 같은 두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기 참 나이스해. 좋은 사람이야.
외도의 상대까지 걱정해주는 남자의 친절함에 질려 여자는 말한다. 여자는 바카라 드래곤 판다은 친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자는 친절은 바카라 드래곤 판다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각자가 잃어버린 바카라 드래곤 판다을 찾는 것처럼 공백한 집안 곳곳을 서성거린다. 이윤기 감독이 그려내는 <바카라 드래곤 판다한다, 바카라 드래곤 판다하지 않는다 속의 집은 곧 두 사람 속 마음의 공간처럼 보인다. 영화 도입부의 몇 분을 제외하고는 영화는 시종 두 사람의 집 속에서 진행된다.
이렇게까지 진득하게 집을 담아내는 영화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창백한 색감의 하얀 벽을 바탕으로 집 안의 가구들이, 책장에 꽂힌 잡지가, 여자의 방에 높다랗게 탑처럼 쌓여 쓸쓸해 보이는 소설책들이, 주방의 요리도구들이, 지하에 만들어 놓은 남자의 소품들이, 오래된 비디오 테이프 더미와 꺼져 있는 티비가, 나선형의 계단과 조금씩 스며드는 빗방울이,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햇살이. 말이 없는 주인공들을 대신해 말한다. 바카라 드래곤 판다을 어디에 두었느냐고.
함께 머무르는 공간에는 함께 추억이 쌓인다, 그리고 그 어딘가에는 반드시 바카라 드래곤 판다이 깃든다
계단에서 엇갈리는 두 사람. 영화 속 집은 처연하고 아름답다
잃어버린 바카라 드래곤 판다을 더듬거리며 찾는 두 사람 앞에 길 잃은 이웃집 고양이가 갑자기 나타난다. 그리고 이내 집 어딘가로 숨어버린다.
“고양이가 들어왔어요, 집에.”
집을 언제 떠나 자신에게 올 것인지를 묻는 외도의 상대에게 여자가 말한다. 집에 갑자기 고양이가 들어왔다고. 아, 바카라 드래곤 판다은 마치 고양이처럼 우리 마음 속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그럴 때면 우리는 꽃잎을 하나씩 떼어내며 중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바카라 드래곤 판다한다... 바카라 드래곤 판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바카라 드래곤 판다한다. 비가 개고, 계절이 돌아오는 것처럼 다시 바카라 드래곤 판다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