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문이든 덕분이든 간에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만 꼼짝없이 있어야 했을 때 내가 가장 당황했던 일은 다름 아닌 ‘육아’였다. 초등학교 2학년, 아홉 살이었던 딸과 하루 종일 붙어 있었는데 그 옛날 신생아 때보다 더 힘에 부쳤다. 내가 나이를 더 먹었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이건 체력적인 문제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출근하기 전 바카라를 깨우고 아침밥을 먹이고 서로 안아주며 나는 일터로 바카라는 학교로 헤어졌던 아침 풍경이 바뀌었다. 그동안 고팠던 아침참을 핑계로 바카라와 나는 늦잠을 자고 오전 실시간 ebs방송도 놓칠 때가 많았고 아침인지 점심인지 모를 식사를 했다. 하지만 곧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몰려왔고 한없이 게을러진 바카라의 모습에 책임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일하는 엄마로서 하루 중 짧은 시간이라도 양질의 사랑을 주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던 것 같은데 오히려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서로의 부족한 모습만 더 보게 되는 것 같았다. 그때 시작한 것이 어린이집 다닐 때까지만 해도 매일같이 읽어줬는데 학교에 입학하면서 조금씩 그 횟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던 그림책을 바카라에게 다시 읽어주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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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라에 대해 기록하다가 발견한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나’였다. 그래서 지금도 계속 쓰는 중이다. 세상에 뛰어난 자기 계발서가 많다지만 나에게 확실한 동기부여를 주는 것은 ‘바카라’인 것 같다. 그 바카라를 통해 나의 부족한 것과 치부를 들키기도 하지만 또 가끔은 나의 강점과 사랑스러움 역시 발견하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끝나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날이 올 때까지 바카라를 담고 나를 담은 기록을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