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질 듯 큰 달을 머리 위에 두고옥상에서 바카라노하우을 빌었다. 오랜만에 보게 된 추석날의 보름달이었다.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 주세요.아!... 돈도많이벌고.. 요.'
빌고 보니 어째 뻔한 레퍼토리 같지만 누군가 세 가지 바카라노하우을 들어준다면 진지하게 고민을 거듭해도 결국 그 세 가지를 빌 것만 같다.혹시나 한 가지만 바카라노하우 어떤 걸 선택해야 하나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해봐도 건강, 행복에서 맴돌겠지. 매년 특별할 것도 없는 나의바카라노하우 말고내 옆에 쪼르륵 선 아이들이 두 눈꼭감고빈 바카라노하우은 무엇일까?
한참을 빌고 눈을 뜨길래 무엇을 빌었냐고 물으니 비밀에 부치겠단다.
며칠 뒤, 잘시간 즈음 먼저 방으로 바카라노하우간 아이들이 문을 닫고 쑥덕이는 소리가 들렸다.살포시 문을 여니 커튼을 열어젖히고 창가에 붙어있다 화들짝 놀란다. 그냥 달에게 바카라노하우을 빌고 있다고... 도대체 무슨 바카라노하우이기에 나에게는 비밀로 부치는 걸까? 물을 마시러 가는 척 자리를 비우면 슬쩍 방문을 열어두었다. 아이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문틈으로 흘러나온다.
달에게 빌어도 바카라노하우주지도 않더라는 열 살 언니 말에 여덟 살 동생은 진지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한다.
"언니야 내가 다 빌어봤는데 난태양왕수바님께 빌었을 때가제일 효과가 좋았어!"(이지은 작가의 그림책 중 '태양왕수바'에서 태양왕수바는 바카라노하우을 들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신으로 나온다.)
하느님, 부처님, 옥황상제님, 달님, 다빌어봤는데도 안 바카라노하우줬는데 태양왕수바님한테빌었던 9월 자리 바꾸기에서 드디어 단짝과 짝이 되었다고!!!
내 돈내산, 효능입증 경험까지 더해지자 열 살 언니도 설득이 당한 기색이다.
"오.. 그래? 내년엔 꼭 제일 친한 친구와 같은 반이 되고 싶은데 그럼 태양왕수바님께 빌어볼까?"
자신이 발견한 비법을 의기양양전하는 동생이 창문 밖 커다란 달을 보면서 먼저 시범을 보인다.
" 달님, 하느님, 부처님, 옥황상제님! 제발 내년에 친구 **이랑 같은 반 되게해 주세요!
몰래 듣고 있다가 트로트의 신에서웃음 참기가 실패해서 근래 중에 가장 크게 웃었다. 저토록 간절한 바카라노하우의 주제가 단짝과 같은 반이 되는 일이었다니!
저맘때의 친구는 건강이고 행복이고 돈이다그래...
최근나는 무엇을 그렇게염원해 봤던가 생각해 본다. 일단 그렇게 하고 싶던 내 집 장만을 했는데 좋아서 잠이 안 오던 날이 지나고 대출금을 빨리 갚고 싶은생각으로 옮겨가 있다. 새로 생긴 놀이터에 아이들이 뛰어놀게 해주고싶던 바카라노하우은이젠 너무 노는 게 아닌가 공부를 조금 더 했으면 자꾸만 바라고 있다. 글은 또 어떤가.글을 쓸 수 있는 것으로 행복하다고 해놓고 브런치에 글만 쓰면 메인으로 빵빵 띄워주던 나의 호시절이 자꾸 생각난다.
쓰고 보니 더 극명하게 드러나는 나의 자본주의식 염원들이다. 이렇게 속내가 검으니 알고리즘의 신이 내 말을 바카라노하우줄 리가 있나.. 문만 열고 파리 날리는내 유튜브도 떠올려본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돌진하게 좋은 것을만바카라노하우야겠다. 내 경험으로 비추어불순물 없는 의도로 염원하는 것이 이뤄질 확률이 높다. 뭐든 의식하고억지로 하면 될 일도 안되더라..
결국은 정성에 감복해서 하늘도 바카라노하우준다. 정성을 다해 임하니 뭐든 잘하게 되고 말이다. 정성껏 매일 글이라도 써보고 기도빨 좋은 신을 찾아 나서도 나서야햐지 않을까? 그나저나 트로트의 신은 누굴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