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였을 때 나는 50대인 이모들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때의 내가 누리던 젊음과 생기, 미래의 가능성이 사라지면 사는 재미 또한 없을 줄 알았다. 그러던 내가 이제 사십 중반을 넘어서 오십에 더 가까운 바카라 꽁 머니에 이르렀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즐길 거리를 찾으며, 새로운 가능성에 마음을 열어두고 지낸다. 몸은 둔해지고, 작은 글씨를 보기가 힘들어지고, 건강검진 때마다 한두 곳은 꼭 손봐야 하지만, 삶이 재미없어진 건 아니다. 나의 핵심은 20대 때와 크게 다르지 않고 나는 '여전히 나'로 지낸다.
JTBC 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나이를 먹고서야 알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드라마는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과 인물들 간의 로맨스에 초점을 두지만, 50대 중반인 임순(이정은)과 20대 후반의 이바카라 꽁 머니(정은지) 두 사람의 삶을 한 몸에 살고 있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젊음과 늙음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주고 있다.
바카라 꽁 머니 들어 버린 '낮'
▲ 검찰청에 취업한 순은 진심을 다해 일한다.ⓒ JTBC
20대의 모든 시간을 공무원 시험에 쏟아부은 바카라 꽁 머니은 8번째 시험에서도 고배를 마신다. 그러던 차에 취업 사기까지 당하고, 더 큰 절망에 빠진다. 절망 속에 울고 있던 날. 바카라 꽁 머니에게 한 고양이가 나타나고, 이 고양이와 만남 후 바카라 꽁 머니은 낮과 밤에 다른 사람이 된다. 해가 뜨면 50대 중반의 아줌마 임순이 되었다가, 해가 지면 원래 자기 자신인 20대 후반 바카라 꽁 머니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 20대의 바카라 꽁 머니이 그토록 노력해도 할 수 없었던 취업을 50대 임순은 한 번에 해낸다. 비록 공공근로 인턴 자리이긴 하지만, 더 이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지 않아도 된 순은 무척 행복해한다. 밝고, 긍정적이며, 진심을 다해 일하는 순은 검찰청에서 인정을 받고, 계지웅(최진혁) 검사의 사무보조로 일하게 된다. 순은 그 누구보다 즐겁고 성실하게 일한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후 다시 바카라 꽁 머니이 된 순은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엄마 일해보니까 마음만은 이팔청춘이란 말 뭔 말인지 알겠더라." (5회)
이는 20대의 내가 40대 중반이 되고서야 깨달은 그 진실을 바카라 꽁 머니이 순으로 살아보면서 알게 됐음을 고백하는 장면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내면의 열정과 삶에 대한 태도,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욕구는 변하지 않는다는 진실 말이다. 드라마가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낮 동안에 50대로 살도록 설정한 것도, 나이 듦이 삶 자체를 축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정말로 '바카라 꽁 머니' 그 자체는 순에게 별 제약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늙음'을 대하는 태도는 순을 펑펑 울게 만든다. 순이 지웅의 사무보조로 일하게 됐을 때 지웅과 수사관 병덕(윤병희)은 "바카라 꽁 머니 든 아줌마와 어떻게 일을 하냐"고 반발하며 순을 나가게 할 궁리를 한다. 갑자기 50대가 되었을 때도 울지 않던 순이 펑펑 우는 건 바로 이런 편견과 차별을 인정해야 했던 때다. 순은 지웅에게 야단을 맞았던 날 사무실 사람들이 자신을 내치려 한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며 스스로를 안쓰러워하면서 펑펑 운다(5회).
어쩌면 현실의 우리가 바카라 꽁 머니 듦을 터부시 하는 것도 이런 편견 때문인지도 모른다. 바카라 꽁 머니가 들면 할 수 있는 것들이 적어지고, 삶의 재미 또한 사라질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바카라 꽁 머니 듦을 두려워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드라마 속 순이 그랬듯, 오십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의 내가 그렇듯, 바카라 꽁 머니를 먹어도 삶이 쪼그라들지는 않는다.
드라마 속 지웅과 병덕은 순과 함께 지내면서 점차 순의 능력을 인정하고, 편견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순 덕에 수사에 도움을 받는다. 이들은 순과 가까이 지내며 '편견'에서 벗어나 '한 사람'으로 순을 존중했다. 우리 역시 이럴 수 있다면 좋겠다. 바카라 꽁 머니 듦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날 때 삶을 더 풍성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깜깜한 '밤'의 젊음
▲ 바카라 꽁 머니은 20대 모두를 공무원 시험준비에 마쳤지만 면접에서 또 고배를 마시고 만다. ⓒ JTBC
순은 해가 지면 20대 후반의 젊은 바카라 꽁 머니으로 돌아온다. 퇴근해서 쉴 때, 친구와 여가를 즐길 때는 20대 바카라 꽁 머니으로 지낸다. 그래서 가족들은 바카라 꽁 머니의 달라진 모습은 전혀 모른다. 그저 열심히 일하고 돌아온 딸이라 생각할 뿐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밤에만 '젊어지는' 것일까.
친구도 만나고 클럽도 가고 여가도 즐기고, 나름 공부도 할 수 있겠지만, 밤의 대부분의 시간을 사람들은 잠을 자는 데 쓴다. 나는 이런 밤을 젊은 채 지낸다는 설정이 마치 요즘 청년들의 암울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았다. 순과 바카라 꽁 머니으로 살기 전 바카라 꽁 머니은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진하면서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인드로 열심히 공부하면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지만, 바카라 꽁 머니에게 돌아오는 건 절망뿐이었다. 이런 바카라 꽁 머니이 밤에만 산다는 것은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암흑 같은' 청춘들의 현실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희망도 보여준다. 낮 동안 순은 지웅의 사무실에서 여러 업무를 척척해 내는데 바로 그 능력의 자양분이 젊은 바카라 꽁 머니의 아르바이트 스펙이었다. 클라이밍장 청소 아르바이트는 암벽등반을 가능하게 했고, 타자 아르바이트는 불가능한 서류 정리를 가능하게 했다. 심지어 젊은 날 게임을 하며 보낸 밤도 순에게는 중요한 자원이 된다. 이는 비록 깜깜한 젊은 날을 통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쌓은 경험이더라도 언젠가는 쓸모 있게 사용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바카라 꽁 머니과 순은 '같은 사람'
▲ 바카라 꽁 머니의 친구 가영은 순과 바카라 꽁 머니이 같은 사람임을 알아본다.ⓒ JTBC
여기서 기억해야 할 건 순과 바카라 꽁 머니이 '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순 덕분에 목숨을 구한 고원(백서후)은 순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에 위로를 받고, 커피 한 잔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고원은 자전거를 타고 가던 순이 일몰과 함께 바카라 꽁 머니으로 변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 후 순과 바카라 꽁 머니을 관찰하던 고원은 두 사람이 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고원은 이 믿기지 않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과 바카라 꽁 머니을 '한 사람'으로 대한다. 바카라 꽁 머니을 좋아하는 마음 그대로 순도 아껴주며,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이는 외모보다 순과 바카라 꽁 머니이 지닌 내면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활기차고 매사에 성실하고, 배려심 있는 마음 씀씀이는 바카라 꽁 머니이나 순이나 다를 바 없을 테니 말이다.
순과 바카라 꽁 머니이 같은 사람임을 최초로 알게 된 바카라 꽁 머니의 친구 가영(김아영)도 마찬가지다. 처음 순이 자신이 바카라 꽁 머니이라고 이야기할 때 도저히 믿지 못하던 가영은 바카라 꽁 머니이 "난 한 번도 노력한 걸 못 이뤄봤다 아닌가. 그래서 이번만큼은 꼭 보고 싶다. 내가 최선을 다하면 얼마나 잘할 있는지"라고 말했을 때 "맞네. 이바카라 꽁 머니이네"라며 반가워한다(4회). 나이가 들어도, 고유하고 중요한 삶의 가치만은 변하지 않기에, 같은 사람임을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로 그렇다. 나이를 먹어보니, 신체는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내 안에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고원이 순과 바카라 꽁 머니을 같은 사람으로 인식하고, 가영이 바카라 꽁 머니임을 알아볼 수 있었던 그 어떤 고유함을 우리는 각자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흰머리가 생기고, 몸매가 변하고, 젊었을 때와는 다른 역할들을 수행하고 있어도 '내가 나'라는 감각을 유지하며 지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고유함은 누구나 존중받아야 마땅한 것일 테다.
드라마를 보면서 20대 때 50대 이모들을 보면서 했던 생각이 얼마나 교만한 것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나이를 먹어도 젊었을 때와 똑같은 삶의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젊다고 해서 늘 행복한 것만도 아니다. 그리고 젊든 나이가 들었든 내가 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나이 듦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카라 꽁 머니이 순이 됐다고 해서 바카라 꽁 머니의 본질이 사라지지 않듯, 나이가 들어도 나답게 살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나아가 이런 '고유함'을 서로가 더욱 존중해 주길 바란다. 그래서 젊은 날의 혼란을 무사히 통과해 내면서 겁먹지 않고 나이 들어갈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