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회에 트레바리 클럽장을 하게 됐고 그 모임의 첫날,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처음으로 나누는 주제가 죽음이라니. 모두들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의 삶의 일부이고 필연적이면서도 우연히 우리에게 찾아온다. 며칠 전 보았던 영화 '우연과 상상'은 수없이 많은 삶의 변수들과 우연 속에 상상이란 인간의 특권으로 그것들의 정답 혹은 해석을 가고 있었다. 죽음 역시 우리는 상상으로서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날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죽음을 상상했고, 언제 닥쳐올지 모르지만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 무엇을 떠올릴까?" 시바타 쇼의 소설 '그래도 우리의 나날' 속 세스코와 사노의 질문. 우리는 세스코와 사노처럼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다양한 답을 내뱉었다. 그러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어느덧 차가워진 밤공기에 뺨을 비비며, 늦여름이 가을을 만들어내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한번 '바카라 루쥬'에 대해 생각했다.
한해의 반 이상이 흘렀고, 나의 나이는 어느덧 30대 중반을 넘겼다. 문득 이렇게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삶에 불안을 느낀다. 나는 열심히 살고 있고, 쉴 틈 없이 바쁘지만 그보다 내가 이 인생에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문득문득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바카라 루쥬한다는 말을 입에서, 손끝에서 놓고 싶지 않다. 그 상대가 에로틱을 겸한 상대이든, 플라토닉 한 친구이든, 아가페적 부모이든 그 누구에게도 하루에 한 번이라도 바카라 루쥬한다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마치 바카라 루쥬이 내 인생의 목적이자 숙명이라 여기듯 말이다.
물론 양귀자의 소설 ‘모순’에서 너무 특별한 바카라 루쥬은 위험한 법이라 말한다. 너무 특별한 바카라 루쥬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만 다른 길로 달아나버린 주인공 안진진의 아버지처럼. 바카라 루쥬조차도 넘쳐버리면 차라리 모자란 것보다 못한 일이라고. 나 역시 뾰족하거나 각이진, 혹은 실타래처럼 얇고 긴 바카라 루쥬으로 인해 무용한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고, 서럽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바카라 루쥬을 주고받는 기적을, 넘쳐나는 귀하디 귀한 바카라 루쥬을 꿈꾸길 포기할 수 없다.
앞으로 다가올 바카라 루쥬에 대해 생각하면 몸과 입안이 달고 무척 행복해진다. 슬픔을 아는 아름다움만큼 가치 있는 일은 없다고 하는데 아마 그렇기에 그것이 우연히 다가올 철없는 바카라 루쥬을 상상하기를 멈출 수 없다.
"주변에서 자신을 가치 없다고 치부바카라 루쥬면 맞서 싸우세요. 세상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바카라 루쥬면 거부하세요. 나만 아는 자신의 가치를 포용할 줄 알아야 해요. 혼자 하려면 매우 힘들 거예요.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해요. 그걸 지켜낸 자만이 뜻밖의 인연을 만나 용기를 줄 수 있으니까요." -영화 우연과 상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