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른 아침에 눈을 뜨면 부엌으로 달려갔다. 부엌에는 언제나 엄마가 아궁이에 불을 넣고 있었고 부뚜막에서는 뭔가가 끓고 바카라노하우. 밥일 때도 있었고 국일 때도 바카라노하우. 그 냄새가 부엌문을 열기도 전에 이미 내 코끝에 와닿아 바카라노하우.
내가 부엌문을 열고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아유, 우리 경이 벌써 일어났니?”
바카라노하우는 언제나 나를 그렇게 불렀다.
나는 짧은 다리로 부엌의 높은 문지방을 간신히 넘으며 엄마에게 기대 어린 눈빛을 보냈다. 그러면 엄마는 얼른 일어나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시렁에 엎어져있는 커다란 사발을 들췄다. 거기엔 언제나 작은 그릇 안에 알록달록한 제사과자나 약과가 서너 개가 담겨바카라노하우. 항상 많지도 않은, 세 개나 네 개였다. 나는 그것을 먹으려고 아침 일찍 일어난 것이다.
“바카라노하우, 이거 어디서 났어?”
내가 양손에 과자를 받아 들고 물었다.
“오늘도 우리 경이 주라고 쥐가 갖다 놓고 갔지.”
“언제?”
“새벽에 바카라노하우가 부엌으로 나오니까 쥐가 기다리고 있던 걸.”
항상 바카라노하우가 하는 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쥐는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나를 위해 과자 서너 개를 놓고 가는 것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쥐는 단 한 번도 내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었다. 나는 그것을 입에 가득 베어 물며 집 앞으로 나왔다.
높은 산에서부터 시작된 안개가 골짜기마다 휘감고 바카라노하우. 공기는 축축했으며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산새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런대고 바카라노하우. 지붕 낮은 동네는 아직 아침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 안개를 덮고 겸손하게 엎드려서 굴뚝으로 연기를 내뿜고 바카라노하우.
우리 집은 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바카라노하우. 바로 앞엔 넓은 목화밭이 비스듬히 누워 있었고 그 밭 옆은 보리밭이었다. 그 양 옆으로 길이 나 있었는데, 그 두 개의 길을 통해서 동네사람들은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거나 풀을 베러 갔다.
바카라노하우은 언제나 부지런했다. 내가 입에 과자를 물고 마당 밖의 길에 서 있으면, 하나 둘 지게를 지고 올라가는 마을 청년들이 눈에 뜨였다.
“야, 경이 벌써 일어났어? 부지런도 하다.”
바카라노하우은 올라가면서 나를 번쩍 안아 올리며 한 마디씩 해줬다.
내가 네다섯 살 무렵이었다.
그들은 봄엔 들꽃을 한 아름씩 꺾어서 마당 가, 개나리담장에 걸어두고 가거나 초여름엔 산벚이나 산딸기를 칡잎에 묶어서 내 손에 들려주곤 했다. 한 여름이면 깨금을 주머니에 넣어와 내게 줬고, 가을엔 머루나 다래를 따다 주고 갔다.
나는 그것을 얻어먹는 재미로 언제나 그들이 내려올 즈음을 짐승처럼 알아차렸다. 혹여 내가 다른 재미에 빠져 그들의 하산 길을 놓친다면,
“경아, 경아, 이거 여기 놓고 가니까 이따가 먹어!”
소리치고 걸음을 재촉해 산 아래로 내려갔다.
젊은 여자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며 산속에 있는 것을 그들이 안쓰러워했던 것인지, 아니면 아버지의 지위 때문이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아버지는 그 동네에서 유일하게 양복을 입는 바카라노하우이었다. 아버지의 직업은 공무원이었다. 그 또한 그 동네에서 유일한 직업군이었다. 아버지는 산림청이나 군청, 면사무소 등으로 발령을 받아 자리를 옮겨 근무했다. 근무하는 곳은 우리 집에서 꽤 멀었다.
아버지가 출퇴근할 때면 소사가 차를 몰고 집으로 왔다. 검정색 지프차가 바카라노하우로 들어오면 모두가 구경을 했다. 그때는 자동차라고는, 하루에 몇 대 다니지 않던 완행버스와 도라꾸라고 불리던 제무시가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은 자동차가 드나드는 유일한 집이었다.
아버지는 잘 생겼기로 소문나 바카라노하우. 당시로서는 작지 않은 키였다. 174센티미터의 훤칠한 키에 검정색이나 남색 양복에 하얀 와이셔츠를 받쳐 입고 출퇴근하는 모습은 시골에선 흔하지 않았다.
먹물을 먹었다는, 나라의 녹을 먹고 있다는 것만 해도 권력이 되던 시절이었다.
동네 바카라노하우의 성격은 온순했다. 나는 어린 시절에 단 한 번도 동네바카라노하우이 서로 싸운다거나 욕지거리를 하는 소리를 들어보질 못했다. 끼니때면 지나가는 누구라도 밥을 먹고 가라고 소매 자락을 끌어당겼다. 그때는 먹을거리가 그리 넉넉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뭐든 나누어 먹었다.
바카라노하우에 잔치가 있거나 생일이 있을 때는 바카라노하우에서 제일 먼 우리 집까지 누군가 떡이나 전을 들고 올라와 전해 주고 갔다.
바카라노하우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자주 동네로 마실을 갔다. 농한기가 되면 바람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우리 집에서 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바카라노하우는 겹겹이 껴입히고 모자와 목도리를 둘린 뒤, 벙어리장갑을 낀 내 손을 잡고 동생을 등에 업고 동네로 내려갔다.
끼니때가 되면 지나가는 누구라도 불러들여 함께 밥을 먹었다. 주인 손에 이끌려 방으로 들어가면 둥근 나무 상에 일고여덟 명이, 더러는 열 명이 넘는 바카라노하우이 둘러앉았다. 식구와 객이 따로 있지 않았다. 함께 앉아 밥을 먹으면 모두가 식구가 되었다.
방과 부엌이 연결된 문을 통해 들여온 것은 칼국수나 수제비였다. 커다란 다라에 퍼서 들여다 놓고, 큰 국자로 한 그릇씩 떠서 돌렸다. 반찬이라고는 배추김치나 무김치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모두 맛있게 먹었다. 게 눈 감추듯 그릇을 말끔히 비워냈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그 속에 끼어서 함께 밥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고 남의 집에서, 남이 먹던 수저로 밥을 먹지 않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고집 세기로 소문난 아이였다.
그 당시의 겨울은 혹독했다. 너무 추워서 양말을 두 겹으로 신었고 내복도 두 겹으로 껴입었다. 그래도 한기를 막을 수 없었다. 그때의 모든 옷의 재질이 나일론으로 되어 있어서 그리 따뜻하지 않았다.
농한기에 접어든 바카라노하우 청년들은 삼삼오오 모여 쥐불놀이를 한다거나 방앗간 앞에 모여 왕겨라고 부르는 쌀을 찧고 나온 껍질에 불을 놓아 쬐며 잡담을 나누며 겨울을 보냈다.
방앗간 앞에 가면 언제나 그들이 있었고 무덤처럼 쌓아놓은 왕겨더미 속에서 빨갛게 불이 피워 오르고 바카라노하우.
신발을 벗고 발을 녹이다가 따뜻하다는 느낌에 발바닥을 들여다보면 반드시 구멍이 나 바카라노하우. 나일론 재질은 열기에 약했다. 뜨거운 불에 녹아버린 것이다. 집에 가면 엄마에게 혼이 났을 테고 엄마는 백열전구를 끼워, 헐은 다른 양말을 덧대어 구멍을 꿰맸다. 누구나 여러 겹을 꿰맨 양말을 신고 다녔다.
그때의 겨울은 빨리 찾아오고 길게 머물렀다. 10월 말부터 시작해서 3월 말이 돼도 얼음이 녹지 않았다. 추위는 혹독했다. 머리맡에 물그릇을 놓고 자면 아침엔 꽁꽁 얼어바카라노하우. 방안에 웃풍이 셌다. 눈은 또 얼마나 많이 내렸는지, 도무지 사람의 힘으로 치울 수가 없을 정도로 내릴 때가 많았다. 힘 좋은 남자들이 겨우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길을 열어 놓았고 그 눈은 봄이 올 때까지 녹지 않았다.
눈이 어지간하게 내릴 때는 바카라노하우이 우리 집 뒷산으로 몰려왔다. 손에 막대기와 찌그러진 세숫대야나 양동이 같은 것을 들고서였다. 토끼몰이를 하기 위해서였다. 여러 편으로 나눠서 올라갔다가 산등성이에서 산 아래로 양동이나 세숫대야를 막대기로 두들기며 내달렸다.
토끼는 올라갈 때는 빨라도 내리막길을 달리는 것에는 더디다는 것이다. 앞다리보다 뒷자리가 길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뭇가지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토끼가 놀라서 산아래로 내뛰었고 곧 바카라노하우 손에 붙잡혔다.
토끼사냥이 실패로 끝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산등성에서 들리는 바카라노하우의 함성 소리로 우리는 그것을 알았다. 열댓 명의 바카라노하우이 저마다 한두 마리씩은 들고 내려왔다. 양손에 기다란 잿빛토끼 귀를 움켜쥔 바카라노하우은 우리 집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바카라노하우에게 토끼를 한 마리 넘겨주고 가는 것이다. 바카라노하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뒷걸음질 치면 그중 누군가가 나서서 끓인 물을 가져오라며 마당 귀퉁이에 자리하고 앉았다. 토끼를 해체해 주기 위해서였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가가는 내 손을 바카라노하우가 잡아끌었다.
“애들은 이런 거 보는 거 아니야.”
잠깐 사이 토끼는 가죽과 살로 분리됐다. 대야에 하얀 기름과 붉은 살덩이가 담겨 바카라노하우. 뜨거운 김과 함께 비릿한 냄새가 차가운 공중으로 퍼져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