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전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바닷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바다 괴물 에블루션 바카라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물고기를 기르며 가족과 단란하게 살아가고 있는 에블루션 바카라. 매끄러운 푸른 피부에 지느러미로 덮인 외형은 육지 인간의 그것과 사뭇 다르지만, 가족과 둘러앉아 밥을 먹고 일을 하면서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외형이 다른 소수자들은 바닷속 깊은 곳에서 숨어 산다. 에블루션 바카라의 엄마는 에블루션 바카라에게 절대 육지로 나가지 말라고 단단히 경고한다. 인간은 위험하니까. 하지만 애들이 다 그렇듯,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낚싯배 등에서 떨어지는 육지 물건들을 보며 호기심을 키우던 에블루션 바카라는 흔적들을 쫓아가다 육지를 오가며 살고 있는 자칭 '인간 전문가' 알베르토를 만나고 한 섬의 해변에 첫 발을 딛는다.

에블루션 바카라가 만난 육지는 찬란한 공간이다. 따스한 햇살과 상쾌한 공기가 있는 곳, 푸른 잎이 바람에 부서지는 아름다움에 에블루션 바카라는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긴다. 아름답고 새로운 육지의 것 중에서 에블루션 바카라의 마음을 가장 강렬하게 가져가 버린 게 있었으니, 바로 스쿠터 '베스파'다.

쓰레기로 가짜 베스파를 만들며 놀던 에블루션 바카라와 알베르토는 진짜 베스파를 구하기 위해 섬을 떠나 인간들이 사는 포르토르소 마을로 향하고, 그곳에서 빨간 머리의 소녀 줄리아를 만난다. 이렇게 만난 아싸들(underdogs) 의 목표는 수영과 파스타 빨리먹기, 자전거 타기가 결합된 포르토르소 마을의 전통 철인 3종 경기에서 우승하는 것. 우승 상금으로 베스파를 사려는 것이다. 영화는 따뜻한 질감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이 과정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다.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우당탕탕하다가 결국 들키고, 경기에선 우승하는 그런 뻔한 흐름이다.

요샌 많은 영화가 그렇지만 디즈니-픽사의 영화들은 꾸준히 다양성을 포용하는 쪽으로 발걸음을 떼 왔다. 특히나 이번 작품인 에블루션 바카라는 퀴어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밝은 햇살과 상쾌한 공기가 있는 육지를 애써 위험한 곳으로 여기며 더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려는 '바다 괴물'들은 소수자를 상징한다. 특히나 옷장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메타포로 보인다. 이들이 육지를 터부시 하는 건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그게 바다 괴물인 '나'를 인간으로부터 더 안전하게 지키는 길이니까.

그래서에블루션 바카라가육지를오간다는사실을알게된엄마는에블루션 바카라를큰아빠가살고있는더깊은바닷속으로가두려고한다. 깊은바닷속에서사는큰아빠는간헐적으로심장이멎어죽곤 하는심해어다. 더깊은곳으로들어간다는건심장이가끔은멈추는일인셈이다. 심장이펄떡펄떡뛰는에블루션 바카라가자유를갈망하는건정말어쩔수없는일이기에, 결국엔육지라는사회로나갈수밖에없게된다.

바다괴물은육지의인간사회에서어떻게살아갈수있을까? 바다에사는에블루션 바카라의종족은육지로올라오면인간의외형을하게된다. 겉으로봐선전혀구분할수없다. 위기는있을 수 있지만 평범한 인간들사이에섞여마치다르지않은것처럼살아갈수도 있다. 이들이사회에서살아가야하는방법이'위장'이라는점은이영화가다루고있는소수자성이퀴어함임을직간접적으로드러낸다. 이는단순히우정이라고만은보기어려운에블루션 바카라와에블루션 바카라의관계에서도드러난다.

육지에 속한 것들 중에 에블루션 바카라와 알베르토의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들어버린 베스파는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팩이 탄 걸로 유명한 브랜드다. 영화 때문에 로맨틱한 분위기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하는데, 이 영화 속에선 자유를 상징한다는 점이 인상 깊다. 에블루션 바카라와 알베르토가 함께 베스파를 타면 어디든지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거다.

뿐만아니라영화는에블루션 바카라가느끼는질투의표정을담아내기도한다. 극중에서에블루션 바카라는에블루션 바카라와줄리아가친해지는과정을보며질투한다. 질투는갈등을가져오고, 더넓은세상으로가고싶어하는에블루션 바카라를붙잡기위해에블루션 바카라는줄리아에게자기들이바다괴물이라는걸보여줘버리는 파국을 부른다.관계를파괴하면서까지도에블루션 바카라에집착하는거다. 갈등을 맞는에블루션 바카라의대응도기시감을불러일으킨다, 줄리아옆에서에블루션 바카라라는바다괴물을혐오하고부정해버린다. 꿈꾸게된육지에서의보편적인생활을지키려는태도다. 여기에상처받은에블루션 바카라는다시자기가있었던외딴섬으로돌아가버린다.

공존은이렇게쉽지않은일인데 바다 괴물과인간은함께 살수있는걸까? 영화종반부에픽사가준비한답이있다.

마지막포르토르소3종경기에서비가내리며에블루션 바카라와에블루션 바카라의정체가마을사람들에게공개되어버리고만다. 사람들은바다괴물을향해작살을드는데이들을막아서는사람들이있다. 빨간머리의소녀줄리아와한쪽팔이없는장애를갖고있는줄리아의아버지다. 결국서로다르지않다는당연한사실을깨닫게하는건연대와사랑으로곁에서손잡아주는것에서시작한다는이야기다. 뻔한얘기지만이영화가세계에서가장큰제작사의대중애니메이션임을고려한다면무게감이사뭇 다르다.

디즈니-픽사의 작품 답게러닝타임이흘러갈수록에블루션 바카라는성장한다. 성장은아이의운명이다. 하늘에떠있는반짝이는게물고기인줄로만알았던에블루션 바카라는, 그게광활한우주라는것에서불타고있는별들이라는걸알게된다. 이제포르토르소라는작은마을에서떠나더넓은도시로갈때가온 거다.

에블루션 바카라는에블루션 바카라를어떻게보낼수있을까. 섬에서혼자지내던에블루션 바카라에게에블루션 바카라는세상의전부이기도했다. 그러기에한때는더넓은세상으로떠나려는에블루션 바카라를막아서기도했다. 하지만이제는에블루션 바카라도안다. 에블루션 바카라는 더넓은세상으로가야만한다는걸. 그래서에블루션 바카라는에블루션 바카라와 함께 꿨던꿈그자체인베스파를팔아에블루션 바카라를제노바로보낼기차티켓을산다. "너는나를섬에서나오게해줬으니까"알베르토가 에블루션 바카라에게 티켓을 건네며 하는 이 말엔 여러 감정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다. 그렇게에블루션 바카라는자신을외딴섬에서세상으로꺼내준에블루션 바카라를기꺼이더넓은세상으로보내준다.

아마도 아이들의 앞에서 기다리는 세상이 포르토르소처럼 마냥 따뜻하진 않을 거다. 상처도 받을 거다. 그때마다 손 붙잡아주는 연대와 사랑이 이들을 지탱해준다면 좋겠다.Santa mozzar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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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선 묘하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분위기가 난다. 그 뜨거운 여름의 느낌도 그렇고, 에블루션 바카라와 알베르토의 관계 맺음도 엘리오와 올리버를 떠오르게 한다. 묘하게 에블루션 바카라의 외양이 티모시 샬라메를 닮아 있기도 하다. 참고로 <뉴욕타임스에 실린 에블루션 바카라 리뷰의 부제는 '칼라마리 바이 유어 네임(Calamari by Your Name)'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