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옆 샛길은 근처 공원으로 이어진다. 아는 사람만 다니는 좁고 호젓한 길이라 길바카라 드래곤들이 은신처 삼기 좋은 곳. 거기서 흰설탕을 만난 게 언제였더라. 까맣거나 회갈색, 황갈색 바카라 드래곤들이 오가던 길에 새하얀 바카라 드래곤가 나타났으니 단번에 눈에 띄었다. 도도함보다 경계의 몸짓이 역력한 작은 바카라 드래곤는 덤불 사이로 몸을 내밀었다가도 금세 사라졌다. 바카라 드래곤 좋아하는 딸아이는 흰설탕만 보면 눈을 반짝였고 우리만의 이름을 붙여 주었듯 간식을 주고 싶어 했다.
바카라 드래곤 사료와 간식을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니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소팩의 간식을 사 도서관 근처 길바카라 드래곤에게 나눠 준 적도 많다. 그런데도 집 앞 오솔길, 날마다 마주치는 바카라 드래곤에게 간식을 주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로 다가왔다. 바카라 드래곤를 길들이게 될 것 같아서였다.
여리고 안쓰럽고, 버려진 대상을 보면 단번에 바카라 드래곤이 쓰인다. 그런 대상을 향해 몸을 움직이는 건 바카라 드래곤만큼 자동적이지 않다. 젖어버리고 마는 나약한 바카라 드래곤 때문이다. 슬픔의 씨앗을 보고 바카라 드래곤은 젖은 솜처럼 무거워진다. 그러면 슬픔을 감싼 꿋꿋한 껍질이나 거기서 틔어 오를 즐거움의 싹까지 상상하지 못한다. 생각이 많은 것도 문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끝에 다다른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바엔 시작도 하지 말자. 서로에게 상처가 될 거야.
초등학교 2학년 즈음. 엄마가 일을 해서 집안일을 도울 이모할머니 한 분이 오셨다. 엄마는 먼 친척분이라 일러주셨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관계는 아니었던 듯싶다. 할머니와 나 사이 있었던 에피소드는 딱히 생각나지 않는데 일본에 사는 할머니의 아들이 찾아왔던 일은 잊히지 않았다. 그에게서 났던 나프탈렌 향. 그것만은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녔다.
가족들은 일본에서 지내는데 사정이 있어 당분간 할머니만 우리와 지내게 되었다고 들었다.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 있는 할머니, 엄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들. 그는 스물이 넘은 청년이었지만 엄마 없이 산다는 사실로 어린 내 시선에 애잔함이 덮였다. 더군다나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삐쩍 마른 몸에 핏기 없는 하얀 얼굴을 하고 도수가 높은 안경을 써 누가 봐도 안쓰러워 보이는 외모였다. 그에게선 나프탈렌 냄새가 났다. 서랍 깊숙이 잘 입지 않는 옷에 밴 나프탈렌 냄새.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쌓이는 낯선 향. 병원 냄새 같기도 바카라 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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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학교에서 돌아오면 날마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는 게 일이었다. 조용한 성격이지만 뛰어노는 걸 좋아했던 나는 자전거를 달리며 바람을 맞는 걸 좋아바카라 드래곤. 자전거 타기에 흠뻑 빠졌던 때엔 롤러스케이트 타기도 즐겼고. 부모님도 별일 없이 방에 틀어박혀 있는 그가 안 되어 보였는지 하루는 그를 데리고 집 근처 공원에 다녀오라고 바카라 드래곤. 주말 늦은 오후 동생들과 함께 그를 데리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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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인가, 그다음 날인가 그는 떠났다. 할머니도 우리 집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에게 다정하게 대한 건 롤러스케이트장에서 뿐이고 집에 돌아온 순간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 데면데면하게 굴었다. 밖에서는 서스름 없이 손을 잡고 맹랑한 꼬마 숙녀처럼 굴었는데 집에서는 그게 불가능했다. 그런 자신을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어린 바카라 드래곤에 괴로웠다. 그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 가까이 다가서면 안 되는 선이 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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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나로 존재할 수 있을까. 나로 온전할 수 있을까. 타인 없이 내가 존재할 수 없듯, 나의 존재 없이 타인도 존재할 수 없다. 내가 안전하게 나일 때 타인도 그로서 안전할 수 있다. 선은 완전히 지워야 바카라 드래곤 경계가 아니라 서로 지켜줘야 바카라 드래곤 보호막일지 모른다. 해변에 다다라 부서지더라도 물결의 선만은 남기는 파도와 그걸 보존해 주는 모래처럼. 커튼을 열어 빛과 공기, 소음을 들이고도 다시 커튼이 닫히면 고요히 자신으로 돌아가는 작은 방처럼. 사라지지 않지만 열릴 수 있고, 열리더라도 다시 닫을 수 있는 선. 물결처럼 스며들어 서서히 확장바카라 드래곤 세계, 열리고 닫히며 만들어지는 가능성의 틈새.
그러고 보니 이제야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고작 초등학교 2학년이면서 어른스러운 척했던 나. 그러느라 다양한 면모가 있는 한 사람을 동정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았던 게 아닐까. 입체적인 한 사람을 기억 속에서 납작하게 만들었다. 후- 후-, 힘차게 바람을 불어넣자 그가 씩씩하게 일어선다. 먼 타국에서 엄마를 만나러 온 용감한 청년이 된다. 도수 높은 안경 너머에서 그의 두 눈이 예리하게 빛난다. 이름이 뭐예요?, 취미는 뭐예요?, 어떤 음식을 좋아해요?, 서울에서 해보고 싶은 건 없어요?, 엄마를 만나서, 기분이 어때요? 궁금한 것들이 뒤늦게 떠오른다.
끝을 생각하면 무엇도 할 수 없다. 끝까지 가려하면 너무 멀거나 높아 보인다. 끝이란 무언가가 쌓여 드높아지는 상태만 의미하지 않는다. 끝이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이기도 하다. 이미 다해서 남지 않은 상태. 가지고 있는 것을 쏟아 비워 낸 상태. 지금 이 순간 내게 가득한 진심을 쓰는 것으로도 괜찮을 것이다. 그런 가뿐함으로 무언갈 시작해도 된다. 하지 않아 후회와 미련을 남기지 말고빛나는 진심을 제때 흘려보내자.
바카라 드래곤 츄르를 주문했고 오솔길로 바카라 드래곤를 만나러 간다. 완전히 어둠이 내리기 전 흰설탕은 기다렸다는 듯 그 나무 아래 편안히 엎드려 있다. 처음 나와 딸아이가 다가갈 때 흠칫 놀라며 백 미터 간격을 유지하던 바카라 드래곤가 이젠 칠십 미터까지 우리를 참아준다. 서로의 경계가 겹치는 지점에서 우리는 조심스럽다. 밥을 주지 않는 한낮에 우연히 마주치면 바카라 드래곤 쪽에서 먼저 알은체를 하듯 “야옹~ 야옹~” 말을 건다. 흰설탕이 자신의 경계를 다시 그리고 있다.
우리가 흰설탕을 길들일까 두려웠는데 흰설탕에게 길들고 있는 기분이다. 철이 바뀌어 해 지는 시간이 앞당겨지자 시계를 보고 헐레벌떡 오솔길로 나아간다. 다른 일로 나가지 못한 날엔 즐거운 일을 놓친 듯 허탈하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바카라 드래곤이 찾아올 테지만, 쓸쓸해질지 모르지만, 지금의 바카라 드래곤을 충실히 쓴다. 심각해지는 대신 즐거움을 좇자. 삶의 핵심은 무거움이 아니라 가벼움에 있다는 한 철학자의 말을 떠올린다.
ps. 바카라 드래곤를 기르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츄르는 MSG가 많이 들어 간식으로 주더라도 많이 주는 건 좋지 않다고 한다. 차라리 사료를 주는 게 바카라 드래곤에게 좋을 것 같다고. 츄르를 준다면 날마다 주지 말고 띄엄띄엄 주라는 조언을 받았다. 사료를 주문해 볼 계획이다. 물어보고 배우고 주의하면서 바카라 드래곤라는 세계로다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