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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유서


새해의 다짐 혹은 바람으로 한 해의 시작을 활기차게 열고 싶었지만 매 해 미루었던 유서로 소박하게 고요한 새 아침을 맞이해 본다.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도 쓸만한 장기가 있다면 기꺼이 내어주고 싶습니다.


수목장을 원합니다. 사시사철 푸르른 침엽수보다는 그 잎으로도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나무였으면 하고, 과실이 열리는 나무도 가능하다면 대추나무였으면 좋겠고 아니 된다 하면 자작나무여도 좋겠습니다. 꽃나무가 된다면 때죽나무였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대추나무였으면 하는 까닭은 우리 딸아이가 저처럼 대추를 좋아해서 엄마가 그리운 어느 가을날 그저 바람 쐬러 왔다가 나무 아래 흥건히 떨어진 대추열매 힘 안 들이고 먹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자작나무이길 바라는 건 길눈이 어두운 그 딸아이 엄마 찾아오는 길 애먹지 않고 희끗한 몸통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기를 바라는 노파심에서랍니다. 봄 한철 알싸한 때죽나무 아래서라면 몇 시간이고 앉아 있고 싶어 진답니다. 땅 아래를 바라보며 일제히 소녀 같은 웃음을 터뜨리는 꽃망울의 흐뭇한 향기라면 멀리서 온 바카라 온라인 오길 잘했다 싶을 테니까요. 꼼지락 대기 좋아하는 우리 딸아이는 떨어진 꽃 잎으로 귀걸이도 만들고 목걸이도 만들며 한참을 앉아 있다 갈 겁니다. (그렇게라도 붙잡고 싶네요)


제게 남겨져 있는 것이라곤 몇 권의 책과 아주 소액의 통장입니다. 거실 책장 맨 위칸, 바카라 온라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꽂힌 책들은 바카라 온라인이 자라면서 읽어 주길 바라는, 엄마가 애정하는 작가들의 책입니다. 법정스님, 류시화, 박완서, 파울루 코엘료. 삶에서 길을 잃었을 때, 엄마가 미안하게도 함께 있어줄 수 없는 그때에 이 책들이 내 바카라 온라인을 조금이나마 지탱해 줄 수 있기를, 한 줄기 등불이 되어 그 어둡고 막막한 길 비춰줄 수 있기를 미약하게나마 바라봅니다. 아시겠지만 우리의 한 달 살기 다음 행선지는 호주예요. 돈은 모았는데 한 달 동안 바카라 온라인과 함께 할 사람이 없네요. 최대한 길게 휴가를 써서 바카라 온라인 데리고 꼭 다녀오기를 당부합니다. 모르셨겠지만 바카라 온라인이 스무 살이 넘으면 단둘이 가려고 숨겨놓은 여행 통장이 따로 있어요. 아바나와 산티아고 통장. 아바나는 서영이와 가려고 했는데 쿠바는 위험한 지역이라고 분명 가지 않을 테죠. 그렇다면 아빠와 딸이 가기 좋은 여행지를 찾아서 오붓이 다녀오기를 바랍니다, 서영이가 대학생이 되면요. 산티아고는 준영이 군대 제대 후 꼭 함께 가세요. 군장을 메고 행군했을 준영이와 함께라면 산티아고 순례길 무탈하게 완주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모든 걸음걸음을 함께 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대신 잔소리는 없을 테니 편히 다녀오기를 바랍니다.


사랑이라는 말 보다 더 진하고 깊은 단어를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사량(思量, 생각하고 헤아린다)뿐이구나, 사량 하는 나의 서영아, 준영아. 이룬 것 하나 없는 바카라 온라인의 인생에 제일 잘한 거라고는 너희들의 바카라 온라인가 되어 바카라 온라인로서 살아온 지난 십 년의 시간이란다. 세상에서 나를 제일 사랑해 주는 너희들이 있어서 얼마나 위로가 되는 삶이었던지. 보잘것없는 내가 네 온 우주였던 그 시간들, 감사해 마땅한 일이지. 그저 고맙고, 사랑한다라는 말만 남겨놓고 홀연히 떠나게 되어 미안하구나. 너희들 바카라 온라인 마지막 소원 알지, 우주 먼지가 되는 거. 이제 바카라 온라인는 우주 먼지가 되어 너희 곁을 맴돌게. 그러니 너무 슬퍼 말고 이곳에서의 네 하루하루를 성실히 채워나가렴. 예의 바른 사람으로 자라길, 책을 가까이하는 어른으로 커가길,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 준영이가 좋아하는 책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처럼 우리 다시 만나자.


유서에도 양식이라는 게 바카라 온라인지 모르겠다. 드라마에서 봤던 어느 회장님의 유서는 분명 이와 같진 않았는데… 새해 첫날 동이 트기도 전부터 침대 위에서 훌쩍대며 써 내려간 글, 설움에 복받쳐 차분히 써 내려가지 못한 글이지만 덕분에 더 많이 감사하고 더 많이 사랑할 수 바카라 온라인 한 해의 시작이기를, 역설적이게도 유서를 쓰면서 다짐하게 된다.


어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아침으로 만둣국을 끓여야겠다. 이게 지금 살아바카라 온라인 내가 할 수 바카라 온라인 최선의 일이겠지.
“서영아, 준영아, 일어나. 아침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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