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모가 엄마에게 할머니 바카라 따거 꿈을 꾸었다는 전화 통화를 들었다면서 할머니 바카라 따거 거냐고 묻기에 당황스러움 속에서 ‘아니 오래 살겠네. 꿈은 반대니까, 똥은 더럽지만, 똥 꿈을 꾸면 부자가 된다고 사람들이 똥 꿈을 좋아하거든’ 하면서 대화를 이어가고는 꿈 이야기를 잊고 있었는데,
어젯밤 잠들기 전, 내가 보낸 좋은 꿈 꾸라는 인사에 ‘바카라 따거 죽는 꿈 꾸세요.’로 축복한 것이다.
할머니 죽는 꿈으로 할머니만 오래 살면 안 되고 바카라 따거도 오래 살아야 되니까 오늘밤에는 할머니가 바카라 따거 죽는 꿈을 꾸라는 말을 덧붙이는데, 바카라 따거 할머니가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무심코 주고받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아이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음에 조심스러움이 일고
며느리의 육아휴직이 끝나면서부터 시작된 손녀 보기가 8년을 넘는 동안 아이의 의식이 키만큼 훌쩍 자라
또래의 논리로 질문과 답이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면서 아이의 성장에 맞는 가르침을 주어야 하는데
엄마와 보내는 시간보다 나와 보내는 시간이 많은 손녀에게, 보이는내 생각과 행동이 제대로 된 것인지 요즘 엄마들의 생각과 사고에 부합되는 것인지가 염려된다.
어른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사랑이 많고 예의가 바르다고 하는데 과연 그 말대로 예의는 있는지 배려심은 있는지 더구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보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스펀지 시기라, 조심한다고 하는데도 손녀의 말투 속에 섞여 나오는 사투리에서 스며든다는 의미가 새삼 느껴진다.
해가 바뀌었으니 2학년, 학교생활에 익숙해지는 만큼 나름의 자존감이 성숙되면서 자기주장이 강해져 대들기도 하겠지만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대화와 사랑법을 차근히 더 익히면서 손녀와의 하루에서 행복을 찾는 날들을 이어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