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직장동료, 이제는 친구가 된 그녀와 바카라 따거(?)에 대해 얘기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내 머릿속 특정한 무드를 글을 포함해 여러 형식으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누군가에게 일상의 권태를 깨뜨리는 감각을 선사하는 것. 글이라면 에로틱한 무드의 소설, 도발적인 섹슈얼 칼럼이, 혹은 매혹적인 만화를 그리는 웹툰 작가의 인터뷰가 될 수 있다고. 혹은 미술작품을 실제 공간에서 소개하고 소개하는 일 등. 그래, 적어도 글은 그랬다. 뉴스레터. 사랑과 욕망에 대한 글을 매거진처럼 구현하겠다는 열의에 가득차 시작했지. 그리고는 재고자산 부족으로 3개월 만에 휴재를 선언했다.
돈벌기에 관심이 생긴 이후로 반성한 바는 다음과 같다. 언제나 줄곧 자신이 원바카라 따거 방향의 글쓰기만 해 왔다는 것. 물론 근로소득을 벌어먹는 회사에서는 해당 매체, 브랜드에서 독자 또는 소비자의 수요를 생각한 글을 썼다. 연예인 퍼스널 컬러를 분석해주는 글, 당장 침대에서 지치지 않고 허리 기술을 놀릴 수 있는 스킬 등. 나-회사-독자 사이엔 지분율 차이가 있을지언정 4:2:4, 4:3:3, 3:3:4 등 분명 내 지분도 높았다. (가끔은 브랜드도 껴 있었다) 그리고 타인의 욕구를 고려해 들려주려고 쓴 글은 그만한 소득(트래픽, 좋아요, 저장 등)을 거뒀다.
바카라 따거의 Q=독자의 머릿수?
그러나 바카라 따거는 당장 돈이 되지 않았다. 언젠가 커리어 바카라 따거 플랫폼 폴인에서 ‘바카라 따거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 열매를 자기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라는 예능PD의 발언을 본 적이 있다. 인터뷰이의 취지는 바카라 따거 메시지가 어떻든 당장 세상에 일어나는 변화를 목격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이 말은 한참을 뇌리에 맴돌았고, 확장적으로 뻗어나가면서 자본적 수확에 대한 얘기로도 해석됐다. ‘내가 재미난 바카라 따거를 만들었다고, 당장 내 통장에 돈이 꽂히진 않지…’ 근로소득은 별개였다. 그건 내가 만든 바카라 따거를 소비한 독자들이 꽂아주는 돈이 아니라, 일 8시간 노동한 대가로 사장님이 주는 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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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난 Q를 내가 쓴 글, 혹은 콘텐츠의 수요로, 그중에서도 물리적인 사람 머릿수로 환산하고 있었다. 친구에게 ‘이걸’(글쓰기를 중심으로 한 사업) 잘 해낼 자신과는 별개로 내가 생각하는 일이 바카라 따거 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생산한 무엇이 누군가를, 그러니까 소수의 몇 십, 몇 백이 아니라 몇 만 명 이상처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상황이 말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똑띠 말하진 못했다) ‘솔직히 그건 너무 몰취향 같아요.’ (속마음이었다)
내 말을 듣던 그녀는 말바카라 따거.사람들은 언제나 ‘Q’라고 하면, 머릿수로만 생각해. 하지만 Q는 다른 것바카라 따거도 치환할 수 있어. 아주 단순하게는 조회수가 될 수 있고 말야.(참고로 조회수만 해도 ‘몇 명’을 뜻하는 도달율과 ‘몇 회’를 뜻하는 노출율이 다르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얼마나 생각이 짧았는지 깨달았다. 매체와 브랜드에서 사이트나 SNS 관리할 때 도달이니 노출이니 그렇게 리포트해 왔으면서 단순히 사람 머릿수로 계산하다니. 노동자로 일할 때만도 못하다. 바카라 따거 의지가 있다면 노동자 때보다는 머리 회전이 좀 빨라야 하지 않을까.
위시리스트가 ‘BUY’ 아닌 ‘BYE’가 되는 상상
나에게 P와 C는 어렵지 않았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C는 계산해낼 수 있었다. (7년차 에디터로서 내 시간당 몸값과 한 시간당 바카라 따거 해낼 수 있는 일의 분량과 품질에 대해 생각한다) P에는 생산된 재화의 실질 가격에 더해 브랜드 가치, 연구비로 대표되는 미래 투자비용을 포함한다. P와 C는 합리적인 계산과 적정 수준의 상상(?)을 더하면 설정할 수 있다. 쟁점은 ‘Q’였다.
텀블벅을 처음 시도한 때를 떠올린다. 인스타 360명, 브런치 210명. 소셜 커뮤니티 플랫폼 문토에서 연이어 섹슈얼 토크를 열면서 팔로우도 100명 가량 확보한 때였다. ‘잠재적 독자(Q)’는 몇 명일까? 분명 채널간 독자의 교집합이 많을 거라 단순 합산한 600명이라 보긴 무리였고, 겹치는 인원을 덜어내면 대략 400명 남짓이라고 짐작했다. 펀딩 금액은 100명이 펀딩 참여 시 달성 가능한 볼륨바카라 따거, 잠재적 독자 3분의 1이 펀딩에 참여한다면 가능했다.
그 순간 떠올랐다. 올리브영에서 30분 이상 색조 코너를 돌고 돌면서 수없이 테스트한 립 제품 중 최종 선발된 립과 후보에서 탈락한 무수한 립 제품을.(이미 인스타에서 해당 제품의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을 얼마나 비교했나) 케이스만 보고 침을 삼키고 지나가던 퇴근길의 키쉬 미뇽의 타르트를, 쇼핑몰 위시리스트에 넣어둔 50만 원 어치의 옷과 무료배송 기준인 7만원을 기준바카라 따거 겨우 ‘BUY’에 속하게 된 옷 몇 벌을.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알파벳 A부터 H까지 지나가면서 한아름 안긴 책 중 캐셔 앞에서 뺄셈이 된 책 몇 권을. 내 책이 그런 책이 되지 않을까?
성공은 일목요연하다. 실패는 흩어진다. 사랑조차 그렇다. 끝난 관계에 서사를 부여바카라 따거 건 픽션, 현실에서는 혼자일 때나 가능하다. 지난 사랑의 서사를 현 연인 앞에서 구성바카라 따거 게 가능하다고 보는지(그래, 들어본 적은 있다). 이야기에는 가치가 담기기 마련이다. 비지니스의 성공 스토리는 참이지만, 온전히 저만의 스토리는 아니다. 솔직히 그러잖은가. 실패에는 무수한 이유가 있다. 어쩌면 성공은 무수한 실패를 배제하거나 몇 가지 실패조차 성공담(談)으로 엮을 수 있는 일 자체다. 누가 알겠는가. 마지막 장바구니 단계에서 빠진 원피스를, 3+1 구성인데 구매되지 못한 2개의 타르트를, 다음달 신용카드 결제금에 미처 포함되지 못한 소설 한 권의 이유를. 끝내 소비자에게 가닿지 못한 이유를 낱낱이 증명할 순 없다.
내 글쓰기가 바카라 따거라면 리텐션 전략
내가 좋아바카라 따거 것들이 나의 아웃풋의 근간이라고 생각해왔다. 나는 <나인하프위크의 서늘한 관능을, <언페이스풀의 다이앤 키튼이 외간 남자와 정사를 보내고 돌아오는 열차에서 시선을 낮춘 채 미친 듯이 웃던 모습을, 언제든 애인에게 택배기사처럼 달려 가겠다는 (젖은 머리로!) 비비의 ‘Fedexx Girl’을, 바삭함과 촉촉함을 오가는 비비언 고닉의 글을 좋아했고, 이들이 주는 감각을 알게 모르게 (아마도) 거름 삼아 글을 쓴다. 하지만 역으로 누군가가 앞서 말한 것들을 좋아한다고 내 글을 좋아하리란 법은 없다.
글쓰기, 혹은 콘텐츠의 Q(수요)는 어떻게 예측해야 할까? 지난 달 ‘비스포크 커피’와 ‘페어링 디저트’라는 개념을 카페에 적용한 이미커피 이림 대표가 모임장인 트레바리 독서모임을 다녀왔다. 다양한 질문이 오가는 가운데 나 자신의 꿈을 말했다. 사람들에게 파격을 주고 싶다고, 권태를 깨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방향성은 명확한데 해당 아웃풋에 대한 수요가 잘 예측되지 않는다고. 모임장은 질문 속에 파이가 적을 거라는 걱정이 있다며, 그렇다면 그 한정된 파이가 당신을 자주 찾아오게 바카라 따거 리텐션 전략이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
과연 비즈니스 현장에 있는 분의 말은 구체적이었다. 한편 내가 머릿속에 상정한 나의 Q는 ‘감각적 문학을 좋아하는’ ‘야한 감흥에 취약한’ 등 형용사로 가득한 불특정 사람으로 흐릿하게 정의돼 있었다. 모임장의 말은 한층 구체적인 형태를 그리는 데 힌트를 주었다. 그러니까, 내가 낸 콘텐츠가 바카라 따거라면 ‘오, 궁금한데?’하며 기꺼이 환대해줄 확실한 몇 사람을 지켜내야 한다고.
작가를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작가는 노동자인가 사업자인가? 세금에 따라 근로소득이면 노동이고, 사업소득이면 사업인가? 글쓰기가 바카라 따거 되는 상상을 한다.어떻든 글은 작가에겐 BM(비즈니스 모델)이 아닌가. 글은 BM이 될 수 없을까?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의 미충족욕구로 출발해도 BM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한테서 결핍돼 출발한 물음표가 다른 누군가의 허기를 채워주는 무언가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