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Have patience. All things are difficult before they become easy.바카라; (Saadi)
어두운 터널 끝에 한 줄기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04 05
삼성전기 기술총괄조직에서 무선랜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팀이었다.
처음엔 별도의 이름 없이 무선랜(Wireless LAN)이라 부르다가
Hi-Fi(High Fidelity)에서 착안하여 Wi-Fi(Wireless Fidelity)로 이름이 정해졌다.
그리고 호환성과 품질 보장을 위해 Wi-Fi 인증제도도 생겼다.
제품을 만든 초기에는 Reference가 없어서 영업이 쉽지 않았는데 어느 날 영업팀이 KT에서 조건부로 물량을 받아왔다.
『Wi-Fi certified 무선랜 카드 5만 대』
당시 초도 물량으로 5만 대는 매우 큰 물량이었고, 이건 무조건 해야 하는 건이었다.
문제는 우리 제품이 아직 Wi-Fi 인증을 받지 못했다는 것.
KT의 요구를 맞추려면 최소한 2주 안에는 인증을 해결해야 했는데
인증 신청은 해두었지만 밀려있어서 예상 완료일은 2달 넘게 남아있었다.
어느 날 출근하니 상무님이 부르시더니 말했다.
바카라;박대리, 미국 좀 다녀와라. 이거 인증받아야 KT 들어가는 거 알지?
초도 5만 대 큰 건이니까 가서 꼭 받아와야 한다. 알겠지?바카라;
매우 부담스러웠지만 유학파였던 나는 큰 일 아니라는 듯 걱정 마시라고 대답했다.
난생처음 가는 해외출장이었다.
미국에 도착 후 바로 Wi-Fi 인증을 담당하던 Agilent Lab으로 갔다. 야후 Map에서 7장을 프린트해서 보며 겨우 찾아갔는데 사무실이 아니라 큰 창고였다.
들어가서 나는 삼성에서 무선랜 카드 인증 때문에 왔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책임자 같아 보이는 친구가 힐끗 보더니 무심하게 말했다.
바카라;응, 안돼. 인증은 직접 받으러 오는 게 아니야. 온라인으로 신청하고 제품을 보내면 순서대로 테스트를 해서 통과하면 인증을 주는 거야.바카라;
바카라;나도 아는데 우리가 이번에 너무 급해서 내가 직접 왔어.바카라;
바카라;응, 그래도 안돼. 여기 신청한 회사들 모두 다 급해. 그러니 순서대로 해야지. 직접 왔다고 먼저 해주면 그건 공정하지 않잖아. 안 그래?바카라;
바카라;...바카라;
황당했다. 나는 이거 하나 받으러 방금 한국에서 왔는데...
상무님이 나를 보낼 때 나는 어느 정도 컨센서스는 돼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오자마자 이렇게 문전박대를 당하니 순간 뇌가 멈추는 것 같았다.
어쩔 줄 몰라서 난 그 앞에 무작정 앉아 있었다.
그들이 절대 안 된다며, 가라고 계속 눈치를 줘도 그냥 버티고 앉아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 밖에 없었다.
이렇게 빈손으로 한국에 돌아갈 순 없었다.
한 세 시간쯤 흘렀나? 점심시간이 되었다. 세 명이 점심을 먹으려고 일어섰다.
바카라;저기... 슬슬 배가 고픈데 혹시 이 근처에 먹을만한 게 있을까? 삼성이 출장비는 잘 줘서 밥 값은 많이 나와. 미안하니까 점심은 내가 살게.바카라;
바카라;여기 있어봐야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어. 그냥 가.바카라;
바카라;나 방금 한국에서 와서 갈 데도 없어. 배고프니 일단 밥이나 먹고 보자.바카라;
바카라;사정은 안 됐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어.바카라; 바카라;그래 이해했어. 나도 생각 좀 해볼 테니 일단 밥 먼저 먹자.바카라; 바카라;음... 그럼... 혹시 멕시칸 좋아하니?바카라; 바카라;오 그래? 나 멕시칸음식 무지 좋아해. 얼른 가보자...바카라;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 명만 책임자였고 나머지 두 명은 파트타임으로 테스트만 해주는 인력이었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이야기라든지 삼성에 가서 군대 대신 근무한다는 것 등 시시콜콜한 개인적인 이야기도 했다.
밥을 먹고 돌아와서 나는 아까 그 자리에 다시 앉았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을 해봐야 하니 앉아 있게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이 편히 있으라고 했다. 타코와 브리토의 힘이었다.
저녁 때 실리콘밸리 사무실로 돌아와 한국에 있는 Ryan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설명하고 뾰족한 수가 없는지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심플했다.
바카라;버티면서 잘 설득해 봐야지 뭐. 수고가 많다.바카라;
다음 날 아침, 커피와 도너스를 사들고 다시 거길 찾아갔다.
나를 보더니 걱정되는 눈 빛으로 왜 또 왔냐고 물었다.
나는 이 것 때문에 출장을 온 거라서 다른 데 갈 곳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다시 오전을 버티다가 둘 째날도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을 먹다가 그 책임자 친구가 말을 했다.
바카라;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유일한 방법이 하나 있긴 있어.바카라;
바카라;어? 그게 뭔데?바카라;
바카라;우리가 보통 한 제품당 테스트 기간을 하루 반나절씩 잡아두고 테스트를 하거든.
그런데 가끔 테스트 시작하자마자 Fail 나는 제품들이 있어. 그렇게 Fail 처리를 하면 남은 시간은 사실 비는 거라고도 볼 수 있지. 그다음 제품은 어차피 원래 계획대로 테스트 하면 되니까...바카라;
바카라;와, 천잰데. 혹시 Fail 나는 게 있으면 그 비는 시간에 우리 것 좀 넣어서 테스트 하게 해줘.바카라;
바카라;그래 알겠어. 너 사무실 가 있어. Fail 나면 연락 줄게.바카라;
바카라;나 여기 사무실이 없어. 그냥 아까 거기 앉아 있을게. 부담 갖지 마.바카라;
어둡기만 했던 터널 끝에서 한 줄기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03 드디어 Fail이 났다고 그 친구가 뛰어왔다.나보다 더 기뻐하는 것 같았다.
테스트에 익숙했던 나는 반나절만에 모든 항목 테스트를 통과하고 인증을 받게 되었다. 무턱대고 실리콘밸리로 날아온 지 3일 만이었다. 그렇게 난 어쩌다 해결사가 되었다.
실리콘밸리 사무실에 들어가 바로 한국에 전화를 걸었다.
바카라;그룹장님, 방금 인증받았습니다.바카라;
한국 사무실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출장을 보내긴 했지만 거의 어렵다고 보았던 인증이 해결되었다.
방금 5만 대를 판 것이다.
전화로 소식을 전하던 그 순간의 희열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처음, 그 친구가 바카라;안돼바카라;라고 했을 때는 눈앞이 깜깜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버티다 보니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조금씩 일이 풀려나갔다.
내가 뭘 뛰어나게 잘한 게 아니다. 그저 버틴 것뿐이었다.
반드시는 아니지만, 세상에 많은 것들이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해도 생각대로 안 되기도 하고. 전혀 안될 것 같은 것도 버티다 보면 의외의 곳에서 문제가 풀리기도 하고. 진정성으로 끝까지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