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마음을) 나누고, 글로 (생각을) 남기며, 손으로 (함께 바카라 룰 세상을) 만드는 時人 장진석입니다.
죽을 고비를 넘긴 첫째 아들, 미처 부모의 사랑을 다 주지 못한 둘째 아들, 알츠하이머와 중풍으로 같은 해에 쓰러지신 장인, 장모님, 평생 농사일로 6남매를 키우다 기역자로 굽은 허리로 6년 전 치매를 앓는 어머님, 그럭저럭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본가의 다섯 형제자매와 처가의 세 자매. 이렇게 우리는 하나의 바카라 룰으로 살아간다.
“보소! 내 고성이요.”
그렇게 나는 그녀를 만나 4년의 연애를 거쳐 하나의 가정을 이루었다. 가진 것 하나 없었기에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아내와의 결혼이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나를 보듬어 준 사람은 아내였다. 그렇게 방 두 칸이 달린 주택에서 결혼생활을 시작바카라 룰. 둘만의 삶이었지만, 이런저런 사업을 하면서 생활 여건은 녹록지 않았다. 그래도 아내는 언제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첫째가 태어나면서 삶의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선한 방식으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적인 삶이 하나의 바카라 룰은 사회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쉬지 않고 책을 읽고, 배움을 이어갔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배움에 대한 접근이 다소 쉬워졌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자식으로서, 형제로서, 그리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다소 명확해졌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다소 안정을 찾나 싶었다. 그때 장인 어르신과 장모님이 같은 해에 쓰러지셨다. 처가로 살림을 합쳤다. 벌써 16년이 흘렀다. 그 사이 장인 어르신은 작고하셨다. 두 어른을 잘 모시고 있다고 ‘효경모범상’을 수상하는 영광도 누렸다. 어쩌면 장인어른이 남은 바카라 룰 잘 챙기라는 선물이었는지 모르겠다. 장모님은 피나는 재활의 노력으로 어린 두 아들을 조금씩 돌보실 만큼 건강을 조금씩 회복하셨다.
2012년쯤 되어 하는 일들도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신혼 초 산더미 같던 빚도 줄어 조금씩 숨통이 트였다. 배움의 끈을 책이 아닌 현장에서 찾고 싶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서 지역민과 함께 배움을 잇고 싶은 마음에 사설 공공도서관인 ‘다미작은도서관’을 꾸렸다. 바카라 룰 현장에서, 마을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2009년부터 경남도보 시민기자를 시작으로 교육부, 경남도청, 창원시청, 경남교육청, 고성군청, 경상남도바카라 룰센터, 경남평생교육진흥원 등 정말 많은 기관에서 시민기자 활동을 해오고 있다. 자연스레 세상을 보는 시각이 넓어졌다. 활동하면서 좋은 인연도 많이 만났다. 그런 인연은 다시 삶의 영역을 넓히는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졌다. 또한 다양한 위원회에 지원하여 사회참여를 이어갔다. 학부모가 되자, 부모와는 또 다른 역할이 있었다. 경남교육청에서 정책모니터단 활동을 하면서 최선을 다한 결과 부총리겸 교육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이어 팔룡초등학교 운영위원장과 학부모회 활동, 양덕중학교 학부모회, 용마고등학교 운영위원 및 학부모회 바카라 룰 이어왔고, 현재는 구암고등학교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내 역시 지역의 학생들과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경남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일, 이웃이 참여할 수 있는 일을 홍보하고, 직접 참여도 했다. 두 아들과 아내도 역시 다양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런 두 아들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남겨주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로 아동문학 등단을 하였다. 지역문단에서 바카라 룰 하면서 지역문학의 활성화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다. 내가 하는 일 모두를 아내가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작한 모든 일은 묵묵히 밀어주고 지원해주었다. 마산문인협회 사무차장 8년, 경남아동문학회 사무차장 2년, 경상남도문인협회 사무차장 2년과 현재는 사무처장을 맡아 지역 문학이 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도록 도민과의 만남을 잇기 위해 노력한다.
지역문화 발전이 우리 바카라 룰과 이웃, 지역사회 성장에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경남의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생활 속에서 접목시키려 문화활동가로 활동했다. 2017년부터 문화기획을 통해 ‘팔용교육단지 등하굣길 번개문화놀이터’를 학부모님들과 함께 시작했다. 또한 등굣길 아침맞이 활동으로 학생과 학부모, 학교가 자연스레 문화로 만나는 장을 열도록 했다. 이후 다양한 문화기획으로 지역 문화가 자리 잡도록 기회를 만들었다. 경상남도, 창원시, 경상남도교육청 등 주민참여예산 사업 지원을 통해 지역민이 함께 참여하여 만들어가는 주인의식 고취에도 노력했다. 그 사이 합성2동 주민자치회 사무국장을 시작으로 현재는 주민자치회장을 겸하고 있다.
바카라 룰 영위의 기본적인 수단은 경제활동이다. 직장 생활을 하는 아내가 든든한 버팀목이긴 하지만, 두 노모님, 두 아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부족하더라도 가장 노릇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20대와 30대 초반의 사업 부진, 이후 부진했던 학원 운영, 나름의 삶의 목적을 가지고 개관했던 ‘작은도서관 다미’ 역시 폐관을 해야했다. 이후 영어교육과 독서교육을 중심으로 외부 강사로 활동했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강의 영역은 넓어져 지금은 바쁘게 강의활동을 하고 있다. 깊이 있는 강의를 위해 ‘말글손 모든문제연구소’를 열었다. 이어 소중한 인연 덕에 심리검사 지사를 운영하면서 다시 자영업의 길을 걸었다. 지금은 마산회원구소상공인연합회 사무국장으로 소상공인의 활력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 기록된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했고, 더 많은 사회활동을 했다.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바카라 룰의 지원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살면서 공과가 없는 이가 있겠냐마는, 공은 응원하고, 과는 다독여 다시 삶의 의미를 되찾게 서로가 서로를 응원해 온 우리 바카라 룰. 늘 감사합니다.
워낙 없이 시작한 결혼 생활과 덧없는 욕심으로 잘 될 거라 허영에 벌인 사업에서 바카라 룰 몰래 혼자 눈물 흘린 중년의 아내에게 감사드린다. 늘 막내아들을 위해 믿고 지지하고 언제나 응원해주신 91세 노모님의 정성에 무릎 꿇는다.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시는 모습에 아린 마음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행복한 기억으로 여생을 지내시길 기도합니다. 피나는 재활 의지로 건강하게 바카라 룰을 지켜주시는 87세 장모님께도 절을 올린다. 이제는 고령으로 온몸이 편찮으시지만, 그래도 늘 곁에 계셔 든든합니다. 못난 동생의 투정도 받아주는 형제, 자매들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지지와 후원, 사랑과 애정을 받으며 지내야 할 두 아들이 제 나름의 모습으로 건강하게 성장해주어 너무도 감동적이다.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닌 바카라 룰이 서로 등 기대어 살아가면서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이 감동을 어찌 말로 전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늘 애만 먹이는 남편을 자기 편이라 여기고 지지해주는 아내에게 꼭 이 말을 해야겠다.
“아직도 철없이 세상을 방방거리며 돌아다니는 나를 응원해줘서 고맙고, 사랑합니다.”
제목에서 적었듯 우리 바카라 룰은 늘 ‘지지고 볶고’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서로 투덜대며 이견으로 부딪히고, 때로는 쓸모없는 말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엉뚱한 고집으로 서로에게 부담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갈등이 없으면 성장이 없다고 해야 할까. 매일매일의 갈등을 조금씩 조절하며, 양보하고, 이해하고. 때론 공감되지 않지만, 공감하는 척도 하면서, 들어도 때론 못 들은 척, 알아도 때론 모른 척. 하루하루의 문제 해결부터, 한 달, 일 년의 계획을 세우고, 삶의 목적과 목표도 함께 공유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너무도 평범한 대한민국의 한 바카라 룰입니다. 사실 주변에 더 아름답고 행복한 바카라 룰이 많은데, 또 오지랖을 떠는 저희 바카라 룰을 한번 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