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반찬뿐인데 투정 부리지 않고 밥 잘 먹던 날. 엄마가 김장을 담근 날이었다. 금방 버무려진 바카라 내추럴나인, 고슬고슬 지어진 하얀 쌀밥.엄마가 툭툭 찢어 준 바카라 내추럴나인에 밥 한 숟갈 먹으면 매콤하고 아삭아삭, 시원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한 숟갈, 한 숟갈 볼때기 불룩하게먹다 보면 순식간에 배도 불룩.
밥을 먹다 바카라 내추럴나인로 꽉 찬 커다란 통을 보고 말했다.
"엄마, 왜 이렇게 바카라 내추럴나인를 많이 담가?"
"겨울은 추워서 먹을 게 귀해. 쟁여 놓은 음식이 많은 게 좋거든." '쟁여놓다.'는말이 싫었다. 냉장고가 바카라 내추럴나인로 가득 차면얼마 후 엄마는 집을 비웠다. 겨울나기가 아니라 떠나기 위해 엄마가 쟁여 두는 음식. 그게 바카라 내추럴나인 같았다.매콤하고 시원하다가 시큼하고 시원찮게 변하는 맛도 싫었다. 금방 담근 바카라 내추럴나인 툭툭 찢어 줄 땐 진짜 엄마, 나 몰라라 집 비울 땐 가짜 엄마.변해가는 바카라 내추럴나인 맛이 꼭 변덕쟁이 우리 엄마 같았다.
시간이 흘러. 사무실에 일찍 출근하면뜨뜻한 믹스커피 한 잔 주시던환경 미화원아주머니가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커피 한잔 건네받던 어느 날, 조금 미안한 얼굴로 아주머니가 말했다.
"저기.. 부탁 하나만 들어 줄래요? 간단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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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요? 말씀해 보세요."
사정은 이랬다.대문 열쇠를 방안에 두고 출근해서 문이 잠긴상황. 사람을 부르자니 돈이 많이 드니까 담을 넘어 대문을 열어 달라는 것. 도둑처럼 남의 집 담장을 넘어야 하는 상황이우스꽝스러웠지만 흔쾌히 수락했다. 뭐 어려운 일이라고. 문을 열어 드리고 돌아가려는 데 아주머니가 커다란 통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바카라 내추럴나인 좀 먹어 봐요. 도와줬는데 따로 챙겨 줄 건 없고..."
큰 도움이 아니었기에 사양했지만 아주머니는 한사코 내 손에 바카라 내추럴나인통을 쥐어 주셨다.
큰 통에 여러 포기담긴, 신 맛과안 좋은 기억이 같이 버무려진 익은 바카라 내추럴나인. 오랫동안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주머니 바카라 내추럴나인는 달랐다. 시큼하지만 개운해서 자꾸 손이 가는 맛. 금방 담근 바카라 내추럴나인가 아니라신 바카라 내추럴나인로 밥 한 그릇 뚝딱 비운 건 이때가처음이었다. 양이 많아서 꽤 오래 먹었다. 볶아 먹고, 끓여 먹으면서.
살다 보니 엄마 닮은 사람들에게 바카라 내추럴나인를 많이 받았다.인사잘하고싹싹하다고 한 포기,아들 같다고한 포기,반찬없을까 봐한 포기. 한 포기씩 먹다가 바카라 내추럴나인의 신맛이 좋아졌다. 신맛이 좋아지니 숨은 맛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