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지지 않지만, 잠시 잠깐 나는 ‘째쟁이’였었다. 째, 즉 멋을 내고 다니는 멋쟁이였던 것이다.
내가 ‘째쟁이’가 된 건, 순전히 어머니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다. 누구나 그러듯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은 많은 부모의 의욕을 불태우는 일이었고, 우리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들인지 딸인지 구별 안 되는 큰딸을 위해, 특히나 옷차림에 신경을 바카라사이트 쓰셨다. 남색 주름치마와 조끼, 리본이 달린 흰색 블라우스, 레이스가 달린 하얀 양말과 빨간 구두처럼 여성스러움을 가득 담은 정성을, 하루도 거르지 않으셨다. 그 당시, 그 시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옷차림은 절대 아니었다. 그러니 당연히 눈에 띌 수밖에 없었고, ‘째쟁이’라는 낯 간지러운 별명까지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별명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를 감당하지 못한 예쁜 옷은, 바카라사이트의 야무진 손길이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채면, 바로 나를 벗어났다. 등하굣길 내 모습은 달라도 너무 달라서, 두 사람이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였다. “학교 다녀왔습니다.”라고 신나게 인사하는 나를 보며, 바카라사이트는 절망하셨다. 옷에 관한 한, 나는 결코 야무진 아이가 아니었다. 옷에 콧물이며 크레파스와 연필심을 묻히는 것은 기본이었고, 단추와 리본 풀어헤치기, 겉옷과 책가방을 운동장 흙바닥에 던져놓고 놀다가 흙투성이로 만들기도 다반사였다. 놀라운 재능이었다. 결국 바카라사이트는 포기하셨고, 이후에는 바카라사이트가 뜨개질로 떠준 옷과, 사촌 언니의 헌 옷을 물려 입었다. ‘째쟁이’라는 가당치도 않은 이름표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딱히 새 옷은 필요 없었고, 거기에 대한 불만도 없었다. 그러던 4학년 가을, 내 옷을 사기 위해 바카라사이트와 단둘이 시장에 가게 되는 놀라운 일이 있었다. 여전히 옷은 내 관심 밖이었지만, 시장에 간다는 것은 무척이나 기다려지는 일이었다.
바로 바카라사이트 때문이었다. 당시 우리 반에서는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바카라사이트를 먹어 본 몇몇 아이들의 경험담이, 가장 뜨거운 이야깃거리였다. 달콤한 설탕을 듬뿍 묻히고, 광고에서 보던 케첩이라는 것까지 뿌린다고 했다. 설탕의 달콤함과 케첩의 새콤함이 잘 어울린다고도 했다. 바카라사이트 가장 안쪽에는 새끼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분홍색 소시지도 있다고 했다. 나도 먹어보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바카라사이트는 읍내 시장에서만 팔았고, 어른들도 자주 가지 않던 시장을 내가 무슨 수로 갈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우주를 향해 매일같이 보냈던 나의 간절한 신호를 누군가 보고, 드디어 응답을 보내온 것이다, ‘시장에 갈 일이 생기거라!’
멀미를 참아가며 시장에 도착한 보람이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바카라사이트 포장마차가 보였다. 안쪽 맨 위 테두리에 촘촘한 주름 모양의 쇠가 빙 둘러있는 커다란 냄비에는 뜨거운 기름이 있었다. 기름 냄비 옆에는 밀가루 반죽이 가득 든 커다란 통과, 밤알 크기의 빵이 꽂힌 나무 막대기가 채반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분명히 나무 막대기에 꽂힌 빵이 바카라사이트일 텐데,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실망했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은 늘 실수가 있는 법이다. “바카라사이트 하나 주세요.” 어머니의 주문과 동시에 아주머니는 밤톨 크기의 빵이 꽂힌 나무 막대기를 하나 들더니, 기름통 옆에 있던 커다란 밀가루 반죽통에 집어넣으셨다. 그리고는 작은 빵에 밀가루 반죽을 묻혀서 점점 키웠다. 아주머니는 밀가루 반죽이 충분히 묻은 빵 부분을 뜨거운 기름통에, 나무 막대기는 기름 냄비 위쪽 쇠 테두리에 꽂아 넣으셨다. 주름 모양의 쇠 테두리가 마치 집게처럼 바카라사이트의 나무 막대기를 꽉 잡고 있었다. 나무 막대기에는 기름이 전혀 묻지 않고, 빵만 튀겨지던 그 장면은, 나에게는 과학이고 마술이었다.
한참을 보글거리던 기름이 진정되자, 아주머니는 커다랗고 동글동글해진 뜨거운 바카라사이트를 꺼내 설탕통에 넣으셨다. 요즘 바카라사이트는 길쭉하지만, 그때는 동글동글했다. 설탕 범벅이 된 바카라사이트를 들고 “케첩 뿌려줄까?”라는 아주머니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큰소리로 답했다. “네! 많이 주세요.” 처음으로 먹어 보는 케첩인데, 오늘이 지나면 언제 다시 먹을지 기약도 없는데, 이왕이면 듬뿍 먹고 싶었다.
드디어 꿈을 이룬다는 설렘을 가득 안고, 케첩이 제일 많이 묻은 부분을 있는 힘껏 베어 물었다. 만화 영화처럼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거대하고 웅장한 번개가 쳤다. 정신이 번쩍 들며, 순간적으로 바카라사이트를 뱉어낼 뻔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상한 맛이었다. 물론 바카라사이트 자체는 맛있었다. 문제는 케첩이었다. 빙초산을 뿌려놓은 듯 독하디 독한 시큼함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충격이었다.
누군가 케첩을 깨끗하게 닦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케첩을 닦아내도 그 향과 맛이 이미 빵에 베어 들어서 못 먹을 것 같았다. 낭패감이 몰려왔다. 다 먹기엔 커도 너무 커 보이는 바카라사이트를 보니 한숨만 나왔다. 사주기만 하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울 듯했던 기세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차마 맛이 없다는 소리도 못 하고 들고만 다녔다. 다행히 내 마음을 눈치채셨는지, 어머니께서 식어버린 바카라사이트를 드셨다.
바카라사이트의 첫맛은, 꿈에 부풀었던 나의 기대를 산산조각 낼만큼 가혹했지만, 덕분에 지금 이 글을 쓰게 되었으니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조건을 잘 조화시켜 발효하면 깊고 좋은 맛을 낼 수도 있는 것처럼,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도, 잘 발효시켜 의미 있는 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좌절 대신 용기를 내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