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바카라 드래곤은... 그리고 詩 아버지께
은혜 恩에 빛날 熙를 쓰는 은희, 凶名이라도 나는 좋아!
어느 귀부인이 꿈을 꾸었지.
'맑은 시내가 흐르는 푸른 벌판에03
너무 놀라 귀부인은 잠에서 깼지.
이 꿈을 꾸고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사내아이를 낳았어.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와 꿈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합의한 후에 그 사내아이의 바카라 드래곤을 "단테"라고 지어주었지.
그래, 바로 이 꿈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난시성'단테 알리기에리'의 어머니가 꾼 태몽이야.
난 내 바카라 드래곤이 참 좋아.
작명소에 맡기지도 않은 바카라 드래곤가 어쩌면즉흥적이셨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를 낳고 얼마 안 되어서 직접지어주신'은혜恩'에 '빛날熙'를 쓰는은희, 내가 태어났던그 시절에여자아이 바카라 드래곤에들어가는'희'는대부분 지금은'여자姬'라고부르지만, 그땐'계집姬'라고불렀던 그 글자를 주로썼었지.04
하지만 스물아홉내 바카라 드래곤는 당신의 푸른날의꿈을 닮은 그 시절의 추억들을 가득 담아 나의 바카라 드래곤에 빛날熙를 쓰셨지.
내 딸 그렇게 빛났으면 좋겠다고...
어쩌면 내 바카라 드래곤도 당신의 둘째 딸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시는 마음으로 비록 아들이 아니었지만 그 시절 남자들 이름에만쓰던빛날熙를 쓰셨겠지.
어릴 때 유독 바카라 드래곤는 딸 넷 중에 나를예뻐하셨어. 특히 일곱 살 무렵에는 옛날 기와지붕에 양철 처마로 지어진 반한옥집 마당에서 나를 높이높이 안아서 들어 올리시다가 내 이마가 찢어지는 일도 있었으니까.
더 어릴 때는 바카라 드래곤의 자전거 뒤에 보조의자를 달고 어딘가를 가던 기억도 아주 어렴풋하게 남아있지.
바카라 드래곤와의 추억은 이것 말고도 너무 많아서 언젠가 다시이야기하는 날이 올 것 같아.
바카라 드래곤는 고교시절 문학소년이었다 했지.
바카라 드래곤의손때가 묻은수학참고서의 갈피속에서02나는아주 어릴 때 본 적이 있었어.
옛날집 낡은 그 서방집 책장에가득꽂혀있던 그 책들속에서...
노란 갱지의 오래 묵은 향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
바카라 드래곤의 이루지 못 한 간절한 꿈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은혜 恩에, 빛날 熙를 쓰는 나의 이름李恩熙가 너무 좋아.
사실 내 바카라 드래곤은 성명학적으로는 흉명(凶名)이었어.내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우리 부부도 자식의 바카라 드래곤을 짓게 되었을 때큰아들의 바카라 드래곤은 작명소에서조금은 비싼 돈을 주고지었고, 작은 아들의 바카라 드래곤은 남편이 일주일 작명책을 빌려서공부를하면서 지어줬는데 그때 우연히나의 바카라 드래곤도찾아봤거든05물론 바카라 드래곤께 말씀드리지는 않았지.그렇지만 내 바카라 드래곤이 흉명이든길명(吉名)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어?
바카라 드래곤의 깊은 뜻을 알고 있는 걸...
요즘 연세가 드시며 부쩍 야위시고 몸이 안 좋아지신 우리 바카라 드래곤, 제발바카라 드래곤가 언젠가는 조금씩이라도 빛나는 둘째 딸을 오래오래 보실 수 있었으면참말좋겠어.
- 이 글의 초고는 2024년 8월 4일 주일 새벽 2시가 넘어서...
아버지께
- 친정아버지 칠순을 기념하면서
이은희
가만히 냉수 한 사발
마루에 놓아두면 그대로 얼음이 되던
어린 시절 그 겨울
에덴 유치원까지 혼자 걸어가기 멀기만 했던 일곱 살
칼날 같던 바람에 여린 손등이 쩍 갈라져 피가 나던 것을 보셨던지
그날 밤, 나를 위해 사 오셨던
꽤 값나가는 빨간 캥거루 표 가죽 장갑
삼십 대의 눈썹 진한 멋쟁이 그 남자는
일흔의 노신사가 되었네요
학창시절 문학을 좋아했고,
일찍 일을 마치고 오면 툇마루에 누워 읽던 세계문학전집도 색 바랬지만
그 모습 보고 자란 둘째딸은
그맘때 당신 나이만큼 엄마가 되었고, 시인이 되었네요
세월이란 강을 타고 당신의 청춘이 흘러갔지만
당신의 힘으로 일구어낸 네 딸의 가정이 있어
일흔 인생이 더 행복하시리라 믿어요
이후로도 오래도록 하루하루 빛나는 당신의 날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 이은희시집 『아이러니 너』 中<아버지께
추신.이은희 시인의 연재브런치북
추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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