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늦게까지 원고를 쓰면서 불규칙한 식사를 바카라보라 피곤에 절어 잠들던 그저 그런 하루 중 또 어느 날.
그날도 11시 반쯤인가 뒤늦게 못 챙긴 밥을 꾸역꾸역 먹고 체중계에 올라갔다가, 악! 소리를 질렀다. 41년 인생 최대 몸무게를 두 눈으로 똑똑하게 바라본 서늘함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쪘다 빠졌다 해도, 15년 동안 총체중의 10%가 넘는 수준의 변화는 없던 몸이었다. 긴 세월 동안 70대 초반의 몸무게였으니, 다시 말해 7kg가 아래 위로 시소처럼 움직인 적은, 지난 15년 동안은 없었단 얘기다. 물론 그리 크지 않은 내 키에 저 몸무게가 건강하거나 날씬하다고 정의할 만한 숫자인 적은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15년을 큰 변화 없이 살았다 생각했는데, 80kg에 가까운 몸무게를 눈으로 본 순간, 아찔해지더라.
다음 날, 바로 친한 친구의 추천을 받아 방송국 근처 피트니스 클럽을 찾았다. 근력 바카라보라이라니, 대체 이게 얼마만인가. 2010년 초반에 PT를 받아본 이후로, 요가나 달리기를 가끔 하는 것 외엔 피트니스 센터에 간 적은 없었다. 좀 긴장되기도 하고, 행여나 '눈퉁이'를 맞진 않을까 겁도 살짝 났던 게 사실이다. 이 나이에.
고백하건대, 한국 나이로 - 빌어먹을 한국 나이 뭐지 왓 더 코리안 에이지 - 마흔 하나가 되고 나서는,어디 가서 나이를 말하는 걸 주저하게 되는 때가 있다. 바카라보라;에? 40대요? 와 - 옛날 사람바카라보라;이라는 반응을 맞닥뜨리면, 이젠 정말 빼도 박도 못하는 아저씨구나 싶기도 하고, 바카라보라;아, 넵!바카라보라;이라는 반응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조금 억울한 느낌도 들고(?), 바카라보라;아? 네..바카라보라;라는 반응을 마주하면, 관리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니까.
뭐래, 들쑥날쑥이다. 물론 그중에 누구라도 환영할 피드백은 바카라보라;어? 그렇게 안 보이시는데요바카라보라;겠지만, 이젠 그런 가능성도, 저기 구석에 오래 둔 나프탈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걸로 사라져 간다는 걸 부인할 도리는 없다.
바카라보라;살을좀빼야할것같아서요.바카라보라;라고말하곤친구에게 추천 받은 센터에 바로등록을했다. 그리고일상생활패턴에대해상담을했다. 수면도, 식사도너무나불규칙바카라보라, 이렇다할휴식이란게없는나의하루를줄줄이늘어놓는건, 왠지모르게부끄러웠지만.
바카라보라;혹시 회원님, 특별한 목표라도 있으신가요?바카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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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라보라;요즘 유행인데, 나중에 바디 프로필이라도 찍으실 생각이신가요?바카라보라;
바카라보라;글쎄요... 어휴, 제 나이에 뭘요. 그 정도로 몸이 좋아질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아마 그렇게 되긴 너무 힘들 거예요.바카라보라;
모든 음식에는 소스가 필요하다고 설파하는 소스의 제왕답게, 샐러드 소스를 반드시 뿌려먹는 못난 회원 식단
살려고 시작한 바카라보라인데, 죽으라고 했더니, 점점 더 잘 살게 됐다. 비루했던 몸매가 조금씩 바뀌어 가고 - 스틸 비루 & 초라 though -, 탄탄한 근육도 조금씩 자리 잡는 걸 느끼니 만족감도 크다. 애초에 바프 같은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지 않고 시작했기 때문에, 어차피 이 게임은 아주 기나긴 장기전이 될 것이다.
100일 동안 마늘과 쑥만 먹고, 억지로 숨을 참은 '사람다운' 사진을 남길 목표도, 벌크업을 해서 어디 대회에 나가려던 것도, 미친 듯이 체중을 감량해 옷을 모조리 새로 사보겠다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이 과정이 즐겁다고 느낀다. 트레이너 쌤이 매일 봐주는 식단 사진에, '금지품목'이 낄 때면, 사진에 댓글을 달아가며 그저 깔깔 웃고 만다. 쌤은 '그거 하나 먹었다고 인생은 반드시 달라진다(?)'고 하지만, 나는 '그것도 못 먹고 이걸 할 이유는 없다'라고 너스레를 떨며 받아친다. 물론 '회원님, 제가 두고 보겠습니다'로 끝나는 잔소리 덕에 '아유, 오늘부터 당장 더 잘 챙겨 먹을게요'로 끝나며, 서로 피식 웃고 말지만.
고구마를 삶는 일은 으레 밥솥이 한다만, 밤고구마를 삶은 동안의 내 기분은...
살려면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기에 시작한 운동이 꽤 재미있어졌다. 여세를 몰아서, 애플 워치를 매일 체크해 가며, 하루 800kcal 이상의 열량을 소모하는 운동 습관을 매일 채워가려고 노력한다. 전보다 밖에 나가 달리는 시간도 늘었다. 바카라보라;추석 연휴 동안 처량하게 고구마에 닭가슴살만 먹을 일은 아니니, 먹고 싶은 거 드시고, 20km만 뛰고 오세요바카라보라;라는 트레이너 쌤 말에, 진짜로 먹고 싶은 거 좀 먹고, 홈트도 하고, 누적으로 17km까지는 뛰어뒀으니, 내일까지 조금 더 뛰면 금요일 수업 전까진 괜찮겠지 싶기도 하다.
물론 바카라보라;작은 사탕 하나, 초콜릿 한 조각에도 몸은 달라집니다. 세상에 몸만큼 정직한 건 없습니다바카라보라;라고 계속해서 일깨워주는 열정의 트레이너 쌤 덕에, 앞으로도 꾸준히 운동하고, 식단도 건강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겠지만, 글쎄 뭐랄까.
90일 이전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훨씬 더 건강해진 것만으로도, 바카라보라을 그날 당장 시작한 것이 참 다행이다 싶다. 그리고 그 길을 함께 해준 트레이너 쌤이, 조금 보태어 말하면 생명의 은인 같다.
2022년 1월, 바디 프로필을 찍어볼 것이다. 그로부터 90일 뒤인 4월에도, 또 90일 뒤인 7월에도.
처음부터 바프를 찍기 위해 바카라보라한 게 아니라, 건강해지려고 바카라보라을 하다 보니 변화가 보이고, 성취감이 느껴지고, 재미있어서, 이대로 계속 열심히 해서 한번 촬영해볼까 하는 맘으로 결정했지만, 떡 벌어진 어깨와 쩍쩍 갈라지는 데피니션을 추구한다기보다는, 어느덧 마흔한 살인 내가, 일상의 쳇바퀴에서 잠시 빠져나와, 내 선택으로, 아직까지 질리지 않고 - 닭고기 먹는 걸 좋아해서 진짜 다행 - 힘들고, 졸리고, 피곤할 때도,꾸준히 이 길을 걸어왔구나하는 뿌듯한 이정표쯤으로 여겨볼 요량이다.
물론 생각보다 뿌듯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나를 다독거려볼 이유 하나쯤은 만들었으니, 이 길의 끝에선, 뭐 조금이라도 나은 뭐라도 되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