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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루션 바카라란 말이죠

에볼루션 바카라와 암흑 물질

멋들어진 바에 앉아 위스키는 온더락(On the rock)으로 한 잔 시킨 뒤, 한쪽 다리를 꼬고고개는 살짝 기울인 상태다. 갈색의 캐주얼한 정장 차림에머리는 깔끔하게 손질한 오늘의 나는 결혼식을 앞둔 신랑에 비할 만큼 깔끔한 모습으로 잠시 뒤에 있을 공연을 기다린다.위스키 잔을 홀짝이고 있다. 얼음이 녹아 위스키의 농도가 옅어질 때쯤바의 조명은 점차 어두워지고 무대조명은 켜진다. 잠시 뒤, 네 명의 에볼루션 바카라가 무대 위로 걸어 들어와 각자의 위치에 선다. 드럼, 베이스, 피아노, 색소폰. 에볼루션 바카라들은 간단히 눈을 맞춘 뒤 일제히 드러머의 신호를 기다린다. 틱 틱 틱 틱. 곡이 시작됐다. 드럼, 베이스, 피아노의 연주 위에 색소폰은 곡의 테마가 되는 멜로디를 얹는다.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멜로디 연주가 끝나면 색소폰 주자는 주인공의 자리를 잠시 양보한다. 무대 우측에 앉아있는 피아노 에볼루션 바카라의 솔로 연주가 시작된다. 손이 현란하게 움직인다. 멜로디를 이해할 순 없다. 어쩌면 함께 연주하는 동료들도 처음 들어본 멜로디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즉흥이니까. 곡의 코드와 박자에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음도 허락되는 것이 솔로 연주다. 피아노 에볼루션 바카라의 머릿속에 있는 모든 음표들은 그의 손 끝을 거쳐 피아노로, 그리고 내 귀로 흘러들어온다. 헝클어져있지만 이해할 생각은 없다. 그냥 듣는다. 피아노 솔로가 끝나면 주인공 바통은 베이스 에볼루션 바카라에게로 넘어간다. 낮지만 깊은 울림의 솔로가 시작된다. 피아노는 최소한의 코드만을 연주하고 드럼은 하이햇을 위주로 박자를 꾸린다. 그리고 바통은 드럼에게로, 색소폰에게로 전달된다. 모든 주자가 솔로 연주를 마치면 다시 처음의 테마 멜로디와 함께곡은 끝이 난다. 관객들의 정중한 박수가 끝날 때쯤 더욱 옅어진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 또다시 드럼 주자의 큐 사인이 시작된다. 틱 틱 틱 틱.

이 장면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에볼루션 바카라 감상의 장면이다. 시간과 주머니 사정이 허락한다면, 꼭 한 번 경험해 보길 추천한다. 아, 물론 난 아직 한 번도 안 해봤다.


평생 한 가지의 음악 장르만 들으며 살 수 있다면 무얼 들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 본 적이 있다.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지만 이내 결정한 장르는 에볼루션 바카라다. 다소 N스러운 고민이었지만, 덕분에 내 음악 감상 취향이 뚜렷해졌다. 나는 에볼루션 바카라를 가장 좋아한다.


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 자유로워서가 아닐까. 무릇 재즈는 어려운 음악이라는 편견이 있다. 그리고 그 편견은 음악적인 자유를 받아들이기 힘듦에서 비롯된다. 재즈 음악에서의 자유는 대체로 솔로 에볼루션 바카라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데, 이해할 수 없는 음들이 낭자하고 무질서해 보이는 박자들이 난무한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을 용인해 주는 장르가 바로 재즈다.

모든 것을 허용해 줄 것만 같은 에볼루션 바카라도 지켜야 하는 룰이 있다. 그것도 아주 단순한 룰이. 모든 음악이 그렇듯,'박자''코드'가 재즈가 허락해 주는 자유의 경계선이다. 모든 것이 자유로운 재즈 음악이지만, '박자'와 '코드'라는 규칙은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는 악기들의 연주를 결속시킨다.드럼 에볼루션 바카라는 약속한 박자 속에서 본인만의 느낌을 살리고, 베이스 에볼루션 바카라는 약속한 리듬 속에 그루브를 담는다. 그리고 피아노 에볼루션 바카라는 약속한 코드를 본인만의 감성으로 풀어낸다.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박자'와 '코드'라는 규칙 아래 결속된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음악, 그게 바로 재즈다.




천문학에서는 밝혀지지 않은 존재들이 아직 너무나도 많다. 그중 하나는 바로 '에볼루션 바카라물질(Dark matter)'이다. 에볼루션 바카라 물질은 빛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아 인간의 관측 기술로는 찾아낼 수 없는 미지의 천체를 가리킨다. 천문학자 베라 루빈은 우리 은하에 속한 천체들의 움직임을 조사했는데, 그 움직임이 예측과는 전혀 달랐다. 관측 결과에 의하면 이미 우리 은하에 속한 천체들은 우주 공간에 뿔뿔이 흩어져야 할 정도로 빠르게 회전하고 있던 것이다.

평화로운 주말, 가족들과의 외식 장면을 상상해 보자. 오늘의 외식 메뉴는 중식. 가족들이 중식당의 원형 테이블에 앉아 몇몇 요리를 기다리는 중이다. 옆자리에 앉은 동생은 처음 보는 중식당의 테이블이 신기한 지 회전하는 선반을 쉬지 않고 돌리고 있다. 잠시 뒤, 요리가 선반 위로 하나둘씩 차려졌다.이때, 철없는 동생은저 멀리 있는 탕수육을 조금이라도 빨리 먹고 싶어 회전 선반을 세차게 돌려버리고 만다. 이런 일이 생긴다면 아마 다음 주는 가족 외식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빠르게 돌아가는 탕수육이 그만 부모님의 옷에 다 튀고 말았을 테니까.

은하 속 천체들이 바로 탕수육과도 같았다. 아주 빠르게 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전혀 달랐다. 사방으로 쏟아지는 탕수육과는 다르게, 천체들은 은하 속 제 자리를 지켰다.마치 무언가가 천체들이 흩어지지 않게 결속시키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천문학자들은 그 무언가에에볼루션 바카라물질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 이후로 약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에볼루션 바카라 물질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다. 여전히 천문학자들은 에볼루션 바카라 물질을 특정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나는천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에볼루션 바카라 물질의 정체가 하루빨리 밝혀지길 바라면서도 그저 '정체가 밝혀지기만을 바라는 존재'로 바라보고 싶지만은 않다.내가 바라보는 에볼루션 바카라 물질은 '우리 은하가 흩어지지 않게 결속해 주는 존재'다. 다시 말해, 너무나도 고마운 존재다. 에볼루션 바카라 물질 덕분에 은하 내의 천체들이 중식당의 탕수육과 같은 운명을 겪지 않고 있다. 그리고 에볼루션 바카라 물질 덕분에 지금우리는 밤하늘의 별들을 감상할 수 있다.


에볼루션 바카라우리 은하 상상도ⓒNASA


암흑 물질은 에볼루션 바카라의 '박자'와 '코드'같은 존재다. 없다면 모든 것이 자유롭게 흩어져버려 지금의 아름다움을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 에볼루션 바카라가 '박자'와 '코드'라는 틀 안에서 자유를 허락하듯이, 은하는 암흑 물질이라는 울타리로은하 속 별들이 자유롭게 빛날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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