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카페의 여자 화장실 안, 구석진 한 칸을 차지한 9살 배기 딸바카라 영어로가 문 밖을 향해 소리친다.
바카라 영어로;엄마가 나를 이렇게 키웠잖아!바카라 영어로;
널따란 정원 잔디밭에 수영장이 구비된 카페의 오픈 소식이 SNS 알고리즘을 타고 흘러와 내 시선을 붙들었다. 서둘러 파티원을 모집해 본다. 뭐니 뭐니 해도 물놀이는 함께 놀 친구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추억이 배가 되는 법이니까. 올여름 첫 번째 물놀이의 추억을 뜨겁게 장식하기 위해 이곳까지 장장 1시간을 달려왔다. 그런데, 뭣이라. 이 무슨 당돌하기 이를 데 없는 말대답이지? 얘야, 넌 아직 고작 9살이란다.
9살 바카라 영어로가 사춘기적 발언을 하게 된 자초지종은 이러하다. 우리가 신명 나게 놀러 간 그 카페는 별도의 탈의실을 찾아볼 수 없었고, 화장실만이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유일한 밀폐된 공간이었다.화장실 바닥은 먼저 거쳐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온 잔디밭의 흙과 수영복에서 뚝뚝 흘러내린 물들이 뒤섞여 온통 진흙탕이다. 차례를 기다려 드디어 빈칸을 맞이했다. 좁아도 너무 좁네. 나까지 들어간다면티셔츠와 바지를 벗기엔 두 팔과 두 다리가 자유롭지 못한 채 한껏 구겨져야 할 것 같다. 스스로수영복을 갈아입을 정도의 자립심은 보유한 바카라 영어로를 믿고 작고 오동통한 손아귀에 수영복을 쥐어주었다. 혼자 갈아입을 수 있지? 응. 집에서도 잘하니까 불안해할 여지없이 말이다. 그런데 평소답지 않게 징징거리기 시작한다. 우리의 목표는 수영복을 잽싸게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 내 뒤로몇 사람이 줄을 서나 연신 고개를 돌리며 발을 동동 구르게 된 나는밖에서 문을 붙잡고 딸내미를 살살 어르고 달래기 시작했다.
바카라 영어로;엄마, 바닥이 너무 더러워. 더러워서 못 갈아입겠어.바카라 영어로;
바카라 영어로;괜찮아, 그냥 흙이야. 수영복에 조금 묻어도 괜찮아.바카라 영어로;
바카라 영어로;아니야, 아니야. 난 안 괜찮아. 흙 아니고 똥물 같아. 묻을까 봐 못 갈아입겠어.바카라 영어로;
바카라 영어로;똥물 아니고 그냥 흙탕물이라니까? 어차피 네가 들어갈 수영장 물이랑 같은 거야.바카라 영어로;
바카라 영어로;아잉, 그래도 찝찝해.바카라 영어로;
아니, 얘가 왜 안 하던 짓을. 밖에 나와서 생떼 한번 안 부려본 바카라 영어로가 별거 아닌 일로 버티고 우기니 눈이 똥그래지고 얼굴이 달아올랐다.부드럽고 낮았던 내 목소리가 점차 한 옥타브씩 톤이 올라가고 말이 빨라졌다.
바카라 영어로;수영복 안 입으면 물놀이 못 해. 왜 이렇게 깔끔을 떨어. 그냥 갈아입어.바카라 영어로;
바카라 영어로;엄마가 나를 이렇게 키웠잖아.내가 누구한테 배워서 이러겠어.바카라 영어로;
순간 머리가 띵. 옴맘마, 얘 좀 봐라. 생글생글 웃음기 어린 어리광을 장착한 말투로 답지 않게 캡사이신같은 팩트 폭격을 날리기도 하는 딸내미. 그 의도는 대체로 단순하고 투명하다. 페스츄리같이 겹겹이 둘러싼 포장지 속에 숨은 찐 의도를 알아채기 어려운 어른의 말과는 달리, 그저 심플하게 해석하면 된다. 그걸 아는데도 불구하고,오늘만은 명치를 제대로 가격 당한 거 같다.
그렇다. 솔직히 나는 깔.끔.떨.었.던 엄마였다. 친정엄마께서 요즘 엄마들은 다 이렇게 키우는 거냐며 네가 유난인 거 아니냐 물으셨을 정도라면 어떨까. 환절기마다 먼지 알레르기와 비염으로 고생하는 초보 엄마는 유익한 점만 물려주고 싶었지, 만성 질환을 대물림하고 싶진 않았다. 이비인후과에서 좁디좁은 비강이 엄마와 쏙 빼닮았다며 정기적으로 막힌 코를 뚫으러 와야 한다는 진단을 듣고 어찌나 미안하던지. 때문에 먼지 한 올이라도 바카라 영어로의 입과 코로 들어가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분명 결혼 전 자취할 때만 해도 어디까지 청소를 안 하고 버틸 수 있나 게으름의 정점을 찍어본 거 같은데, 엄마가 되니 달라지더라. 스스로에게는 유연하던 청결의 잣대가 바카라 영어로에게만은 엄격해졌다.
배밀이와 더불어 기어 다니게 된 아기는 낮은 포복 자세로 시선이 닿는 모든 바닥 세상 구석구석을 요리조리 탐험하기 시작한다. 요 바닥에 저 까만 점은 무엇인고? 궁금하다 입에 넣어 봐야지. 저 바닥에 요 부스러기는 무엇인고? 입에 넣어 봐야지. 뭐든지 입에 넣어 이 대신 잇몸으로(이가 다 안 났으니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호기심을 해결하는 시기라 더욱 신경이 곤두섰다. 성분이 순하다는 물티슈를 고르고 골라 쟁여놓고는 한시도 바카라 영어로와 내 곁에서 떨어뜨리지 않았다. 흘리면 닦고, 흘리면 닦고, 지금 다시 하라면 그렇게까진 못하겠다 싶을 정도로 부지런히 닦아댔다.
한참을 강박적으로 닦아대다, 필요 이상으로 멸균이 된 환경에서 자란 바카라 영어로는 면역력이 낮을 수 있다는 기사를 읽고 가까스로 물티슈 애용 횟수를 줄여 나갔다. 대신 깔끔 떠는 방식이 달라졌다. 어린이집 등원하는 딸바카라 영어로를 데리고 인형놀이에 푹 빠졌다. 유튜브에서 보고 배운 솜씨로 머리를 땋아주고, 부족한 형편이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입어볼 수 없어 한이 맺혔던 소공녀 세라 같은 옷을 입혔다. 정성 들여 땋은 머리가 추노 머리채가 될까, 고운 옷에 때가 탈까, 한창 어지르고 지저분하게 놀아도 될 바카라 영어로에게 해도 되는 것보다 하지 말라는 게 더 많은 깐깐한 엄마였다.
5살 즈음,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바카라 영어로의 엉덩이가 지나치게 무겁다고 하신다. 앉아서 이뤄지는 정적인 놀이만 좋아하고 야외 놀이나 산책은 나서지도 않는단다. 천성이 얌전하고 조심성이 많은 바카라 영어로라 예상은 했다만 산책마저 싫어한다는 말은 다소 충격이었다.바카라 영어로고, 내가 지금 공주를 키우고 있는 게 아닌가 정신이 퍼뜩 들었다.비록 유전적으로 특출 난 운동신경을 물려주진 못했으나, 단 하나 바람이 있다면, 스트레스 해소의 창구로 운동을 즐겨주었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는데. 엄마인 나는 그러지 못하면서, 바카라 영어로만은 다르길 바라는 욕심을 부렸다.
시크릿쥬쥬와 더불어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장래희망이던 시절을 지나자마자 태권도 도장에 갔다. 수련을 마치고 나면 집으로 가지 않고 근처 놀이터에서 철봉을 타잔처럼 타고 논다. 떨어질까 오르기를 주저하던 바카라 영어로는 좋아하는 친구, 언니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몸 쓰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양말을 벗어던지고 발바닥이 새카매지도록 놀이터 바닥을 휘젓는 바카라 영어로가 여름 모기에 뜯기는 것도, 하얀 도복이 더러워지는 것도 모두 못마땅했지만 그냥 내버려 뒀다.그래, 그동안 더럽게(?) 못 놀았던 거 마음껏 놀아봐라.잔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와 입이 근질거렸지만, 짐짓 흐린 눈을 하고 시선을 거두었다. 흙 파먹지만 않으면 됐지.
7살이 되자, 어린이집 야외활동을 누구보다 즐기는 바카라 영어로가 됐다. 키즈노트에 풀밭에서 무당벌레와 공벌레를 잡고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소꿉장난 삼아 노는 사진이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깔끔함을 내려놓자 바카라 영어로의 움직임은 자유로워졌다.낯가림쟁이가 능동적이고 활달한 성격으로 변한 것은 덤으로 주어진 보너스다.초등학생인 지금은 꽤나 털털하다. 티셔츠에 점심 급식 때 먹은 제육볶음 양념과 밥풀을 묻혀와서는 잊을 수 없는 맛이라서 내일 먹으려고 아껴뒀다는 농을 치기도 한다. 부동의 앉은 자세만 고집해 걱정을 샀던 바카라 영어로가 이제는 반에서 체육부장을 맡고 있으니 놀랄 노자다.이런 와중에 다시 유아기로 회귀한 것인가. 왜 때맞지 않은 깔끔 공주냔 말이다.
바카라 영어로;그럼 우리 그냥 집에 갈까? 물놀이는 접을래?바카라 영어로; (협박이 아니다. 진지하게 물어본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뒷자리 카시트에 앉은 바카라 영어로는 물놀이의 여운으로 노곤했던지 목이 90도 가까이 기울어진 채 축 늘어져있다. 백미러에 비친 바카라 영어로의 얼굴에서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리자,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그래, 유난스레 깔끔 떨던 시절이 있었지.
맞다. 네가 누굴 보고 배우겠냐. 내가 그렇게 키웠으니까 그러겠지.
엄마가 무턱대고 유별난 바카라 영어로라고 탓할 뻔했네.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털털해졌다. 우리 발전했다야.
그땐 한 치의 위험이라도 널 해할까 두려웠고, 한 톨의 더러움이라도 널 아프게 할까 불안했어. 늘 조심하려고 전전긍긍했던 초보 엄마였으니 말이야. 딱히 세상 두려울 게 없던 내가 네가 태어나고 나니 온통 무서운 것들 투성이야. 지키고 싶은 존재가 생겨서 그런 건가 봐. 깔끔 떨며 잔소리하던 엄마도 조금은 이해해 줄래? 네 성장에 진정 이로운 게 뭔지 막막하고 무지했던 때라 그랬어. 그래서 더 많이 대화하고, 공부하려고. 딸 덕분에 엄마도 자란다. 고마워,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