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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라 레전드오리구이의 추억

세밑 그리움


한 해가 이렇게 또 소리 없이 저물어 간다. 연말이라 오늘 저녁 남편 친구 가족들과 식사가 예정되어 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 만나면 고생스러운 육아 이야기, 시답잖은 남편 이야기를 짠지 삼아 대화의 간을 맞춰나가겠지. 오늘 저녁 메뉴는 바카라 레전드 오리구이다. 우리 네 식구 연말 식사였다면 우리 남편의 머릿속에는 짜장, 짬뽕, 탕수육이 최선이었겠지만 손 큰 남편 친구분이 원형 회전 테이블이 있는 중국요릿집, 그것도 사전 예약을 해야만 먹을 수 있는 바카라 레전드 오리구이를 제안했다. 평소 고기를 즐겨 먹지 않는 나라서 식사 장소가 정해지자 남편은 괜찮겠어라고 묻는다. 괜찮다 마다, 중화요리만 아는 남편이 넘 볼수 없는 중국요리의 추억이 황하처럼 내 피와 살 속에 도도히 흐르고 있는 건 알 리가 없겠지.


지금 생각해 보면 20년 전 그 시절은 문명 이전의 시대처럼 까마득한 과거다. 세상은 스마트폰 이전과 이후의 시대로 크게 나뉘니까 말이다. 게다가 바카라 레전드올림픽이 열리기 이전의 바카라 레전드은 자전거 물결이 넘실거리는 5천 년의 찬란한 역사를 지닌 고도(古都)의 이미지로 내게 각인되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연이은 시험의 낙방으로 의기소침하던 때, 수중에 있던 돈을 털어서 나는 생의 첫 배낭여행이자 해외여행을 가깝지만 베일에 싸인 중국이란 나라로 정했다. 책으로 배운 내 중국어를 현지 중국인들이 알아들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고전문학 속 당나라, 송나라가 아닌 현대의 중국은 어떤 모습일지 직접 눈에 담고 싶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내 기억 속 바카라 레전드은 내가 초등학생이던 1980년 후반으로 타이머신을 타고 온 착각을 들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누더기 봇짐을 이고 바카라 레전드 서역에 기차표를 사러 줄을 선 사람들, 한쪽에 쪼그려 하릴없이 해바라기씨를 까먹고서 길바닥에 퉤 뱉는 사람들, 하나에 50원짜리 꽈배기를 한 봉지 사서 서둘러 자전거에 싣고 가는 사람들, 철 지난 국방색 코트를 입고 광장 주변을 순찰하는 사람들이 혼재된 도시. 낙후되었다라기 보다 친근함이 앞섰고 유년시절을 보낸 산동네로 어른이 되어서 다시 찾아간 기분이랄까. 나는 이만큼 자랐고 이제 더 깨끗한 동네에 사는데 이 동네는 여전하구나 하는 느낌. 하지만 눈살을 찌푸리는 불편함과 이질감도 이내 잊고, 내 몸이 기억하는 익숙함에 끌려 마음 편해지는 곳, 그곳이 20년 전의 바카라 레전드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종이 지도를 펼쳐 목적지를 찾아가는 여행이었고, 광활한 대륙을 겁 없이 걷고 있는 난 혼자였고, 낯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무료함으로 바뀌어 집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여로에 있었다. 그러던 중 쌀쌀맞은 처녀 같던 꽃샘추위가 있던 3월의 바카라 레전드 왕부정(우리의 명동 같은 곳)의 한 서점에서 또래의 대학생을 만났다. 교보문고처럼 넓은 서점 한쪽 구석 한국어 코너에서 한국어 책을 고르고 있던 짜오쩡난. 무슨 용기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다가가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느냐며, 나는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며 나를 소개했다. 바카라 레전드중의대생인 쩡난은 그날 듬직한 남자친구와 함께였고 우리 셋은 서점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근처 맥도널드로 자리를 옮겨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낯선 세계와 세계의 만남이었다. 쩡난에게 한국은 가보고 싶은 미지의 나라였고, 나에게 중국 역시 알고 싶은 나라였고 나는 그 장막을 걷고 미지의 세계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온 용감한 (어쩌면 무식한) 사람이었으니 서로에 대한 이끌림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흘 후면 상해로 떠나는 나를 위해 쩡난은 바카라 레전드을 떠나기 마지막 날 저녁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오늘 우리가 처음 만났던 왕푸징 서점, 한국어 코너에서 5시.


누구 하나라도 그날 갑자기 아프거나, 일이 생기면 영문도 모른 채 한참을 기다리다 못 만나고 허탕을 치고 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우리는 제시간에 약속한 장소에서 다시 만났다. 쩡난은 공부 잘하는 학생답게 중국과 바카라 레전드에 관한 많은 것들을 친절하고 다정한 선생님처럼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모든 중국인들이 쩡난처럼 차분한 중국어로 말을 걸어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쩡난은 수업이 끝난 후 뒤늦게 합류하기로 한 남자친구와 나를 한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바로 책에서만 봤던 베이징카오야, 바카라 레전드오리구이 식당이었다. 바카라 레전드오리구이로 유명한 취엔지더란 식당에는 예약을 하지 못했지만 바카라 레전드에 왔으니 바카라 레전드오리구이를 먹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날 데려온 것이라 했다. 그 마음 씀씀이가 어찌나 예쁘고 고맙던지. 사실 바카라 레전드오리구이는 혼자 가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 나 홀로 배낭여행자로서 몹시도 궁금했지만 먹어보기를 포기했던 음식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우연한 만남으로 쩡난을 알게 되고 바카라 레전드에서, 바카라 레전드오리구이를 먹어보게 되는 이 모든 과정이 내 첫 해외여행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그리운 챕터가 되어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추억하게 하고 있다니.


황량하기 그지없던 20여 년 전 바카라 레전드에서 따스한 봄바람 같은 미소를 지어주던 쩡난이 그리운 오늘이다. 야후메일 주소를 썼던 우리의 연락처는 이제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금, 쩡난은 어느 병원에서 그때의 내게 그랬던 것처럼 다정하게 환자들을 돌보고 있겠지. 오늘도 우린 각자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바카라 레전드의, 서울의 겨울 거리를 걷고 있겠지만 오늘 저녁, 온기 가득한 서울의 어느 바카라 레전드오리구이 식당에서 난 오래전 그날 쩡난이 친절하게 알려준 바카라 레전드오리구이 먹는 법을 떠올리며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해 볼 테다. 갓 쪄낸 얇은 밀전병에 겉바속촉한 오리구이를 한 점 올리고 파채를 한 젓가락 얹은 다음 춘장을 찍어 화룡점정.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그리움을 꾹꾹 눌러가며 쩡난의 안녕을 빌어야지.


바카라 레전드어의 작별 인사, 再見에는 ‘다시 재’가 쓰여 영원한 헤어짐이 아닌 다시 만남을 내포하고 있다.
지금은 비록 헤어졌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소망하며 짜이찌엔, 바카라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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