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게으름을 부려도 우주는 제 할 일을 미루는 법이 없다. 오늘은 꼬박 한 달을 기다린 달이 온전한 제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다. 도시의 불빛에 흐려지긴 해도 보름달을 올려다볼 때면 절로 두 손 모으는 바카라 드래곤이 된다. 어렸을 땐 기도하는 바카라 드래곤을 알지 못했다. 엄마 따라 절에 갔을 때 부처님 앞에서 한참 동안 두 손 모으고 눈감은 엄마를 기다리는 일은 고역이었다. 성인이 돼서는 여행지의 절에 가면 꼭 부처님께 삼배를 드리고 잠깐이라도 앉아 기도한다. 인생은 내 노력만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기 때문이다.
체력이 떨어지면서 여행에 흥미를 잃은 요즘엔 저녁 산책 때 달을 쳐다보는 자리가 기도처가 된다. 예전 외할머니가 마당 장독대 한쪽에 정화수 떠 놓고 정성스레 빌던 장면이 오랜 기억 속에서 불쑥 떠오른다. 그 옛날 외할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지금의 내 기도와 다르지 않다는 걸 이제야 알아차린다.
바카라 드래곤의 달
천양희
가시나무 울타리에 달빛 한 채 걸려 있습니다
바카라 드래곤이 또 생각 끝에 저뭅니다
망초꽃까지 다 피어나
들판 한쪽이 기울 것 같은 보름밤입니다
달빛이 너무 환해서
나는 그만 어둠을 내려놓았습니다
둥글게 살지 못한 사람들이
달 보고 자꾸 절을 합니다
바라보는 것이 바라는 만큼이나 간절합니다
무엇엔가 찔려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달도 때로 빛이 꺾인다는 것을
한 달도 반 꺾이면 보름이듯이
꺾어지는 것은 무릎이 아니라 바카라 드래곤입니다
바카라 드래곤을 들고 달빛 아래 섰습니다
들숨 속으로 들어온 달이
바카라 드래곤속에 떴습니다
달빛이 가시나무 울타리를 넘어설 무렵
바카라 드래곤은 벌써 보름달입니다 <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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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 운명의 장난에 둥글게 살지 못한 여인은 환한 보름밤 달빛에 그만 어둠을 내려놓고 달을 바라본다. 배반에 가슴을 찔려본 사람들은 달도 때로 빛이 꺾인다는 걸 안다. 그래서 꺾어지는 건 무릎이 아니라 바카라 드래곤이라는 것도. 그 바카라 드래곤을 들고 달빛 아래 선 여인의 들숨 속으로 들어온 달이 바카라 드래곤속에 떴을 때 그 여인에겐 그전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졌을 것이다. 시인은 시의 세상에서 자신을 넘어 타인의 상처까지 가만히 어루만진다.
달 보고 자꾸 절하는 사람들, 어쩌면 그들의 뒷모습엔 구멍 난 가슴이 비쳐 보일지도 모른다. 부모님 일로 꺾이고, 자식 일로 꺾이고, 바카라 드래곤먹은 대로 되지 않는 밥벌이 때문에도 가슴이 성하긴 힘든 시절이다.올해의 마지막 슈퍼문이 뜨는 오늘 밤, 쏟아지는 달빛 아래 두 손 모아 보고픈 이들의 안녕을 빌어야겠다. 먼 곳에 계신 엄마와 가까이 있는 가족들, 친구들 모두 안녕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